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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제2베트남" 되나..내전 위기감

하정민 기자I 2004.04.06 11:42:44

미군-이라크인 유혈충돌 사태 확산될 듯
테러와 민심이반으로 "베트남" 악몽 재연우려

[edaily 하정민기자] 이라크 정국이 급격한 혼미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반미 성향의 시아파 무슬림과 미군 간의 대규모 유혈충돌이 발생한 것과 관련, 미군과 이라크인 양측 모두 강력한 보복을 선언하고 나서면서 양측간 긴장은 내전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더구나 오는 9일은 미군의 바그다드 함락 1주년, 10일은 시아파 무슬림의 경축일, 11일은 미국이 후세인 정권 붕괴를 공식 선언한 날이어서 더욱 우려를 낳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인파 운집과 반미시위에 따라 또다시 인명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 경우 이라크 사태는 더욱 수렁 속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미군-시아파 교전 왜 일어났나 지난 4일 이라크 남부 도시 나자프에서는 이라크 최대 종파인 시아파와 미군 주도 연합군이 충돌, 전후 최대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2500만명 이라크 인구 중 60%를 차지하는 시아파는 쿠르드족과 함께 전후 이라크에서 가장 강력한 미군의 지지자였으나 이틀간 공격을 통해 미군의 가장 강력한 적으로 돌변했다. 시아파의 강경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 추종 세력들은 지난달 연합군이 사드르의 고위 측근인 무스타파 알 야쿠비를 체포하고 `알 하우자`를 정간조치한 것에 대해 항의 시위를 벌이며 연합군과 강하게 충돌했다. 시위는 곧 이라크 전역으로 번졌다. 바그다드 동쪽 교외 지역인 사디르 시에서는 과격 이슬람 세력들이 관공서를 장악했고 북부 키르쿠크에서는 차량을 이용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날 미군과 이라크인 사망자 숫자만 50명이 넘으며 부상자도 200여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유혈충돌의 발단은 시아파 지도자의 체포지만 그 근본 원인에는 미군의 강압적인 대이라크 정책과 주권이양 공약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불신이 폭발한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연합군이 이라크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잔인한 고문과 학대행위를 자행하면서 이라크인들의 반감을 키웠다는 것. 여기에 지난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신 암살까지 겹쳐 서방 세계에 대한 이슬람 인들의 분노가 표출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상황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아파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가 미군과 무슬림 모두에게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지만 별 효과가 없다. 폴 브레머 이라크 최고행정관은 사드르를 범죄자로 규정한 뒤 전쟁을 방불케하는 강력한 진압작전에 나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사드르 역시 반미 투쟁을 선언하고 무슬림들의 항전을 촉구하는 등 이라크는 종전이후 최악의 혼란에 빠져든 상태다. ◇이라크 주권이양 차질없나..부시 vs 미 의회 의견대립 이번 사태로 오는 6월 30일로 예정된 연합군의 이라크 주권이양 작업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하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일단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일정에 차질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라크내에서의 폭력이나 시아파의 반란으로 주권이양 일정을 수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라크내의 폭력이 미국의 민주주의 정착노력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며 미국은 테러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미국 의회를 중심으로 이라크 사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계획을 강행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거세지고 있다. 이들은 연합군이 떠날 경우 이라크 정국 혼돈은 더욱 심해질 것이므로 유엔이나 나토 등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식으로 이라크 주둔 정책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인디애나주 상원의원이자 상원 외교위원장인 공화당 리처드 루가 의원은 ABC방송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철군시한을 6월30일로 맞춘 것은 비현실적이므로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델라웨어 주 상원의원 조셉 바이든 의원도 "6월 30일 이후 혼란이 극도에 이를 것이므로 나토 군을 참여시켜 미군 주도의 연합군 병력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는 이번주 안에 브리머 이라크 최고행정관을 출석시켜 이라크 정국상황과 6월30일 주권이양 계획 등에 대해 증언을 들을 예정이다. 이를 통해 이라크 문제에 대한 미국 의회의 의견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며 이것이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시 "사면초가"..이라크정책 지지율 최저 이 와중에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정책 지지율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대선 등으로 갈 길 바쁜 부시 행정부를 괴롭히고 있다. 조사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부시의 이라크 대처 방식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53%에 달했다. 이는 지난 1월 37%보다 16%포인트나 증가한 수치다. 부시의 전반적인 직무 수행에 대한 지지도역시 1월 중순 56%에서 43%로 추락, 사상 최저치를 나타냈다. 물론 아직 응답자의 57%는 이라크에서 군사력을 사용한 미국의 결정이 옳았다고 답변했지만 이라크전 사태 악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두려움은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주 이라크 팔루자에서 미국 민간인들이 시신이 이라크 인들에게 훼손된 장면이 TV를 통해 고스란이 미국 가정에 중계되면서 미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때문에 이라크 사태가 미국에게 `제 2의 베트남` 사태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종전 선언이 1년이나 지났고 후세인까지 체포됐지만 계속되는 테러와 민심이반, 불안한 치안 등으로 미국이 베트남전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끝나지 않는` 전쟁을 치를 지도 모른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케네디 전 대통령의 막내동생인 에드워드 케네디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은 "이라크는 부시의 베트남이며 부시 대통령은 닉슨 전 대통령 이후 가장 큰 불신감을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부시의 이라크 문제 해결책은 해법이 아니라 문제만 낳았을 뿐"이라며 "미국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저버린 부시를 몰아내고 새 대통령을 뽑아야한다"고 주장했다.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정책 미숙이 탄핵 사유가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닉슨 전 대통령의 고문을 지냈던 존 딘은 미국 PBS방송에 출연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와 이라크 사태 등을 고려할 때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은 충분한 탄핵 사유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 4년간의 최고 치적으로 외교안보 문제를 내세워왔지만 잇따른 유혈충돌로 더이상 이같은 자화자찬은 통하지 않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라크 사태 악화로 미국이 이라크는 물론 아랍세계 전체와 대립구도를 형성했으며 향후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11월 미국 대선 구도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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