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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자동차)`바퀴달린 아르마니`...트라몬토

조영행 기자I 2005.11.23 14:17:42
[이데일리 조영행기자] "자동차를 볼 때 브랜드를 얼마나 따지시는지요?" 세계 자동차 업계가 인수합병과 지분공유 등을 통해 제휴의 폭을 넓혀감에 따라 요즘은 `겉과 속`이 다른 자동차들이 많습니다. 독일 국민차의 상징이던 폭스바겐에 고급 스포츠카 포르셰의 엔진이 실리고, 미국 포드사는 일본 마쯔다가 개발한 자동차를 만드는가 하면, 크라이슬러는 벤츠 엔진을 얹었다고 자랑스레 광고를 합니다. 우리나라의 현대와 기아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이와는 달리 애초부터 남의 자동차를 손봐서 먹고 사는 회사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겉과 속이 다른 자동차를 만드는 `코치빌더`업체인 피스커의 첫작품을 소개합니다.

얼마전 우리나라에 알피나라는 다소 낯선 자동차 회사가 진출했다. 이 회사가 내놓은 자동차는 처음보면 BMW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디자인이 똑같은 것은 물론 전면에 BMW 엠블럼도 떡하니 붙어 있기 때문이다. 앞 범퍼에 붙어 있는 `ALPINI` 로고는 그저 차주가 개인적인 취미로 붙여 놓은 스티커처럼만 보인다. 이 회사는 흔히 말하는 튜닝카업체다. BMW의 7시리즈를 가져다가 엔진출력과 주행성능을 업그레이드해서 판매한다. 하지만 알피나는 `우리가 BMW를 골랐다`고 말할 정도로 콧대가 센 회사이기도 하다. 

알피나와는 달리 자동차 디자인  자체를 바꾸는 코치빌더(coach-builder)라는 형태의 튜닝업체도 있다.

마차 제작자라는 어원을 갖고 있는 코치빌더는 원래는 차체를 전문 제작해 완성차업체에 납품하던 회사였다.  

대량생산 시대에 접어들면서 완성차 업체가 코치빌딩도 직접하게 됐고 코치빌더는 양산 모델에 자체 제작한 차체를 씌워 팔거나, 차체를 개조해 리무진 같은 특수차량을 만드는 회사로 그 의미가 달라졌다.

올해초 탄생한 피스커 코치빌드(Fisker Coachbuild)는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코치빌더로 출범한 기업이다. 이 회사는 세계적인 명차인 `애스턴 마틴`의 디자인 책임자인 헨릭 피스커가 21년간 BMW에서 엔지니어로 활약했던 버나드 쾰러가 함께 설립했다는 사실 때문에 자동차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헨릭 피스커는 애스턴 마틴 이전에 BMW, 포드 등을 거치면서 BMW 고성능 스포츠카 Z8과 애스턴 마틴의 DB9, V8 밴티지를 디자인한 인물로 이름이 높다. 

피스커 코치빌드가 첫 작품으로 내놓은 모델이 2인승 컨버터블인 `트라몬토(Tramonto)`다. 피스커 코치빌드는 바로 뒤이어 2+2인승(2인승을 기본으로 2개의 뒷좌석을 추가한 모델) 쿠페 모델 `라티고(Latigo)`(윗 사진 뒷쪽 차량)도 선보였다. 코치빌더이니 만큼 양산차를 베이스로 하는데 트라몬토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SL55, 라티고 CS는 BMW 650ci를 가져다 개조했다.

우선 피스커의 디자인으로 완성된 외관은 애스턴 마틴의 슈퍼카 DB9의 흔적이 묻어나는 역동성과 스피디함이 특징이다.

차체 디자인은 SL55에 비해 넓고 낮아진 느낌이며, 피스커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이 앞에서 뒤까지 끊김없이 흐르는 느낌을 준다.

다소 밋밋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독특한 그릴처리와 헤드라이트는 고집스러우면서도 도회적인 느낌을 살렸다.

특히 디자인 과정에서 레알라디(REALADI)와 협력을 통해 3차원 설계와 성능 테스트를 거쳐 공기역학을 최대한 반영했다고 한다. 스포일러를 따로 달지 않아도 안정된 주행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디자인을 겉에 입힌 트라몬토는 껍데기를 빼고 나면 그 속에는 벤츠 SL55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SL에 얹힌 엔진은 배기량 5439cc의 트윈 터보로 제동마력 기준으로 최대출력 494마력, 최고시속 250 킬로미터, 정지상태에서 시속 60마일(약 96킬로미터)에 이르는 정지가속은 4.5초의 성능을 갖추고 있다.

엔진 외에도 충격 완충용 크럼플 존과 에어백 등 벤츠의 안전장치도 그대로 장착돼 있다. 또 도로 상태와 주행상황에 맞춰서 각 바퀴의 서스펜션을 자동조절해 주행 안정성을 높여주는 액티브 바디 콘트롤(ABC)도 그대로 적용했다. 지붕의 전동개폐장치도 벤츠 제품이 그대로다.

SL55의 성능자체도 어디에 빠지지 않을 정도의 고성능이지만 피스커 코치빌드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퍼포먼스 플러스 패키지가 적용한 모델은 엔진 계통의 튜닝을 통해 힘과 속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다.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의 전뮨 튜닝회사인 클리만과 손잡고 출력을 높인 것이다. 퍼포먼스 패키지의 경우 클리만의 슈퍼차저 튜닝을 통해 최대출력을 610마력으로 높였고, 정지가속은 3.6초로 단축시켰다. 최고시속은 전자제어를 통해 325킬로미터로 제한돼 있다. 이 정도면 람보르기니의 무르시엘라고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렇게 향상된 파워는 주문형 ECU(전자제어장치)를 통해 빈틈없이 제어된다. 또 트랜스 미션도 클리만과 함께 튜닝해 기어의 반응속도를 더욱 높였다.

트라몬토의 가속성능에 대해 자동차 평론가인 나우만 파룩은 이렇게 평가한다. 
"오른 발에 힘을 주자마자 LA경찰국에 체포될 정도의 속도로 당장 치고 올라간다. 교통신호에 대기하고 있다가 1등으로 튀어 나가고 싶다면 바로 이 차가 제격이다."

트라몬토는 또 서스펜션을 손봐 코너링과 고속주행시의 안정성도 높였다. 새로운 서스펜션은 차 뒤쪽을 확고하게 안정시켜서 급한 코너를 돌 때로 차체 후미가 완벽하게 제어되도록 했고 고속주행시에는 차체가 뜨는 듯한 느낌도 제거해 확실한 스포츠카의 승차감을 살렸다는 평가다.

피스커 코치빌드가 제작한 차체는 카본 파이버로 만들어 무게를 SL55 보다 약간 더 줄였고 역시 클리만 제품인 고성능 브레이크 시스템으로 제동성능도 향상시켰다.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트라몬토의 인테리어는 고객의 입맞에 맞춰 다양한 소재로 꾸며진다. 연간 150대만을 생산할 계획이지만, 그 150대 조차도 고객 주문에 따라 제각각 다른 모습을 갖는다는 설명이다. 바퀴 달린 `아르마니`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철저한 명품 브랜드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가격은 25만3000달러로 결코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역시 벤츠 SL을 베이스로 튜닝한 브라버스의 자동차는 SLR 만큼 빠르면서도 가격이 더욱 싸다는 점을 감안하면 트라몬토는 역시 주행성능 못지 않게 `명품`의 이미지를 중시하는 차량임을 알 수 있다.

파룩은 이렇게 말한다. "트라몬토는 과연 이런 가격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아니라고 생각해도 그만이다. 왜냐면 어차피 이 세상에서 이 차를 고를 사람은 150명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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