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에게 묻는다 6]구대성의 ''마무리투수로 사는 법''

정철우 기자I 2007.07.13 13:11:56
사진=한화이글스

[이데일리 정철우기자]
‘마무리 투수’
현대 야구에서 마무리 투수는 짧게는 1이닝 길어야 2이닝 정도 등장한다. 시간만 따지면 그리 큰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비중은 다르다. 마무리 투수의 손 끝에 그 경기의 성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적지 않은 감독들은 마무리투수로부터 시즌 마운드 구상을 시작하기도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공이 아무리 좋아도 마무리 투수로는 성공하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다. 한 선수는 “8회에 올라갈땐 발걸음이 가볍다가도 9회에 올라가려면 떨고 있는 나를 느끼게 된다”는 말로 마무리의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활약했고 여전히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구대성(한화.38)을 찾아가 물었다. “마무리 투수란 무엇입니까.” 그는 성격만큼 시원시원하게 그 답을 들려줬다.

▲자신감-마무리 투수의 처음과 끝
구대성은 인터뷰 시간의 대부분을 자신감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데 할애했다. ‘마무리 투수의 기본’을 물어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질문해도 그의 답은 한결같았다. “자신감을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

마무리 투수에게 자신감은 공기와 같다는 뜻이었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하고 있으며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기 공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타자들하고 맞붙었을 때 내가 무조건 이긴다고 믿어야 한다. 이대호나 김태균 같은 타자가 나와도 내 공은 절대 못 친다고 생각하고 던져야 이길 수 있다. 경기를 하다보면 ‘이거 던지면 맞을 거 같은데...’싶을 때가 있다. 그러면 꼭 크게 맞는다. 자신감이 있으면 한가운데 직구를 던지더라도 안 맞는다. 맞더라도 큰 타구는 안 나온다.”

그래도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아무리 천하의 구대성이라도 말이다. 구대성은 슬쩍 자신의 비법을 들려줬다.

"중요한 상황이 될때 딴 생각을 하려고 한다. 관중들 떠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도 있고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마음 속으로 부르는거라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안 좋았던 경기는 빨리 잊으려고 한다.(실제로 구대성은 '기억에 남는 아픈 패배'를 묻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안 좋은 건 빨리 잊어야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 다만 중요했던 상황에 어떤 대처를 했었는지는 꼭 기억해둔다."

▲“가운데? 던지고 싶어도 못 던진다.”
“쟤는 한 가운데 던져도 타자들이 못 칠텐데 지레 겁 먹고 못 던진다”는 야구판에서 “야구는 모른다”는 말과 함께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정작 투수들에게 물으면 “진짜 가운데 던지다 맞으면 다음날 2군 가라고 한다”며 입을 삐죽거린다. 구대성은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이 문제에 해답을 갖고 있었다. 물론 답은 자신감이었다.

“볼 카운트 0-3라고 가정해보자. 투수들은 슬슬 힘 빼고 가운데로 공을 던진다. 그런데 그거 세 개 연속 잘 안 들어간다. 가운데로 던지기가 더 힘들다. 던져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투수들은 타자 무릎 쪽으로 던지는 훈련을 끝도 없이 반복한다. 그쪽으로 던지는 것이 훨씬 편하다. 익숙하니까. 자신감을 갖고 던지면 불펜에서 던질 때 팔의 각도가 나오면서 양 무릎 쪽으로 제구가 더 잘 될 수 있다. 익숙한 곳으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자기 공을 믿고 던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혹사?밥부터 잘 챙겨먹자.”
제법 던진다 싶은 마무리투수들은 하나같이 ‘혹사 논란’이 따라붙는다.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가 맡다보니 많이 나오고 또 많이 던지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혹사의 기준이 어디에도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늘 ‘논란’이 된다. 구대성은 혹사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마무리투수를 맡았던 것은 94년이었다. 당시엔 멋도 모르고 했는데 한 1년 지나고 나니까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공격적인 피칭을 해야 한다는 걸 느끼게 됐다. 지금같은 마무리가 아니었다. 그때는 6회부터 올라갈 때도 있었다. 그러고도 다음날 또 던졌다. 95년 이후로는 거의 매년 100이닝을 넘겼다. 규정이닝을 채운 것도 3번이나 됐다. 나이가 어렸고 체력적으로는 힘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너무 많이 던지면 물론 힘들기는 했다. 그럴 때면 감독님이 나름 배려를 해주셨다.”

부상에 대한 공포는 없었을까. 그러나 구대성은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서 밥 얘기를 꺼냈다.

“요즘 선수들이 몸은 예전보다 더 커졌는데 힘은 오히려 떨어진 것 같다. 예전 선배들은 우리 땅에서 나는 밥 열심히 먹고 운동했는데 요즘 선수들은 인스턴트 음식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어찌됐든 힘 쓰는 건 옛날 선배들이 훨씬 나았다. 혹사에 대한 기준을 따지려면 한도 끝도 없다. 지금 기준이면 옛날 선배들은 1년 하고 말았어야 한다. 며칠을 내리 던지기도 했는데 지금 선수들은 절대 못 그러지 않나.

혹사의 기준은 없다. ‘선수가 어떻게 준비하고 힘을 기르고 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보호한다고 오래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요즘 후배들이 너무 과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몸이 돼 있어야 한다. 몸에 힘이 있어야 부상도 막을 수 있다. 힘이 떨어지니 억지로 던지게 되고 그러다 부상이 생기는 것이다.”

▲짧은 질문들
-마운드에 오르기 전 준비해야 할 것은.
“경기 상황을 읽고 있어야 한다. 들어가기 전에 몇 번 타자부터 나오는지 보이기 때문에 얘는 어디 잘치고 어디 못치고를 쭉 외워두는 것이 좋다. 상대할 타자가 3명에서 끝나야 하지만 4명,5명 정도 갈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또 대타까지 대비해두는 것이 좋다.”

-선발과 마무리 차이.
“선발은 긴 이닝을 던지니까 힘 조절을 해야 하고 변화를 많이 줘야 한다. 던질 수 있는 변화구가 많을 수록 좋다. 주무기가 아니더라도 보여주는 의미로라도 쓸 수 있는 변화구가 있어야 한다. 반면 마무리는 짧은 이닝에 힘을 다 쏟아야 한다. 마무리는 자기가 잘 던질 수 있는 공만 던져야 한다. 많은 구종은 필요없다. 직구 하나로 승부하는 선수들도 있지 않나. 나도 한창때는 직구,슬라이더로 끝이었다.”

-구대성을 떨게한 타자는.
“한국에는 아직 없다(웃음). 일본에 있을때는 오가사와라가 제일 힘들었다. 왼손 볼을 잘 친다. 10번에 8번은 쳤을거다. 몸이 굉장히 부드럽다. 유연성이 뛰어나서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어려운 코스의 공도 잘 때려낸다. 안 맞으려고 힘이 많이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메이저리그는 중간에 한번씩만 던져봐서 잘 모르겠다.”

-후배 마무리투수들에게 하고픈 말.
“좋은 후배들이 많다. 직구 하나로 승부를 걸 수 있는 선수들도 있다. 지금 좋지만 나중을 위해 준비를 했으면 좋겠다. 계속 150km를 던질 수는 없는 법이다. 나이 들수록 스피드는 조금씩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확실한 변화구 하나쯤 갖춰두면 좋겠다. 쉬운 일은 아니다. 얼마나 배우려고 하는지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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