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재정지출을 대폭 늘리며 재정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향후 기하급수적으로 국가채무가 늘어날 위험성이 곳곳에 상존해 있다.
정부가 국가채무 비율을 GDP 대비 40%미만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중장기적 국가채무 증가 요인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사례에서 보듯 한번 악화된 재정건전성은 쉽게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정부의 고민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영국의 국가채무관리기구(DMO) 처럼 국가재정만 멀리 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별도의 조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OECD 국가와의 비교 가능성과 국가채무 범위의 논란 해소를 위해 정부의 보증채무와 공기업 부채 등을 포함한 광의의 국가채무 개념도 도입해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광의의 `사실상 국가채무`는 무려 144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 악화일로 재정건전성 일본과 `닮은꼴`
캐나다는 1990년대 70% 수준이던 국가채무비율이 1996년 101.7%까지 상승하다 점차 줄어들며 2006년 60%대로 하락하고 있다. 또 외환보유고가 증가하는 등 대내외적 국가채무상황도 호전되며 국가채무 금융비용이 줄어들어 예산상 부담이 어느정도 완화됐다. 캐나다의 외환보유고는 1992년 120억달러에서 2003년 360억달러로 3배가량 늘어나며 정부채무 등에 대한 국가관리 위험의 초점이 `건전성`에 맞춰질 수 있었다.
캐나다는 환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대부분 필요 자금은 국내시장에서 조달하고 외환보유고 유지와 관련된 필요자금만을 환위험에 노출된 채무로 관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캐나다를 비롯해 호주, 스페인, 스웨덴 등 OECD 많은 국가들이 국가채무관리에 성공한 것으로 분류된다.
반면 일본은 1992년 국가채무비율이 68.6% 이후 계속 증가하면서 국가채무관리에 성공하지 못한 그룹으로 분류됐다. 여기에는 일본 외에 독일, 프랑스, 한국 등이 꼽힌다.
일본은 장기불황에 따른 재정적자가 1999년 41조8000억엔으로 10년간 4.5배이상 확대됐고, 2009년 3월말 현재 일본의 국가채무는 778조엔으로 GDP대비 148%에 달하고 있다. 이는 선진국중 최고이자 일본국민 1인당 609만엔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1년이상 근로소득자 평균 연소득의 1.4배 수준이다.
OECD에 따르면 일본의 GDP대비 국가채무는 1991년 59.4%에서 2000년 135.4%로 10년간 71.3%포인트가 높아졌다. 그 결과 1991년에는 OECD평균(59.4%)보다 4.7%포인트 높았으나 2000년엔 OECD 평균(68.7%)보다 무려 66.7%포인트나 높아졌다.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1997년 60조원에서 2009년 366조원으로 6배이상 급증하고, GDP대비 비율은 12.3%에서 35.6%로 크게 높아진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일본 국가재정 악화의 교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국가재정 악화과정을 한국도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연구원은 ▲재정지출의 급속 증가에 따른 국가채무 누증 ▲급속한 고령화 등으로 사회보장비 지출의 지속적 증가 ▲급격한 감세조치에 따른 세수 위축 ▲국채발행 누증에 따른 금융 불안 ▲중앙재정 악화로 지방재정도 파탄 등을 `한국과 일본의 재정악화 공통점`으로 꼽았다.
정유훈 선임연구원은 "일본 사례는 정부 재정만으로는 경기 활성화가 어렵고 재정악화만 초래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정부재정을 통한 경기활성화는 당분간 지속하되 민간 경제 활성화 정책과 국가재정의 건전성 강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초고령화, 통일비용, 정부보증채 곳곳에 `암초`
정부는 OECD 회원국들보다 GDP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낮은 편이라 아직 재정건전성에는 무리가 없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한국의 공식 GDP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5.6%로 OECD 평균 75.7%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의 경우 1,2차 세계 대전을 치르면서 전비조달을 위해 국채를 발행했고, 1970년대 이후에는 석유파동 극복을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취하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사회복지 정책을 전개했기 때문에 현재 국가채무비율이 60~70%대에 이르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특히 선진국들의 국가채무비율은 일본을 제외하고는 1990년대이후 경향적으로 안정돼 있거나 줄어드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최근 10년간 한국의 국가채무가 크게 늘어난데는 ▲일반회계 적자보전용 국채발행 ▲공적자금 상환용 국채발행 ▲외환시장 안정용 자금 조달 등이 영향을 미쳤다. 이중 공적자금 상환용 국채발행이 2006년 사실상 종료됐음을 감안하면 향후 일반회계 적자보전 국채발행과 외환시장 안정용 국채발행이 국가채무 증가의 주요인이 될 전망이다.
실제 올해 적자국채 순발행액은 35조5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적자국채 발행잔액은 63조원에서 98조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여기에 내년 적자보전용 국채 발행은 총 30조9000억원으로 2002~2007년 6년간의 적자보전용 국채발행(30조5000억원) 보다 많다. 적자보전용 국채발행은 정부 전망보다 더 많아질 가능성도 크다. 정부의 낙관적 성장전망에 따른 총수입 감소, 총지출 증가 가능성 때문.
조세연구원은 최근 남북한이 통일될 경우 통일비용이 남한 GDP의 12%수준으로 기존 바클레이스 4~5%, HSBC 4.4% 등의 추정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북한과 남한의 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을 달리했을 경우의 수치로 연구원은 "북한과 남한의 1인당 공공지출 수준을 차별화할 수 없다면 조세부담도 크게 높아지고,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다가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09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65세이상 인구는 전체의 10.7%로 519만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10년전 6.9%에 비해 3.8%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특히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2026년에는 전체인구의 20%가 65세이상인 초고령사회에 도달하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나라가 될 전망이다. ★표 참조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할 생산가능인구(15~ 64세)는 올해 6.8명에서 2020년 4.6명, 2030년 2.7명, 2050년 1.4명으로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이는 일본(2025년 1.8명, 2050년 1.2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일본의 GDP대비 사회보장비 지출은 1990년 11.4%에서 2000년 16.5%로 2005년 18.6%까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01년 한국의 사회복지비 지출은 48조4000억원으로 GDP대비 7.8%였으나 2005년 73조3000억원으로 GDP대비 9.1%로 급증했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비 지출이 일본 재정건전성 악화의 적지않은 항목이었음을 감안하면 더욱 철저한 재정건전성 및 사회보장 복지비 지출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이밖에 2012년부터 발생주의 회계를 도입하면서 우리의 국가채무 비율이 현재보다 상당부분 높아질 가능성도 크다.
◇ DMO등 해외 관리사례 점검 필요..광의의 국가부채 개념 도입해야
전문가들은 OECD 등 주요 선진국들이 국가채무 수준 관리를 위해 목표치를 설정해 운용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국가채무 규모와 관련 목표치를 설정해 이를 지켜나갈 필요가 있으며, 선진국들이 국가채무를 효율적으로 관리했던 사례들을 꼼꼼히 살펴 제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먼저 국가채무를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기관이 필요해 보인다. 영국은 국가채무관리기구(DMO)를 두고 있다. 스웨덴과 뉴질랜드는 별도의 기구나 부서가 국가의 모든 보증채무를 책임지고 관리하고 있으며, 계량화가 불가능한 잠재부채에 대한 감시의무도 지고 있다. 덴마크와 캐나다도 비슷한 시스템을 운영중이다.
기획재정부 역시 이같은 DMO 도입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DMO 등 국가채무를 전반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DMO를 도입할 경우 우리나라가 채무를 중점 관리해야 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어 신중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한 OECD 국가 등과 국가채무의 `기준`을 맞춰 이를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광의의 `사실상 국가채무`는 1440조원으로 1인당 2961만원에 달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 의원은 국가직접채무에 보증채무, 4대 공적연금 책임준비금, 공기업 부채 등을 더한 `광의의 국가채무`가 2007년 1285조원에서 2008년 1439조원으로 11.1%나 급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광의의 국가채무 규모는 1997년(368조원)에 비해 4배나 불어난 수치다.
이한구 의원은 "국가채무 범위 논란의 핵심은 정부가 발표하는 국가채무의 국제비교가 불가능하다는데 있다"며 "OECD 국가들과 동등한 채무비교를 위해 광의의 국가채무 규모를 산정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국가채권과 국가채무의 유기적 상호관계 분석`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자산부채종합관리(ALM) 기법을 전향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ALM은 환율, 금리 등 경제여건과 자금 수급 등 금융환경이 변화하는 상황을 전제로 이들간의 유기적인 상호관계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자산과 부채를 연계해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경영기법을 말한다. 외부 충격이 국가채무의 원리금 상환 등 예산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자산에 상응하는 특성을 지닌 채무를 선택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예산정책처는 "재정수지의 적정수준, 또는 균형으로의 관리를 위해 신중하고 보수적인 경제전망을 통한 수입전망, 지출상한선 등 재정규율의 준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거시정책차원에서 통화정책을 통한 금리안정, 재정·금융·외환정책을 통한 성장률 제고, 재정위험 유발하는 보증채무 등 다양한 우발채무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주문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결국 재정적자 관리는 우리의 `성장`에 달려있다"며 "세입-세출 구조상 노령화 등으로 재정건전성 악화가 불가피하다면 국민연금 등 세출 측면에서 근본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유훈 선임연구원은 명시적 중장기적 관리 목표 수준 설정, 재정운용 효율성 증대, 지하경제에 대한 세원 확보, 국채시장 육성, 지역경제 활성화 통한 재정자립도 향상, 기업투자 증대 통한 민간 경제 활성화 등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