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첫 번째 여행지, 새별오름의 넓은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탁 트인 벌판에 홀로 솟아있는 새별오름이 거대한 모습으로 내게 왔다. 하늘 빛깔이 이럴 수도 있나 싶을 정도로 파랗다. 새별오름은 오름 전체가 억새로 뒤덮여 있다. 억새밭과 조릿대 군락지가 많은 제주는 겨울 풍경이 황량하지 않다. 게다가 연한 풀들이 여기저기 초록 들판을 이루고 있어 이곳에는 겨울이 없는 땅인 줄 착각하곤 한다.
정상에서 바라보니 저 아래 까마득하게 주차장이 보이고, 자동차와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아 보였다. 조금 전 저 밑에서 오름 정상에 있는 사람들이 참 작다고 생각했는데 금세 입장이 바뀌었다. 밑에 있을 때는 위의 사람을 알 수 없고, 또 위에 있을 때는 아래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사는 수직의 세상 같다.
왕복 30분 정도 소요되는 새별오름. 너무 짧은 만남이라 작별을 고하기가 아쉬웠다. 정상을 지나 동쪽으로 내려가면 주차장이 있던 데로 이어진다. 왔던 길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우리는 내려가지 않고 앞쪽에 보이는 이달봉으로 갔다. 봉우리 정상에는 현무암 돌담을 사각으로 두른 무덤이 있다. 산 밑이나 밭 중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제주의 무덤이다. 죽은 영혼이 드나들 수 있도록 귀퉁이에 돌문을 내었다. 무덤의 주인은 높은 곳을 좋아했나 보다. 오름 꼭대기 한가운데에 묻힌 무덤의 주인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하다. 한평생 오름에서 살다가 오름에서 죽었을까? 그의 기쁨과 슬픔과 눈물도 고스란히 오름을 오르내렸을까? 그래서 죽어서도 오름을 떠나지 못한 걸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나를 쫓아왔다.
촌장과 나는 인적이 드문 서북쪽 방향으로 길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오솔길 중간쯤 무성한 억새밭에서 시원하게 막걸리 한 잔 나누어 마셨다. 새별오름처럼 달콤하다. 그때, 억새밭에서 노루가 뛰어나왔다. 급하게 셔터를 눌렀지만 워낙 잽싼 녀석이라 궁둥이만 찍혔다. 자식, 쩨쩨하기는. 모델이 되어주지 않는 노루에게 툴툴거리며 가볍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쪽에서는 생을 다해 가는 억새가 마지막 아름다움을 불태우고, 그 옆에서는 풀들이 새순을 견고하게 올리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나란히 서 있는 소나무 두 그루도 하나는 죽어서 갈색이고 다른 하나는 강건한 초록이다. 그렇게 새별오름의 억새들은 제주의 완고한 바람 앞에서 서서히 비워져 갔다.
반 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는 새별오름을 다섯 개의 봉우리를 따라 넓게 원을 그리듯이 돌고 돌아 2시간 만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느리게 가는 시간 속에서 낯선 공기를 한껏 마시고도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았다. 주차장 한편에는 푸드 트럭들이 길게 늘어서서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제주 새별오름 여행팁]
2019년 들불 축제는 3월 7일부터 3월 10일까지 4일간 열리며, 셋째 날 오름 불놓기 행사가 진행된다. 행사에 관한 자세한 체험 행사 정보는 제주시청 홈페이지를 참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