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에게 묻는다3]송진우의 '제구력 투수로 살아가는 법'

정철우 기자I 2007.06.05 13:48:46
[이데일리 정철우기자] '회장님' 한화 송진우(41)는 현역 최고의 제구력 아티스트다. 직구 구속은 140km를 넘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스트라이크 존 곳곳을 누비는 공은 그에게 '한국 프로야구 첫 200승 투수'라는 명예를 안겨줬다.

송진우가 처음부터 제구력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그는 대표적 좌완 강속구 투수였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90년대 말 그는 다른 투수가 돼 돌아왔다. 힘을 뺀 대신 자로 잰 듯한 제구력으로 타자를 상대했다. 그전같은 통쾌함은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그 빈자리는 절묘함으로 채워졌다.

이후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마운드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다. '1km 빨라지려고 노력하기보다 1cm 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라'는 멋들어진 그의 조언은 결코 가볍게 들을 수 없는 얘기가 됐다.

파워 투수에서 제구력 투수로의 변신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살살 던진다고 모두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 어떻게하면 제구력이 향상될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하면 송진우처럼 던질 수 있습니까." 그의 답은 쉬운 듯 했지만 또 너무도 어려웠다.

▲ 변신의 계기
앞서 말한 것 처럼 송진우는 데뷔 초기 전형적인 파워형 투수였다. 던질 수 있는 변화구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었다. 꾸준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잘 던지는 날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의 송진우는 타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그렇게 10여년을 보낸 뒤 송진우는 달라졌다. 무엇이 그를 변심하게 한 것이었을까.

"89년에 빙그레에 입단해 선발로 뛰었다. 당시만해도 젊고 힘이 있었고 스피드에도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직구로만 상대해도 많이 이길 수 있었다. 변화구나 컨트롤에 대한 의식보다 직구 스피드를 늘리는데 많은 신경을 썼다.

첫 시즌이 끝나고 다이에 호크스(현 소프트뱅크) 캠프를 다녀왔는데 이후 체력적 부분이나 경기 운영 능력등이 많이 좋아졌다. 90년 마무리로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이유다. 구대성 선수가 들어온 뒤 선발로 다시 전환했는데 여전히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길게 가지 못했다. 스피드는 크게 줄지 않았다. 그러나 결정구가 부족했다. 제구력까지 잘 안되니 타자들이 노림수를 가지고 들어왔다. 볼카운트 2-0 이 돼도 승부가 어려워졌다. 타자를 이길 수 있는 위닝 샷이 부족했던 탓이다. 벽에 부딪혔다."

▲ 체인지업과의 만남
송진우와 체인지업은 뗄레야 뗄 수 없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서클 체인지업은 그의 손을 거쳐 인기 상품이 됐다.

송진우의 체인지업은 단순히 구종의 추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송진우는 "체인지업을 던지게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게 됐다"고 했다. 지금의 송진우를 만든 밑바탕이 바로 체인지업이다.

"97년과 98년 내리 10승에 실패했다. 변화를 줘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마침 팀이 4강에 떨어지면서 1,2군 전체가 애리조나로 마무리 훈련을 떠났다. 거기서 서클 체인지업을 배웠다. 제프라는 이름의 코치(정확한 보직등은 기억 못함)이었는데 그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제프 코치는 처음엔 별 얘길 안했다. 통역이 100승 투수라고 소개하니 그저 지켜보기만 하다 손목을 강화하라는 말 만 했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체인지업 던지는 법을 내가 먼저 물었다. 그러니까 자세히 알려주더라.

처음엔 쉽지 않았다. 던질 수는 있는데 자신을 갖지 못했다. 아무래도 공이 느리다보니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걸 타자들이 속을까...' 그러나 실전에서 쓰며 자신감이 생겼다.

타자들은 새로운 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체인지업이 되면서 직구도 덩달아 살아났다. 솔직히 그때까지 슬라이더나 커브도 잘 못던졌는데 체인지업을 던지면서 두개 모두 재미를 많이 봤다. 슬라이더도 몸쪽 뿐 아니라 바깥쪽도 던질 수 있게 됐다. 그리고 1999년 15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태게 됐다. 그때부터 제 2의 전성기가 열리게 됐다."

▲ 체인지업과 제구력의 상관관계
이쯤 듣다보니 의문이 생겼다. 체인지업 하나 장착했다고 갑자기 제구력이 잡히다니. 게다가 슬라이더까지 덩달아 좋아졌다고 했다. 체인지업이 무슨 마술이라도 부리는 마법사란 말인가. 송진우는 웃으며 그 이유를 설명해줬다.

"체인지업은 우선 타자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여러가지를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집어 넣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직구나 슬라이더가 좋아지고 제구력이 잡히게 된 배경에는 자신감이 있다. 투수들이 위기에서 제구력이 흔들리는 것은 세게 던져야된다는 생각 때문에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이다. 어떤 공이던 자신이 생기면 쓸데없는 힘이 들어갈 필요가 없다. 팔 스윙도 자연스럽고 힘있게 나올 수 있다.

난 체인지업에 자신감을 갖게되면서 팔 스윙이 자신있게 나오며 힘이 붙고 밸런스도 좋아지는 효과를 봤다. 자연스럽게 제구력이 좋아진 이유다.

▲ 제구력 잡는 법
아무래도 부족했다.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달라고 졸랐다. 제구력이 좋아지는 훈련법이 따로 있을 듯 했기 때문이다. 송진우는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전체적인 훈련 방식이 똑같다. 자기가 자신 있는 바깥쪽을 쭉 던지다가 어느정도 된다 싶으면 몸쪽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몸쪽 3개 바깥쪽 3개. 그다음 변화구도... 이렇게 다양하게 준비한다.

피칭의 기본은 'X자'다. 몸쪽 높이 갔다가 바깥쪽 낮게 가는 식으로 풀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훈련때부터 이런 식으로 준비해야 한다. 잘 할 수 있는 것부터 해가는 것은 결국 단점을 고치기 어려워진다.

카운트가 유리할 때 몸에 힘이 들어간다거나 밸런스가 무너지며 공이 몰리는 경우가 많다. 위닝샷을 던질때는 내가 던지고 싶은 곳에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준비가 안되면 몰리는 거다. 그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실제 마운드에 올랐을 때와 유사한 피칭. 똑같은 곳에 두 번 던지지 않으면서 'X자'로 지그재그식 투구 훈련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한가지 덧붙이면 투구 훈련이 없는 날의 준비다. 보통 선발로 던지고 나면 이틀 뒤에 롱 토스를 한다. 몸도 안되고 어깨도 뻐근하기 때문이다. 이때도 훈련을 마치고 실전 대비를 하는 것이 좋다.

마운드에서 홈 플레이트까지는 18.44m다. 나는 롱 토스 하는 날 15m정도에서 50%의 힘으로 던지면서도 제구력 잡는 연습은 잊지 않고 있다. 이때도 상황을 가정하고 시뮬레이션 투구를 해보는 것이 좋다. 팔 푸는 개념의 날이지만 이런 훈련을 하면 제구력이 향상될 수 있다.

98년 외국인 선수들이 들어온 뒤 몇몇 선수들이 이런 준비를 하는 걸 보고 체득한 방법이다. 투수는 항상 연구해야 한다. 2군 선수에게도 배울 것이 있으면 배워야 한다. 눈과 마음을 열어야 발전할 수 있다.

▲ 우문현답
대강의 궁금증을 푼 뒤 송진우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투수들을 지켜보며,또 들은 얘기들을 물었다. 때론 답하기 힘든 무식한 질문도 있었지만 거침없는 답이 돌아왔다. 프로 입문 후에만 1만2,465명의 타자(포스트시즌,올스타전 포함)를 상대하고 또 그 이상의 많은 공을 불펜에서 던지며 쌓은 노하우 덕이리라."

-1cm만 빼도 된다고 했는데 그 정도로는 타자의 힘을 이기지 못하는 것 아닐까.
"방망이가 먹히거나 배트 끝에 맞으면 아무래도 힘이 덜 실린다. 홈런 될 것이 펜스 앞에서 잡힌다. 야구가 희한한 것이 양 사이드로 제구가 잘 되면 야수 정면으로 간다. 몰리는 공이 야수들의 공간으로 가게 돼 있다. 결국 옆으로 잘 빠져야 투수가 살 수 있는 것이다. 또 공이 조금만 빠져도 타자가 볼때는 무지하게 멀리 보인다. 옆에서 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타자가 타석에 서서 시각적으로 느끼는 차이는 정말 크다. 1cm만 &48820;도 타자를 크게 속일 수 있다."

-김인식 감독은 최대성을 상대로 멀뚱히 서 있으면 볼넷을 얻을 수 있을거란 말을 했다.
"최대성은 지난해에 비해 크게 발전했다. 좋은 투수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 자기 공에 자신감이 생겼고 카운트 불리할 때 변화구를 던질 줄도 안다. 여건은 갖춰졌다. 그러나 아직 옆에서 볼 땐 불안한 면이 있다. 기복이 있다는 소리다. 좋을때 나쁠때 차이가 크다는 뜻이다. 그런 부분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계속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잘 해내리라고 생각한다."

-인상적인 후배 투수는.
"요즘 좋은 투수들이 워낙 많다. 계속 타고투저였다가 지난해부터 투고타저 현상이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다. 여러 조치를 취했지만 여전히 투수들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꼽는 것이 어렵다. 우리 팀 류현진도 좋은데... 정말 어렵다. 아... 현대 신철인이 스피드에 비해 볼 끝이 좋다. 볼 끝만으로는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

-류현진은 체인지업을 금세 익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던지기 쉬운 공인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체인지업을 그렇게 빨리 익힌다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구대성 선수에게 전수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류현진은 그전에 팜볼을 던졌다고 한다. 체인지업과 던지는 유형이 거의 비슷하다. 팜 볼이 손에 익어 있었기 때문에 더 빠르게 익힐 수 있었던 것 같다."

-위기땐 아무래도 빠른공이 더 미더워 보인다.
"매덕스가 이런 말을 했다더라. '위기에 몰리면 누구나 스피드를 더 신경쓰게 돼 있다. 벤치에서도 그렇고 마운드에 선 투수도 그렇다. 그러나 스피드보다는 제구력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찬스(투수의 위기)땐 타자가 적극적이 되기 때문이다.' 스피드로 압도할 수 있는 투수라면 좋겠지만 점점 그런 방식은 통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투수란 무엇인가.
"투수는 고급 기술자다. 내로라하는 연구소의 박사들 못지 않게 좋은 기술이 필요하다. 좋은 투수 하나 만들기가 무지하게 어렵다. 한 팀에 서른명 정도는 투수가 있지만 그들 중 모두 제대로 된 투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 투수다. 난이도가 무척 높다. 그래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한 마디로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2군 선수이건 상대편이건 좋은 투수 볼은 열심히 보고 내 것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나만 생각하지 말고 주위에서 많은 것을 배워 연습한다면 좋은 투수가 될 수 있다."

-듣다보니 자신감만 가지면 좋은 투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공에 자신감을 갖는 건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있게 던져도 맞으면 겁이나게 마련이다. 그만큼 충분한 준비가 돼 있어야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는 거다. 내 볼만 믿고 던진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땀이 동반돼야 제구도 살고 힘도 붙는거다. 자신감이 먼저가 아니라 훈련과 많은 실전을 통해 자신감을 갖게돼야 진짜다."

-투구 훈련량은 많아야 할까.
"노하우가 쌓인 고참들은 그럴 필요가 줄어들겠지만 신인급 선수들은 다르다. 많은 공을 던져봐야만 제대로 된 준비를 할 수 있다. 투수는 던지면서 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한번 느꼈다고 거기서 끝이 아니다. 계속 던져보며 그 감을 몸이 알게 해야 한다. 몸에 무리만 없다면 많은 공을 던지며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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