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이데일리 김유정기자] 부자는 많아도 `존경 받는 부자`는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1등 기업`은 어느 분야에나 있지만 `사랑 받는 1등`은 드물다.
스웨덴을 먹여 살리는 부자 가문 `발렌베리`는 그런 면에서 보기 드물게 모범적인 재벌 가문이다. 발레베리는 지난 2003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벤치마킹`을 해야 할 만한 모델이라며 찾아온 곳이기도 하다.
제1부, 글로벌 기업들은 지금
①사회와 기업은 하나다
②커피향의 죄책감을 씻다
③`最善`이 최고의 부가가치
④`생산활동=사회공헌`
⑤`국민기업` 발렌베리를 가다
제2부, 한국기업 새 부가가치에 눈뜨다
제3부, 기업환경이 부가가치를 만든다
노벨상 발표로 세계의 이목이 한창 집중돼 있던 시기에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중앙역에 내려 약도에 의지해 13~19세기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10분쯤 헤집고 다닌 끝에 그림 같은 공원을 지나고 왕립 오페라를 거쳐 100년은 넘은 듯한 박물관 같은 건물 앞에 도달했다. `인베스터(Investor AB)`라는 작은 깃발이 눈에 띄였다.
이 곳이 바로 1916년에 설립돼 스카니아, 엘렉트로룩스, 사브, 에릭슨, ABB, 엔실다은행(SEB) 등 내노라하는 세계적인 기업들을 거느린 발렌베리 가문이 이끄는 지주회사다.
◇도덕적 우월성과 소박함이 존경의 비결
발렌베리는 스웨덴에서는 유서 깊은 가문이다. 2차 대전 당시 외교관 신분으로 헝가리유태인 수십만명을 구해낸 '스웨덴의 쉰들러' 라울 발렌베리를 비롯해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경영자들도 많다.
발렌베리 가족 기업은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고, 스웨덴 증권거래소 시가총액의 40%를 차지할 만큼 엄청난 자금 규모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인베스터의 피터 발렌베리 CEO와 제이콥 발렌베리 회장의 재산은 지난해 기준 199억원, 52억원으로 각각 집계돼 1조원이상의 부를 축적한 국내 기업들에 비해 무척 소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레드릭 린드그렌 인베스터 기업 커뮤니케이션 총괄 담당자는 "발렌베리 경영자들과 기업들은 스웨덴 경제를 좌지우지하면서도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인베스터의 주주를 살펴보면 주요 대주주 가운데 크누트앤앨리스발렌베리 재단과 마리앤느마쿠스발렌베리재단, 마쿠스앤아말리아발렌베리 추모재단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인베스터 순이익의 상당 부분이 이달 재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베스터는 스웨덴의 과학 인재 양성을 이끌고 있다.
◇'발렌베리 왕국은 없다'..자회사 철저한 독립 경영
발렌베리 기업들은 SEB 등 금융과 산업를 두루 갖추고 있으면서도 견제와 균형을 잘 이루고 있는 점이 놀랍다.
이에 대해 린드그렌은 "휴대폰 제조업체인 에릭슨과 제약업체인 아스트라제네카 등 자회사들이 다양한 업종에 속해있는 만큼 모든 자회사를 독립기업처럼 운영, 각각의 경영과 성과를 철저히 분리하는 것이 인베스터의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가족 경영 대기업에서 순이익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자회사가 존재하는 것과 매우 다른 모습이다. 다시말해 어느 한 자회사의 손실을 지주회사가 떠맡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복수경영제`도 발렌베리만의 특성이다. 현재 인베스터는 피터 발렌베리 명예회장과 와 제이콥 발렌베리 회장, 피터 발렌베리 주니어 이사 등 세 사람이 이끌고 있다.
린드그렌은 일부 언론에서 '투 톱' 경영체제가 발렌베리 기업의 특성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알고 있다며 꼭 두 명의 선장을 두는 것이 방침은 아니라고 밝혔다. 현재 인베스터에 세 명의 발렌베리 경영자들이 있는 것처럼 두 명이든 세 명이든 혹은 그 이상이 됐든 금융과 산업 등 분야를 분리해서 각각의 책임자를 두는 임원 겸직을 방침으로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무리 유능한 경영자라도 독단적인 경영으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금융과 산업이라는 전문분야를 분리해 열할을 분담하기 위한 것이다.
◇`차등주`제도가 경영권 유지 배경..국내 적용은
발렌베리는 차등주제도를 갖고 있어 소유지분이 적더라도 훨씬 큰 영향권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발렌베리는 일반주보다 의결권이 10배이상 높은 주식을 확보하고 있어 편법으로 계열사를 동원할 필요없다.
그러나 린드그렌은 국내 대기업이 자신들을 벤치마킹 모델로 삼고 자신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지만 꼭 발렌베리의 방식이 기업이 존경을 받는 비결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경제적 사회적 배경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 공헌이나 환원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업 경영 그 자체를 통해 존경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따른다.
그는 발렌베리 기업들 역시 이윤을 추구하는 만큼 "지역사회를 위해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며 이윤 추구 과정에서 지역사회나 노조, 직원, 정부 등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경영 전략을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베스터 역시 끊임없이 그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그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