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대부' 윤호진 대표 "'고고80'으로 기운차게 달릴 것"

장병호 기자I 2017.06.06 14:52:31

창작뮤지컬로 한국 공연계 이끈 제작자
칠순 맞아 수현재씨어터에서 생일 파티
공연계 유명 인사·배우들 대거 참석해

5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열린 윤호진 에이콤 대표의 칠순 잔치 '고고70'에서 윤 대표(가운데)가 뮤지컬 '찌질의 역사' 출연진으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사진=장병호 기자 solanin@).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어떻게 하면 관객이 지루하지 않을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 늘 고민했다. 시간의 개념을 바꾸면 되더라."

오는 7일 칠순을 맞이하는 윤호진(69) 에이콤 대표가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칠순 잔치 ‘고고80’을 열었다. 에이콤 직원들이 윤 대표의 칠순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이 자리에서 윤 대표는 연극과 뮤지컬을 위해 한평생을 바쳤던 인생에 대한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내 인생도 이렇게 바쁘게 지나갔음에도 시간의 흐름을 못 느낀 건 작품을 만드는 즐거움 때문에 물리적인 시간을 잊었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한국 공연계에서 ‘뮤지컬의 대부’로 불린다. 1993년 설립한 공연기획사 에이콤을 통해 창작뮤지컬 제작으로 한국 뮤지컬의 성장에 힘을 보탰다. 1995년에는 제작비 12억원을 투입한 대형 뮤지컬 ‘명성황후’로 창작뮤지컬 역사에 한 획을 새겼다. 2009년 발표한 뮤지컬 ‘영웅’도 올해 초까지 꾸준히 무대에 올라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48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윤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할리우드 키드’로 영화판을 꿈꿨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로 홍익대 정밀공학과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공연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했다. 1970년 극단 실험극장에 입단해 연극 연출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가난했지만 꿈 하나만으로도 당당하던 시절이었다. “연극하다 망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선배 연출가 김의경의 물음에는 “망할 게 있어야 망하죠”라고 답했다. 하루 세 끼를 다 챙겨 먹지 못해 몸무게가 58㎏일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윤 대표는 “선배들이 소주 한 잔 사주면 그게 그렇게 좋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윤 대표의 인생은 1982년 전환점을 맞았다. 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을 통해 영국 런던으로 연수를 떠났을 때였다. 당시 초연으로 올랐던 뮤지컬 ‘캣츠’를 봤다. 윤 대표는 “이거라면 손해는 안 보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뮤지컬 작업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뉴욕대 대학원에서 공연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윤 대표는 자립을 목표로 한 뮤지컬 제작자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물론 과정은 험난했다. 빚을 갚으면 또 다시 빚을 지고는 했다. 윤 대표는 “사람들이 왜 번개탄을 사러 가는지 알 것 같았다. 공연으로 뉴욕에 갔을 때는 호텔에서 확 뛰어내려볼까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힘든 고비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극단적 낙관주의’였다. 윤 대표는 “지금 이 순간이 ‘바닥’이라면 더 떨어질 곳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일어났다”고 했다.

에이콤은 그동안 뮤지컬 ‘스타가 될 거야’ ‘겨울나그네’ ‘페임’ ‘둘리’ ‘맘마미아!’ ‘라롱드’ ‘몽유도원도’ ‘보이첵’ ‘완득이’와 연극 ‘39계단’ 등을 제작했다. ‘명성황후’와 ‘영웅’은 에이콤의 대표 레퍼토리로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지난 3일부터는 수현재씨어터에서 웹툰을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 ‘찌질의 역사’를 올리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공연계 유명 인사들도 대거 눈에 띄었다. 극단 미추의 손진책 대표와 국립창극단의 김성령 예술감독 부부,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 송승환 PMC프러덕션 회장, 박민선 CJ E&M 공연사업부문 본부장, 배우 정동환·서인석·안재욱·강필석 등이 참석했다. ‘영웅’의 배우 정성화, ‘명성황후’의 배우 김소향, ‘찌질의 역사’ 출연진은 작품 속 넘버를 패러디한 축하 무대도 선보였다.

윤 대표와 함께 영국 연수를 다녀온 손 대표는 축사를 통해 “윤 대표는 내게는 없는 무던한 성격과 극단적 낙관주의가 있어서 좋았다”며 “돈키호테처럼 창작뮤지컬로 한국 공연계에 뛰어들어 많은 성과를 남긴 만큼 앞으로도 계속해서 돌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성화는 “대표님 덕분에 뮤지컬배우로 잘 성장할 수 있었다”며 작품 속 넘버인 ‘영웅’을 개사해 불렀다.

윤 대표는 안톤 체홉의 연극 ‘바냐아저씨’의 대사로 끝인사를 전했다. 시종일관 웃음을 보였던 그는 끝인사를 하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이제 우리 곧 영원히 쉴 때가 오는데 슬퍼하지 마세요’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 말처럼 영원히 쉬는 날이 올 때까지 기운차게 달려보겠다. 옛말에 ‘골골80’이라고 하지만 나는 ‘고고80’으로 열심히 달리겠다.”

공연기획사 에이콤의 윤호진 대표(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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