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중국 위안화가 글로벌 경제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위안화 절하속도가 예상보다 가팔라지면서 중국을 바라보는 불안감은 더 확산하는 분위기다. 중국과 경쟁하는 신흥국 위주로 통화가치를 경쟁적으로 떨어뜨리기에 나서면서 환율전쟁 발발 가능성도 한 층 더 커졌다.
◇가파른 위안화 절하‥허 찔린 금융시장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7일까지 8일간 위안화 값을 1.4% 절하했다(위안화 값 하락). 작년 한 해 달러와 비교해 5% 가량 가치가 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하락 속도가 한층 빨라진 것이다.
중국 위안화는 최근 몇 년 간 꾸준한 절하압력을 받아왔다. 중국 경제가 둔화하고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상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중국 당국은 그동안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위안화 가치를 높게 유지하려 적극적으로 절하를 막아왔다. 그런데 작년 8월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당시 외환 당국이 전격적인 위안화 절하에 나서자 수출경기를 위해 위안화 값을 떨어뜨리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꿨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말에는 위안화가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에 편입되며 국제통화로서 위안화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위안화가 국제화 측면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뒀으니 위안화값을 끌어내려도 된다는 공감대가 중국 관료들 사이에서 형성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위안화 가치가 낮아지면 중국의 수출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 의존도가 높은 중국 경제에는 큰 도움이 된다.
글로벌 투자은행(IB)도 위안화 값 전망치를 끌어내리고 있다. 실제 골드만삭스는 올해 달러당 위안화 가치 전망을 종전 6.60위안에서 7위안으로 낮췄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중국 인민은행이 위안화 기준환율을 예상보다 더 크게 절하한 것은 수출이 부진한 경제 여건을 고려한 것”이라며 “자본유출 흐름이 지속하면서 위안화 절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날의 칼’ 위안화 절하…중국發 불안감 확산
그렇지만 위안화의 절하는 부작용도 만만찮다. 위안화 값이 떨어진다는 것은 위안화 자산 가치도 덩달아 하락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서 해외 자본의 이탈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위안화 약세는 자본유출을 가속화 할 불쏘시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또 달러로 빚을 낸 중국기업의 빚 부담도 늘어난다. 최근 가파른 위안화 절하 이후 중국 증시에서 투매현상이 나타난 것도 이러한 걱정이 반영된 결과인 셈이다.
해외 투자자 중심으로 위안화 추가 약세에 베팅하는 쏠림이 나타나면서 중국 외환 당국이 시장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이미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1080억달러가 감소했다. 감소액은 분석가 예측보다도 5배나 많다. 외환 보유고는 지난해 말 기준 3조3300억달러(약 3994조원)로 한 해 동안 5130억달러가 줄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지난해 8월 위안화 절하 이후 인민은행이 외환 시장에 적극 개입한데다 해외 투자자금의 유출이 맞물린 결과다.
인민은행은 “일부 투기세력들이 인민폐를 조작해 이익을 얻으려 한다”며 강도 높은 경고를 했고 산하 중국 국가외환관리국(SAFE)도 외환시장 위험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중국 당국이 전례없는 무력시위를 벌이는 게 역설적으로 외환시장 통제력이 약화한 방증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글로벌 환율전쟁 전운 고조
중국이 위안화 값을 적극적으로 떨어뜨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환율전쟁의 전운도 고조되는 분위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올해 세계 경제에 제기한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위안화 약세에 따른 글로벌 환율전쟁 가능성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방송 CNBC는 위안화가 계속 약세를 보이면 아시아 신흥국도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 통화가치를 낮출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미 중국과 경쟁 관계인 베트남은 지난달 19일 동화 환율을 1% 평가절하했다. 베트남이 통화 평가절하를 단행한 것은 지난해 8월 19일 이후 5개월 만에 처음이다. 베트남은 경기둔화에 중국 위안화 가치마저 떨어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이번 조치를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연합(EU)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도 부진한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돈풀기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루이스 비데가라이 멕시코 재무장관은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가 연쇄적인 환율전쟁에 불을 지필 것이라고 경고한 대목도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