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디지털 장의사’인 김호진 산타크루즈컴퍼니 대표는 지난 19일 서울시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나 “그동안 여러 이유로 60억원 넘는 사업 적자를 봤지만, 산타처럼 희망과 선물을 주는 좋은 일을 한 것 같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디지털 장의사는 원치 않는 디지털 흔적을 찾아 지워주는 ‘디지털 삭제’ 서비스를 하는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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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디지털 장의사’ 개념조차 생소했던 2013년에 창립해 뚜벅뚜벅 일해왔다. 지난 11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교육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가 디지털 잊힐 권리를 제도화하기로 밝히면서, 디지털 장의사는 더 중요해질 전망이다. 개인정보위 주도로 올해 가이드라인, 내년 시범사업, 2024년 아동·청소년 개인정보 보호법 제정으로 제도화가 추진된다.
그동안 김 대표는 개인정보위, 교육기관을 찾아 아동·청소년 개인정보 보호법 등 이른바 ‘디지털 잊힐 권리법’에 대해 자문해 왔다. 김 대표는 청소년들이 디지털 개인정보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서 디지털 폭력을 저지르거나 겪는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코로나 비대면이 되자 청소년들이 온라인에서 친구를 비방하는 일이 더 많아졌고, 각종 욕설·게시물에 혼자 끙끙 앓는 청소년들이 더 늘어났다”고 전했다. 그는 이처럼 딱한 상황에 처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소년들이 도움을 청하면, 문제가 되는 게시물을 무료로 삭제 조치를 해줬다. 문제 게시물을 올린 학생의 경우 ‘반성문’을 받기도 했다.
문제는 이렇게 지워도 ‘디지털 흔적’을 완전히 삭제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의뢰를 받으면 포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유튜브 등 온라인에 올라온 문제 게시물을 모두 찾는다”며 “이후 포털사 등에 일일이 연락해 삭제가 되도록 하지만, 몇 개월 후 문제 게시물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한다. 3개월, 1년 모니터링을 하는데 완전히 지우려면 평생동안 삭제 조치를 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김 대표는 정부가 나서서 법을 제정하고 ‘디지털 잊힐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려면 몇 가지를 생각해달라고 요청했다. 우선 그는 “국내 포털뿐 아니라 구글·메타 등 글로벌 기업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규제·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고 네이버·다음의 게시물만 삭제하면 실효성 없는 제도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포털 서비스의 경쟁력만 훼손시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디지털 잊힐 권리는 개인이 잊고 싶은 사적인 내용에 한정해야 한다”며 “공적인 정보는 국민의 알권리를 고려해 삭제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현직 정치인들이 논란이 되는 온라인 게시물에 삭제 요청을 해도, 산타크루즈컴퍼니는 삭제 조치에 불응해왔다.
김 대표는 “청소년들이 디지털 폭력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며 “학교·지자체·정부 차원에서 초중고 학생들을 위한 디지털 폭력 예방 교육을 했으면 한다. 몇 시간 만이라도 청소년들을 위한 개인정보 교육을 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