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모토야] 푸조는 통상적으로 숫자로 된 차명을 쓴다. 그것도 가운데에는 항시 한 개의 `0`이 들어가야 한다. 이 작명법은 푸조가 특허를 낸 것으로, 이 때문에 포르쉐가 356의 후속으로 1963년에 발표한 새로운 스포츠카의 이름을 901로 지으려다가 `911`이 되어버린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런데 2004년, 동급 최초의 슬라이딩 도어를 장착한 소형 MPV, `1007`을 시작으로 푸조 모델들의 이름에 0이 하나 더 들어간 모델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0이 하나 더 들어간 푸조 모델들은 SUV 및 MPV 모델로 출시되어, 푸조의 모델 라인업 확장에 일조하고 있다.
푸조의 3008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나타난 모델이었다. C세그먼트 해치백 모델인 308의 PF2 플랫폼을 바탕으로 태어난 3008은 2009년부터 푸조의 크로스오버 SUV로 등장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등장 당시부터 걸출한 경제성을 자랑하는 푸조의 1.6 HDi 엔진과 MCP 변속기의 조합으로 주목 받기도 했다.
이번에 시승한 푸조 3008은 프랑스의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 `밀레`와의 제휴로 탄생한 모델이다. 밀레 에디션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기업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프렌치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보다 적극적으로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고 마케팅 측면에서 시너지 효과를 얻고자 기획된 것. 3008 1.6 eHDi 밀레 에디션은 전용 외장 사양과 밀레 텐트를 포함한 100만원 상당의 아웃도어 용품들이 함께 제공된다. 가격은 VAT 포함 4,040만원이다. 기본 1.6 eHDi 모델의 3,990만원에서 딱 50만원 추가된 가격이다.
3008 밀레 에디션 시승차는 실로 한 눈에 들어오는 외관을 하고 있다. 3008 밀레 에디션 발표 현장에 쇼카로 등장했었던 그 차다. 세계의 고봉이 표시된 지도, 프랑스의 삼색기, 사이드 미러 커버의 체크 무늬, 크고 작은 푸조와 밀레 로고가 새겨진 현란한 데칼 때문에 눈이 다 어지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이 현란한 데칼은 실제 밀레 에디션에 포함되는 사양이 아니다. 시판용의 밀레 에디션에 추가되는 외장 사양은 양쪽 사이드미러 앞에 하나씩 붙어 있는 밀레 엠블럼, 트렁크 리드의 밀레 엠블럼, 펄이 들어간 화이트 혹은 블랙 외장 색상 정도다.
올 해 페이스 리프트가 진행된 3008은 전면 디자인에 가장 많은 변화를 주었다. 기존의 호불호가 크게 갈렸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얼굴로 돌아왔다. 3008의 새로운 얼굴은 기존의 독특한 이미지를 벗기 위한 노력이 보이는 부분이다. 플래그쉽 세단인 508과 궤를 함께 하는 세련된 스타일로 일신되어 최근의 경향에 맞는 스타일로 변화했다. 뒷모습에서는 면 발광형 LED를 적용한 테일램프 외에 크게 두드러지는 변경 사항은 눈에 띄지 않는다. 면 발광형 테일램프의 내부 디자인도 자세히 보면 508의 것에서 가져온 듯한 느낌이 난다. 16인치 알로이 휠은 기존의 것과 같은 부품을 사용한다.
실내는 기존 모델에 비해 크게 변화한 부분을 찾기가 어렵다. 굳이 찾아내라면 직물 마감재의 패턴이 조금 달라진 정도다. 4천만원이 넘는 가격에 비해 품질감 면에서 다소 불만족스러운 마감 처리도 그대로다. 내비게이션 화면도 여전히 앞유리 바로 앞에 장착되어 있어, 조작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탁 트인 개방감을 주는 전방 시야와 `하늘`에서 그 이름을 가져온 시엘 루프 등의 만족스런 부분들 역시 그대로다. 통유리로 구성된 시엘 루프는 뒷좌석의 승객에게 말 그대로 `하늘을 안은 듯한` 개방감을 선사한다.
다소 큰 직경의 스티어링 휠은 다른 푸조 모델들에 비해 감아 쥐기에 편하다. 엄지 손가락이 닿는 부분과 하단 스포크의 메탈 마감은 그대로다. 단순한 구성을 가진 계기류는 시인성이 좋은 편이다. 센터페시아의 각종 버튼들은 비교적 직관적인 조작 체계를 가지고 있어, 사용하기 편리하다. 하지만 마감 처리가 다소 아쉽다. 센터페시아와 고광택 페인팅과 기어 레버의 크롬 도금은 햇빛을 크게 반사한다. 또한 먼지가 앉거나 손이 닿을 때마다 지문이 뚜렷하게 남기 때문에, 쉽게 지저분해진다.
앞좌석은 살짝 탄탄한 착석감을 지니고 있다. 운전석의 각도와 높이 조정은 모두 수동으로만 작동된다. 하지만 요추 받침은 물론, 머리 받침의 앞뒤 거리 조절도 가능하다. 조수석의 경우도 모두 수동으로만 작동하며 전후 슬라이딩과 등받이 각도, 머리 받침 거리만 조절 가능하다. 뒷좌석 공간은 널찍하다. 하늘을 한 눈에 들어오는 시엘 루프로 인한 개방감이 더해져, 체감 공간이 더욱 넓게 느껴진다. 물론 기본적으로 다리 공간과 머리 공간, 어깨 공간 모두가 넉넉한 편이다.
3008은 크로스오버 SUV를 지향하는 만큼, 수납공간에 대한 배려가 충실하다. 팔이 쑥 들어갈 정도의 사이즈를 자랑하는 중앙 콘솔 박스는 물론, 스티어링 휠 하단에도 수납공간이 존재하며 그 위로도 작은 선반이 마련되어 있다. 트렁크 공간의 운용에서도 남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다. 3008은 기본적으로 512리터의 트렁크 공간을 제공한다. 또한 상단의 선반을 제거하면 656리터로 증가하며, 6:4 비율로 접을 수 있는 뒷좌석을 모두 접으면 총 1604리터까지 늘어난다. 또한 상하로 분리되는 테일 게이트를 지니고 있으며, 트렁크 룸의 바닥재는 테일 게이트의 개폐 정도에 따라 높이를 조절할 수 있다. 이로써 보다 융통성 있는 공간 활용이 가능해진다.
시승차인 3008 밀레 에디션의 파워트레인은 1.6 eHDi 엔진과 6단 MCP 변속기로 구성되어 있다. 1.6리터 eHDi엔진은 112마력/3,600rpm의 최고출력과 27.5kg.m/1,750rpm의 최대토크를 낸다. 3008에 탑재된 MCP(Mechanically Compact Piloted)변속기는 수동변속기를 기반으로 한다. 대신 수동변속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클러치 페달 조작이 필요 없다는 것. 자동변속기처럼 운행할 수 있으면서도 중량 증가가 적고, 수동 변속기의 연비까지 고스란히 챙긴 물건이다.
그러나 이 MCP 변속기가 탑재된 PSA 차량들은 일반적인 자동변속기 차량과 같은 느낌으로 운전하려고 하면 위화감이 생기게 된다. 동력 전달이 중간에 `뚝`하고 끊겼다가 기어 단수가 오르면서 `울컥`하는 변속 충격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 만큼 변속 속도 자체도 느리다. 헌데 이 위화감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처음으로 수동변속기의 조작을 배웠을 때를 되새겨 보면 그 답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수동변속기는 변속 중에 가속페달을 `밟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이를 되새겨 볼 때, MCP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요령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푸조는 한 때, `MCP 운전법 7계명`이라는 것까지 만들기도 했었다. 그 중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 두 가지만 발췌하자면 첫째는 `적정한 회전 수를 맞출 것`, 둘째는 `변속 중에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어 줄 것`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요는 수동변속 차량의 운전 요령을 대입하라는 것이다. 유체 클러치 기반의 자동변속기에 익숙한 운전자는 초기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MCP의 특성은 차의 실질적인 성능을 크게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MCP는 수동 변속기에 기반하고 있는 만큼, 구동 손실 자체는 자동변속기에 비해 훨씬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정지 상태에서의 급가속이나 추월 가속 등에서 굼뜬 반응을 보이며, 변속 시간이 오래걸린다. 가속이 필요한 상황에서 가속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PSA 그룹도 이를 의식한 것인지, 최근에 더블 클러치 변속기를 새로 개발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MCP를 장착한 3008은 굼뜬 변속 속도 때문에 가속감이 답답하다. 1.6 eHDi 디젤 엔진의 힘은 충분하다. 그러나 기어 단수가 오를 때마다 변속기가 울컥거리며 가속시간을 지연시킨다. 때문에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하는 데 10초가 훨씬 넘게 걸린다. 평균적으로 기록한 0-100km/h 가속 시간은 14초 초반 대. 100km/h는 3단에서 4단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나오고, 항속 기어인 6단에서 100km/h로 정속 주행하고 있을 때에는 2,000rpm 언저리를 가리킨다. 힘은 모자라지 않으나, 변속기가 도와주질 못한다. 하지만 일단 기어가 물리고 나면, 엔진의 힘은 착실하게 노면에 전달되는데, 이 때의 감각은 나쁘지 않다. 태생이 수동변속기인 점이 이점으로 작용하는 부분이다.
푸조의 모델들은 전반적으로 하체가 탄탄한 경향이 있다. 3008 역시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지만 다른 푸조 모델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하체를 지니고 있다. 노면의 요철에 대해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일반적인 푸조 모델들과는 달리, 노면의 요철을 곧잘 걸러낸다. 고속 운행에서의 안정감도 크로스오버 SUV로서는 무난한 편. 급격한 코너에 들어가게 되면 역시 `고양이 발`라는 이명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덩치에 맞지 않게 몸놀림이 은근히 경쾌한 맛이 있다. 다른 승용 라인업에 비해서는 한 단계 뒤지지만 크로스오버 SUV로서는 기대 이상의 민첩함을 보여준다.
국내에 수입되는 3008은 4륜구동 시스템이 탑재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3008에는 다양한 노면 상황에 대한 적응력을 올리기 위해 독자적인 지형 적응 시스템인 `그립 컨트롤`을 제공한다. 일반(포장도로), 눈길, 진창길, 모래, 그리고 ESP Off의 다섯 가지 모드가 준비되어 있다. 진창길과 모래로 덮인 노면에서 테스트를 했다. 전륜에 가해지는 구동력을 제법 효과적으로 제어해주기 때문에 의외로 도움은 된다. 하지만 상시 4륜구동 시스템과 1:1로 비교하기에는 부족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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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 3008 1.6 eHDi 모델은 최대 1090kg의 견인 중량을 가지고 있다. 규격에 맞는 견인 장비를 설치해 준다면 사진에 보이는 750kg 내외의 소형 카라반 정도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운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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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 부문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PSA 그룹의 소생인 만큼, 연비는 우수하다. 가속 성능 부분에서는 결점이 보이기는 하지만 1.6리터 디젤 엔진과 MCP 변속기의 조합은 3008의 월등한 연비를 이끌어내는 주역이다. 또한 `i-StARS`라 명명된 푸조의 스톱/스타트 기능도 3008의 연비를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을 준다. 시속 7km/h 이하에서부터 작동하는 이 시스템은 다른 제조사의 것보다 월등히 빠른 재시동 시간과 시동 시의 진동이 적어, 운행 상의 스트레스가 적다. 공인 연비는 도심 16.1km/l에, 고속도로 21.3km/l, 복합 모드는 18.1km/l다. 실제 운행하며 기록한 트립 컴퓨터 상의 평균 연비는 도심(혼잡) 13km/l대, 고속도로(원활) 23km/l대를 기록했다. 교통 상황이 원활하면 도심에서도 15km/l를 넘나드는 연비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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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 3008 1.6 eHDi는 운전의 즐거움 그 자체보다는 `운송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만한 차다. 넉넉한 실내공간과 안정적인 승차감, 그리고 뛰어난 연비의 삼박자를 고루 갖췄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MPV에 가까운 유연한 공간 구성과 우수한 연비가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물론, 이는 기존의 3008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특성이다.
하지만 과거 3008이 가졌던 얼굴은 너무 특이해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었다. 그러나 이젠 그 얼굴이 508을 닮은 핸섬한 얼굴로 변화했다. 얼굴 외에는 크게 변화한 구석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그 덕에 차가 가진 본연의 매력포인트를 살리기가 더 용이해졌다. 성공적인 성형수술로 다시 태어난 프랑스식 실용주의, 새로워진 3008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기대가 된다.
글. 사진 박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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