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나이(인도)=edaily 지영한기자] 이곳 절기로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州)는 이제 막 겨울철이 지났지만 섭씨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평화정공은 이 지역의 최대 항구도시인 첸나이시(市) 인근에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합작법인을 가동하고 있다.
평화정공의 인도공장(PHC MANUFACTURING CO.,LTD)은 97년 현지업체와 50대 50으로 설립된 조인트벤처로, 눈 코 뜰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작업현장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곳이다.
이 공장은 지난해 생산능력을 12만대에서 20만대로 대폭 끌어올렸다. 하지만 향후 늘어날 수요전망으로 올해중 25만대의 생산능력을 목표로 추가적인 증설작업이 한창이다. 납품처이자 바로 이웃해 있는 현대모터인디아(HMI)의 빠른 성장속도에 보조를 맞춰야하기 때문.
이런 모습은 비단 평화정공 인도법인 뿐만이 아니다. 정신없이 바쁘기는 현대차를 따라 인도에 동반진출한 나머지 16개 한국 부품업체들은 물론이고, 인도 납품업체 등 HMI의 77개 전체 협력사들마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평화정공 인도법인의 주재원으로 근무중인 김정훈 차장은 "인도 소비자들이 느끼는 현대차의 네임밸류나 HMI의 발전속도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한다. 최근 2년 남짓동안 1차 벤더인 자신들의 공장이 2배 이상 성장한 것만 봐도 HMI의 성장속도를 대충 가늠할 수 있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현대자동차(005380)의 인도법인인 HMI는 첸나이시에서 서쪽으로 35Km 떨어진 십코트 공단내 65만평 부지위에 자리잡고 있다. 현대차는 처음엔 조인트벤처를 생각했으나 협상력을 발휘해 HMI에 100% 단독투자했다. HMI가 세워지기전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현대차는 이미 80년대 캐나다에 진출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1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89년 생산에 들어간 브루몽공장은 93년 10월 가동을 멈춰섰다. 이러한 브루몽에서의 실패는 현대차에게 해외진출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했다.
하지만 격화되고 있는 글로벌 경쟁체제에 맞서고, 북미시장에 치중된 수출시장을 다변화하고, 고철로 변할 운명에 처한 부르몽의 설비를 조금이라도 재활용하기 위해서도 현대차는 해외 생산기지가 필요했다. 결국 러시아 중국 인도를 놓고 고심하다 신흥시장 첫 진출기지로 인도 첸나이를 낙점했다.
HMI는 94년부터 설립이 검토돼 96년 투자결정이 최종 확정됐다. 98년 10월엔 드디어 인도공장 첫 작품인 콤팩트(소형차)급의 쌍트로(국내명 비스토)가 첫 선을 보였다. 이듬해 10월에는 미드사이즈(중소형차)급인 엑센트(국내명 베르나)가, 2001년 7월엔 프리미엄(고급차)급인 쏘나타가 연이어 출시됐다.
2004년 4월과 7월엔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XD)와 겟츠(국내명 클릭)가 추가로 출시될 예정이다. 이럴 경우 HMI는 성장이 정체된 경차부문과 시장규모가 미미한 럭셔리 최고급 세단 등 양극단 세그먼트(차급)를 제외하고, 소형차에서 중형차, 그리고 고급차로 이어지는 강력한 라인업을 구축하게 된다.
물론 HMI가 이미 투입한 차량들은 한결같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단기간내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볼륨카의 성격으로 투입된 쌍트로의 경우 돌풍을 일으키는데 성공했고, HMI는 짧은 시간안에 인도시장에서 확실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쌍트로가 신고식을 성공적으로 치러냄에 따라 HMI는 자신감을 갖고 쌍트로의 상위모델인 엑센트와 쏘나타를 잇달아 투입했다. 이들 후속 차량들은 전략적으로 가격이 비싸게 책정됐으며, 이 전략이 성공함으로써 HMI는 인도 소비자들에게 현대차가 고급차란 이미지를 각인시켜주는 동시에 수익성을 큰 폭으로 제고할 수 있었다.
쌍트로는 지난해 인도 내수시장에서 9만3854대나 팔려 소형차(B) 세그먼트 점유율(28.2%)이 타타그룹 계열인 텔코의 인디카(23.4%), 마루티 젠(18.7%) 등의 추격을 따돌리고 동급 1위를 차지했다. 엑센트와 쏘나타도 동급 세그먼트 점유율이 각각 20%(2만5002대)와 26%(1264대)을 기록하며 경쟁차종 가운데 최상위권에 랭크됐다.
안수웅 한화증권 연구위원은 "인도에서 현대차의 전망은 매우 밝다"고 분석했다. 인도시장이 지금은 마루티 등을 위주로 경차 중심의 시장이지만 앞으로 현대차의 전략차종들이 포진한 하이엔드마켓(고급차시장)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다 현대차가 기업이미지를 좋게 심어놓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실제 HMI에서 생산되는 차량들은 인도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여기에다 지난해부터는 해외수요 확대로 수출물량도 크게 늘어났다. 수출의 경우엔 인도정부와의 약속도 있었지만 내수·수출간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중장기적인 수요기반을 안정적으로 가져가겠다는 양수겸장(兩手兼將)의 전략이 숨어있다.
HMI는 지난해 15만724대를 생산해 3만416대를 유럽 등지에 수출했다. 올해엔 가동시간을 최대한 늘려 21만5000를 생산해 이중 6만9500대를 수출할 계획이다. 본격적인 25만대 생산체제로 진입하는 2005년엔 15만대는 내수시장에서 판매하고 10만대는 수출물량으로 배정할 예정이다.
박영만 HMI 생산관리부장은 "인도 내수시장은 물론이고 수출 주력시장인 유럽지역 모두에서 공급이 수요를 쫓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올해만해도 국내외 전체적으로 수요가 25만대 안팎이어서 수요가 올해 생산계획량(수정치 21만5000대)를 초과한 상태"라는 설명이다.
현대차의 이같은 성공이 글로벌 메이커들을 자극하고 있는 것도 사실. 그동안 일본업체들은 중국과 동남아시장에만 집중했다. 인도에 진출한 서구업체들은 적절한 모델이 없어 설비확장을 망설였다. 그러던 차에 현대차의 성과는 이들에게 자극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벌써부터 일본차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혼다의 경우 구형 어코드가(Accord)가 인도에서 쏘나타와 경쟁이 되지않자 뉴어코드를 들여온데 이어 시티(City)의 후속인 뉴시티를 엑센트의 대항마로 출시하는 등 점차 싸움을 걸어오는 양상이다. 여기에 도요타의 움직임도 심상치않다.
도요타는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섀시를 들여와 매우 조잡한 반면 가격을 크게 낮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퀄리스`를 팔아 크게 재미를 보고 들떠있는 분위기다. 얼마전부터는 도요타의 유럽시장 베스트셀링카인 `야리스`가 인도 소형차시장에 투입될 것이란 소문도 나돌고 있다.
더욱 긴장되는 대목은 인도와 태국간에 체결된 자유무역협정(FTA). 도요타는 현재 태국에 완성차와 부품공장을 갖고 있다. 때문에 퀄리스의 경우처럼 태국산 부품을 들여와 싸구려 차를 쏟아낼 저력만큼은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첸나이지역 딜러점(MPL HYUNDAI) 사장인 라빈드라나단(S.RAVINDRANATHAN)씨는 "일본차에 대한 우려는 `기우`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기본적으로 인도시장이 브랜드에 의해 좌우되는 시장이 아니라 `가격에 대한 가치`(Value For Money)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즉, 똑같은 가격을 주고 차를 사더라도 그 차가 어느 정도의 옵션을 갖고 있고 어느 수준의 품질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데, 일본차들이 제 아무리 유명한 브랜드로 들어오더라도 `가격에 대한 가치`측면에서 현대차의 경쟁이 되지 못할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다만 "현대차가 이미 좋은 이미지를 구축했지만 이를 더욱 강력히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딜러의 입장에선 "아무래도 마루티의 다양한 모델처럼 현대차가 신모델을 지속적으로 투입해 시장의 활력을 주도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많은 사람들은 HMI가 이미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HMI의 박우근 이사는 손사래를 친다. 그는 "이제부터 제2 도약을 위한 경쟁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제2 도약이란 몇 년내 마루티를 제치고 인도 승용차시장을 석권하겠다는 무서운 야심을 의미한다.
박우근 이사는 HMI가 이제 막 성공의 초석을 다져놓고 그 성공을 향해서 뛰기 시작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마디로 지금까지의 성과에 만족할 수 없다는 얘기다. 19일 저녁(현지시각)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전세기편으로 첸나이를 방문, `아직도 배고프다`는 현대맨들을 격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