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염정인 인턴 기자] 이름은 ‘지지(G.G)’, 직업은 모델,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3.1만이다.
그냥 2D 캐릭터일 뿐인데 인...플루언서라고요?
그렇게 말하면 ‘베베’들이 섭섭해한다. 가상 인플루언서 지지는 팬들을 ‘베베’라고 지칭하며 소통한다. 베베들은 지지가 ‘가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 내 댓글에 답을 달아주고, 내가 가고 싶었던 ‘핫플’을 방문하기 때문이다.
지지의 세계관도 확실하다. 지난달 13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지지의 노래 ‘FIND MY COLOR’는 3주 만에 조회수 31만회를 돌파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만화 오프닝 영상같은 지지의 노래에는 다중우주 속 4명의 지지의 이야기를 담았고, 팬들은 숨겨진 지지의 이야기를 해석하며 논다.
GenZ세대(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세대)를 제대로 겨냥한 가상 인플루언서 지지의 정체는 아모레퍼시픽이 만든 인플루언서다. 화장품 회사가 만든 인플루언서지만 지지의 게시글과 영상에는 ‘제품’이 등장하지 않는다. 노골적인 제품 마케팅은 오히려 젊은 세대들의 관심을 떨어트린다는 게 ‘지지’를 탄생시킨 아모레 디지털 신사업 TF팀의 생각이다. 이들은 GenZ세대가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확실한 팬층을 구축하기 위해 움직인다고 한다.
이데일리 스냅타임이 2030 젊은 직원들로 꾸려진 디지털 신사업 TF팀을 만나봤다.
Q. 지지는 GenZ세대에게 어떻게 다가갔나?
A. 이영란 담당자: 소통이 가장 중요했다. TF팀이 생각하는 지지는 ‘언제 불러도 카페로 달려 나오는 친구’다.
김새롬 담당자: 인스타그램 게시글에 댓글이 달리면 전부 답을 달아준다.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잊지 않는다. 특히 다이렉트 메시지(디엠)가 오면 꼭 답장하고 있다. 지지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무물’(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을 올리기도 하는데 많게는 100개 이상의 질문이 들어온다. 하나도 빠짐없이 답변하는 편이다. 특히 지난달 유튜브에 뮤직비디오를 올린 뒤, 디엠이 5~6배 늘었고 외국인 베베가 많아졌다. 6개월 전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마쳤을 때도 디엠 수가 크게 늘었었다.
정지혜 담당자: 일반 인플루언서라면 화려하고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지만 지지에게선 친근감이 느껴졌으면 했다. 지지는 “오늘 뭐 먹었어?”, “날이 추우니까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고 답장하는 등 가볍고 편한 대화를 시도한다. 가끔은 베베들이 지지에게 미션을 주도록 유도한다. 그날 하루는 지지가 베베의 추천에 따라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가령 지지가 “나 동대문 시장 왔는데 어디 갈까?”라고 물으면 베베들은 직접 맛집과 핫플레이스 등을 추천한다. 지지는 이곳들을 방문하며 사진을 찍어 실시간으로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올린다.
Q. 지지는 2D 캐릭터지만 유튜브 라이브 방송도 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진행했나?
A. 김새롬 담당자: 라이브 방송은 매우 어렵다. 사실 라이브 커머스도 어렵고 생방송이라면 뭐든 어렵기 마련이다. 그래도 댓글이나 디엠 등 매번 활자로 대화했던 소통 방식에서 한 발짝 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목소리와 실시간 소통이라는 새로운 포맷을 가진 라이브 방송을 기획하게 됐다.
정지혜 담당자: 라이브 방송을 진행해주신 성우님께는 사전 미팅을 통해서 지지의 성격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해드렸다. 성우님께서 지지를 완벽히 숙지하고 계시는 것이 중요했다. 지지가 평소 무엇을 좋아하고 최근 어디를 다녀왔는지, 지지와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알고 계셔야 했다. 리허설도 1회 진행해서 성우님께 피드백을 드렸다.
Q. 지지는 하나고 팀원은 4명이다. 어떻게 일관적인 지지를 만들어 갔나?
A. 정지혜 담당자: 초기에 지지의 성격을 설정하고 그걸 체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처음엔 인스타그램 댓글 하나에 답변하는 것조차 팀원 모두의 합의가 필요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현재는 ‘지지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이다’ 에 대한 합의가 어느 정도 생겼다.
이영란 담당자: 물론 지지의 일관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꼭 고정된 모습을 유지해야 하는 건 아니다. 가령 이번 라이브 방송에 참여한 성우님이 반드시 다음 영상을 맡아주셔야 하는 건 아니다. 하나의 목소리를 고집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람이라도 기분 좋을 때와 슬플 때 목소리가 다르지 않나. 또한, 지난달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뮤직비디오 ‘FIND MY COLOR’를 보면 지지의 인격체는 다양하다. 진짜 사람이 아닌 2D이기 때문에, 하나의 정체성만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Q. 다양한 색깔을 소화하는 것이 지지의 매력인가?
A. 김새롬 담당자: 젊은 목소리로 아모레퍼시픽의 이야기를 전하는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과거 아모레퍼시픽은 어떤 마케팅을 했었는지 하나씩 살펴보던 중 지금의 GenZ가 공감할 법한 키카피를 발견하게 됐다.
정지혜 담당자: 과거 아모레퍼시픽이 구 ‘태평양그룹’ 시절 출시했던 뷰티 브랜드인 ‘지지(Green Generation)’를 보면서 요즘 GenZ의 감성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지지는 누구인가?’, ‘젊음의 색깔은 몇 가지일까?’라는 헤드 카피들이 자신의 색을 찾고 싶어 하는 GenZ들과 닮아있었다.
그래서 1980년대 뷰티 브랜드인 ‘지지(Green Generation)’로부터 이름과 외형적인 특징을 따온 인플루언서를 만들게 됐다. 특히 자신을 계속 탐구하고 변화하는 만큼 유행하는 것을 꾸준히 담을 수 있는 캐릭터로 만들고 싶었다.
또한 GenZ는 성장 과정에서 애니메이션을 즐겨보고 만화에 대한 향수도 있다. ‘세계관’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고 스토리텔링하는 문화를 좋아한다. 과거 1980년대의 뷰티 브랜드 속 ‘지지’가 2021년으로 타임슬립한 설정을 더해 세계관을 만들었다.
Q. 지난달 14일 공개된 지지 뮤직비디오에는 아모레퍼시픽 화장품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A. 김미나 아모레퍼시픽 언론홍보팀 과장: 지지에 대한 몰입감을 깨지 않기 위해서 아모레퍼시픽 화장품을 등장시키지 않았다.
이영란 담당자: 지지는 아직 수익화와 관련한 부분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고 있다. 외부 광고가 많이 들어오고 있지만 지지가 현재 지닌 색깔이나 방향성과 다르면 거절하고 있다. 베베가 보고 ‘나도 저거 좋아하는데 지지도 좋아하는구나’와 같은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광고는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