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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유경희 칼럼니스트]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지고지순하고 역경을 통과한 사랑이 바로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이다. 그들의 사랑은 육체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의 결합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주 인용되곤 한다. 프시케는 새벽하늘에서 내려온 이슬이 땅에 닿는 바로 그 순간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순수하고, 수려하고, 숭고하고 천상적이다. 그래서일까? 안타깝게도 수많은 남성의 숭배대상이 되지만, 청혼하는 남자는 하나도 없었다. 이런 사실은 프시케를 뼛속까지 외롭게 만든다. 요즘 또한 그렇지 않은가! 너무 순수해보이는 천상(?) 여자는 부담스럽다. 물론 그런 여자를 잠시 꿈꾸기도 하지만, 순수하다는 것이 무경험과 동일시된다면, 그런 여자는 재미없으니 금새 질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요즘 남자들은 천상의 여자보다는 얼굴도 되고(얼굴이 이쁘면 착하다고 생각한다) 돈도 잘 버는 여자를 선호한다. 게다가 재미까지 있으면! 나라도 그런 여자를 마다하지 못할 것 같다!
아버지왕은 신탁을 들으러가다가 우연히 아프로디테 신전으로 가게 된다. 이미 아프로디테는 프시케란 존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차였다. 뭇남성들이 프시케를 새로운 여신으로 칭송하느라고 자신의 신전에 더 이상 경배하지 않는 것에 질투와 분노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프시케가 죽음과 결혼해야 한다"는 잔인한 신탁을 내린다. 산 정상 바위에 묶어두면 죽음이 다가와 그녀의 목숨을 앗아갈 거라는 내용! 융에 따르면 사실 모든 신부는 결혼식날 죽게 된다. 결혼이 바로 장례인 것이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결혼과 동시에 자기 내면의 처녀가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프로디테는 에로스에게 프시케를 향해 죽음과 사랑에 빠지도록 화살을 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에로스는 프시케를 보는 순간 실수를 저지른다. 자신의 화살에 손가락을 베어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 그 자리에서 프시케를 아내로 맞을 결심을 한 에로스는 친구인 서풍으로 하여금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 산꼭대기 낙원의 골짜기에 내려놓게 한다. 최악의 상황을 기다리고 있던 프시케는 천상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에로스와 프시케는 매일 밤에만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행복에는 늘 금기가 있는 법! 절대로 자신을 보려고도 알려고도 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그가 어디에 가든지 절대 묻지 않겠다는 약속이 그것이다. 알면 다친다는 것! 이것은 마치 남성이 진화를 요구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두려워한다는 사실과도 부합되는 것 같다. 여하튼 프시케는 죽음과 결혼하지 않은 것도 천만다행이라 생각하고 낙원에서 만족스럽게 살아간다. 그러나 모든 낙원은 의심스러운 장소이다. 그녀는 에로스에게 애교를 떨어 그가 누구인지 묻지 않는 대신, 언니들을 초대해달라고 한다. 와이낫?! 드디어 언니들이 온다!
죽은 줄만 알았던 프시케의 상황은 언니들의 이성을 잃게 했다. 질투심이 폭발한 것! 그녀들은 에로스가 흉측한 괴물이며, 아기가 태어나면 프시케와 아기를 잡아먹을 거라고 모함한다. 그리고 등불과 날카로운 칼을 준비하여 에로스를 죽이라고 조언한다. 프시케는 음모에 넘어가 모든 것을 준비한다. 에로스와 동침할 때 프시케는 남편을 얼굴을 본다. 아뿔사! 너무도 아름다운 미소년이 아닌가? 놀랍고 당황하고 죄책감에 빠진 프시케는 칼을 빼들었으나 그만 칼을 떨어뜨리고 만다. 이때 실수로 에로스의 화살을 건드려 자신이 상처를 입는다. 그 순간 사랑에 깊이 빠진 자는 바로 그녀다. 게다가 급히 등불을 치우다가 그만 기름 한방울이 에로스의 오른쪽 어깨에 떨어진다. 통증에 잠을 깬 에로스는 어디론가 날아가려 하고, 프시케는 절박하게 매달린채 낙원 밖으로 나오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프시케는 지쳐 황량한 땅위로 떨어진다. 에로스는 자신이 예고했던 재앙, 즉 인간 아이를 낳을 것이고 자기가 사라져버릴 거라는 것! 물론 여기서부터 지옥까지 다녀오는 고난과 역경을 통한 프시케의 ''사랑 되찾기'' 여정은 시작된다. 결국은 제우스의 도움으로 결혼하고 인간 프시케가 불사의 몸을 얻게 된다는, 그야말로 고난 끝에 영원한 사랑을 쟁취한다는 그렇고 그런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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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은 이런 신화에서 특별히 몇가지 모티프에 큰 관심을 가진다. 가장 많이 그려지는 모티프 중 하나가 바로 프시케가 칼과 등불을 가지고 잠자는 에로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경악하는 장면이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테마가 반드시 17세기는 아니더라도 바로크 풍으로 많이 그려졌다는 점이다. 바로크 미술의 특징, 그러니까 마치 연극의 스팟처럼 강렬한 명암법(키아로스쿠로)을 구사(어둠 속에서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장면이야말로 더욱 바로크적 주제에 적합했을 것이다)하고, 인간의 몸을 좀더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얼굴표정에 좀더 감정을 실었다는 점이다. 바로크는 르네상스처럼 더 이상 인간을 이상화시키지 않고 보다 실체에 가까워지게 표현하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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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바로크의 거장 루벤스의 그림은 그 어떤 그림보다 주목할만하다. 프시케의 표정이 좀 덤덤해 보이는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아주 미묘하고 처연한 심경의 상태의 프시케를 묘사한 것! 그러니까 의혹을 품던 프시케가 어둠 속에서 불을 밝혀 에로스를 보는 장면, 괴물처럼 추할 줄만 알았던 자기 사랑이 더없이 고귀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 순간의 프시케의 얼굴이 이렇게 복잡하고 인간적일 수 있을까? 금기를 깬 여자의 불안과 공포를 이보다 더 리얼하게 표현한 그림은 없어 보인다.
왜 작가들은 이런 장면에 매료되었던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지켜야 할 사랑의 덕목 즉 "신뢰가 없는 곳에 사랑이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싶어서였을까? 그래서 모든 의혹과 의심을 버리라고 얘기하는 것일까? 적어도 예술가들은 마치 융이 얘기한 것처럼, 프시케의 사랑을 의식의 진화라는 측면, 그러니까 인간 무의식의 어두운 측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화려한 낙원처럼 보이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해, 진정으로 깊이있는 의식의 진화를 꿈꾸라고 우리에게 넌지시 말하는 것은 아닐까?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시각예술과 정신분석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년간 미술잡지 기자와 큐레이터로 일했고, 뉴욕대에서 예술행정 전문가과정을 수료하였다. 저서로는 [예술가의 탄생], [테마가 있는 미술여행] 등이 있다. 현재 대학원 최고위과정과 대기업, 공기업 등에서 하이브리드적인 미술강좌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