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3년, 집유 5년’의 ‘재벌 정찰제 판결’ 무너졌다..파장은?

이승형 기자I 2012.08.16 12:01:11
[이데일리 김현아 한규란기자] 국내 재벌 총수들에게 해당되던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이라는 ‘정찰제 판결’이 무너졌다.

16일 김승연 한화(000880)그룹 회장은 회사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떠넘긴 혐의로 징역 4년, 벌금 50억원을 선고받고 전격적으로 법정구속됐다.

재계와 법조계에서는 이날 판결을 대단히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과거 횡령·배임·분식회계 등 ‘화이트 범죄’ 혐의로 재판받은 재벌 총수들은 한결같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재판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100억원 대의 탈세와 배임이 인정됐음에도 징역 3년과 집행유예를 받은 뒤 2009년말 특별사면을 받았다.

앞서 2006년 정몽구 현대차(005380)그룹 회장은 약 700억원의 횡령과 1000억원대 비자금 조성에도 불구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은 뒤 불과 73일만에 특별사면됐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최태원 SK(003600)그룹 회장과 박용성 전 두산(000150)그룹 회장도 분식회계 등의 혐의가 인정됐지만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에게도 물론 특별사면이 뒤따랐다.

이처럼 ‘판박이 판결’이 반복해서 나온 것은 형법상 집행유예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에만 선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내 재벌들은 아무리 큰 범죄를 저질러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에 이어 특별사면을 받는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그동안 국민들은 재벌 총수들을 위한 ‘유전무죄 무전유죄’식 판결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며 “법 수호에 앞장 서야할 지도층 인사들이 오히려 죄를 짓고도 합당한 벌을 받지 않는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서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판결로 이같은 관행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화측에서 항소 의지를 밝히면서 상급 법원 판결이 남아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재벌 총수의 법정 구속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되면서 재벌 일가들이 누렸던 사법적 특혜에 대한 지적들이 나오는 것도 이같은 분위기에 힘을 더하고 있다.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김 회장 공판을 앞둔 이날 오전 “재벌총수에게 면죄부를 주는 잘못된 관행을 끊지 않으면 불법부당 행위를 근절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최고위원은 “과거 재벌총수는 수천억원을 횡령, 탈세해도 경영상의 이유를 내세워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한두달 뒤 사면받았다”며 “횡령, 탈세는 남의 돈을 도둑질했다는 뜻인데 일반 국민이 수천억원을도둑질했다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특히 오너가 재판을 받고 있는 SK그룹 등의 경우 이번 판결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재계에서는 ‘역차별’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반기업 정서’에 따른 ‘마녀사냥’식 재판이 돼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재벌이라고 해서 특혜를 주는 것도 안되겠지만 경제민주화 논란때문에 사건의 실체와 무관하게 더 가혹한 형이 내려져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 관련이슈추적 ◀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법정구속` 기사 보기

▶ 관련포토갤러리 ◀
☞ `한화` 김승연 회장, 선고공판 사진 보기

▶ 관련기사 ◀
☞재판부 "양형기준대로" vs 전경련 "김승연 회장 구속 유감"
☞진보신당 "김승연 회장, 징역 4년도 한참 모자라다"
☞김승연 "글로벌 역할 달라 했는데" 결국 구속‥한화, 큰충격
☞김승연 한화 회장 구속..재판부가 밝힌 실형이유는?
☞[특징주]한화, 김승연 회장 실형 선고에 '급락'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