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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소현의 일상탈출)⑦귀여운 사기사건

권소현 기자I 2006.09.01 14:30:12
[이데일리 권소현기자] 푸쉬카르. 델리에서 첫번째로 택한 행선지였다. 신과 악마가 전쟁할때 브라흐마 신이 무기였던 연꽃을 떨어뜨리자 호수가 생겼다는 곳이다. 마을 한 가운데에 있는 성스러운 호수를 보기 위해 연중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서인도인 만큼 외곽으로 나가면 사막이 있고 낙타사파리도 할 수 있다. 사실 낙타사파리가 목적이었다.


▲ 푸쉬카르 호수의 저녁 풍경..성스러운 호수라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뉴델리 기차역 앞에 있는 여행사들을 뒤져 그럭저럭 괜찮은 가격에 버스표를 끊었다. 푸쉬카르까지 직행버스인지를 수차례 확인했다. 푸쉬카르가 워낙 작은 마을이라 대부분 그 근처 관문도시인 아즈메르까지만 운행하지만 중간에 어디 들르지 않고 푸쉬카르까지 바로 가는 투어리스트 버스도 있다. 좀 비싸긴 하지만 기회비용을 따져보고는 직행을 택했다. 버스는 밤 10시 여행사 바로 앞에서 출발하니까 30분 전까지 여행사로 오면 된다고 했다.

정확히 밤 9시30분에 여행사 앞으로 갔다. 가방을 놓고 기다리라더니 한시간이 지나도 버스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계속 물어봐도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기다리다 심심해서 탄두리 치킨도 사오고, 생수도 몇 병 사왔다. 밤 11시가 다 되자 드디어 직원 한명이 따라오라고 먼저 나섰다.

"어머? 여기서 타는게 아니에요?"
"올드델리역까지 가야하는데 지하철, 혹은 오토릭샤를 탈 수 있거든. 선택은 너희 자유지만 내가 보기엔 지하철이 나아. 내가 안내해줄께"

선심이라도 쓰듯 의기양양이다. 어이가 없지만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한참을 걸어 개통된지 얼마 안되는 지하철에 도착했다. 무슨 공항도 아니고 지하철역에서 금속탐지기를 통과하고 가방검사까지 한다. 얼핏 들으니 인도에서 지하철은 군사시설에 속하기 때문에 꼭 소지품 검사를 해야 하고 사진도 절대 찍으면 안된단다.

꼭꼭 눌러 간신히 싼 짐을 다 풀어헤쳤다. 대충 휙 보더니 됐단다. 짐 검사하는데 5초도 안 걸렸는데 짐을 다시 싸는 데에는 5분이 넘게 걸렸다. 짜증이 확 났지만 어쩌겠는가. 다시 낑낑대며 짐을 싸고 지하철에 올라 올드델리역에 내렸다. 길거리의 수많은 부랑자들을 헤치고 한 300m를 걸어서야 버스에 도착했다.

버스 티켓을 파는 부스가 쭉 늘어서 있다. 다시 한번 직행임을 확인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 뒷편 짐 싣는 칸에 짐은 아무렇게 던져졌다. 깨끗했던 배낭커버는 시커먼 기름때를 금방 뒤집어 썼다. 그리고는 짐을 실어줬으니 1인당 10루피씩 40루피를 달란다.

버스에 타서도 한참동안이나 출발할 생각을 안한다. 지쳐서 항의해볼까 하는 찰나 운전사와 버스차장이 버스에 올랐다. 결국 예정시각보다 두시간이나 늦게 버스는 출발했다.

자정을 넘긴 시간이라 잠은 쏟아지는데 버스운전사는 아주 요란스러운 노래만 틀어준다. 노래 속의 여자 목소리는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카랑카랑하고 타악기의 비트도 여간 빠른게 아니다. 도대체 잠을 자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신경만 날카로워진다.


▲ 히피 복장의 운전사와 뚱뚱한 운전사, 종종 서로를 지긋하게 쳐다봤다.
게다가 차장과 운전사의 분위기도 요상하다. 쫄나시에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두건을 머리에 두른 차장과 좀 뚱뚱한 운전사는 종종 서로를 지긋하게 바라본다. 이 둘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다음날 아침 사막을 달릴 때에는 심지어 차장이 운전사의 좁은 운전석으로 뛰어들었다. 둘이 나란히 앉아서 한 사람은 엑셀과 브레이크를, 한 사람은 핸들을 잡는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둘은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낄낄거리면서 곡예운전까지 한다.

간 떨어질만한 순간을 몇 번 넘기고 휴게소에 도착했다. 운전사가 와서 어디까지 가냐고 묻는다.

"푸쉬카르까지 가는데..."
"표를 좀 볼 수 있을까?"

푸쉬카르라고 크게 적혀있는 표를 당당하게 내밀었더니 유심히 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 급기야 차장이 운전석으로 뛰어들었다. 다정하게 역할분담을 하며 운전하는 차장과 운전사

"이 버스는 원래 푸쉬카르까지 가는게 아니라 아즈메르가 종점이거든. 그런데 너희들 티켓이 푸쉬카르까지 가는 거니까 거기까지 오토릭샤를 태워줄께. 물론 돈은 내가 낼테니까 걱정하지마"
"분명 직행이라고 했는데? 몇 번 확인했거든요?"
"잘못 알고 있는거야. 아즈메르에서 푸쉬카르까지 금방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노 프라블럼!"

그러더니 표를 남방 윗 주머니에 넣는다. 다시 표를 달라고 할 새도 없이 버스는 출발했다.

버스는 사막 한 가운데를 달렸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이 사막에서 눈 씻고 찾아봐도 사람 살데는 없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도로에 나와서 손을 들며 차를 세우는 사람들은 있다.

버스는 이런 사람들이 보일때마다 멈춰서 계속 태웠다. 그만큼 도착시간은 늦어졌고 버스는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차장은 요금을 꼬박꼬박 받았다. 요금이 비싸다고 항의라도 하면 냉정하게 내리라고 등을 떠밀었다. 중간에 태운 사람들 차비는 아마도 이들의 과외수입일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가더니 드디어 아즈메르에 도착했다. 밤새 차장과 운전사 커플을 관찰하느라 잠을 잘 못잔 탓에 온 몸이 뻐근하다. 차장은 버스 뒷칸에 실은 짐을 내려주면서 좀 기다리라고 한다. 가방 무게가 어깨로 전해져 통증이 느껴질때쯤 오토릭샤 두대가 앞에 나타났다.

네명이니 두명씩 두대에 나눠 타면 딱이다. 짐 싣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차장이 와서 말한다.

"원래 버스에 가방을 실을때 10루피를 받고 내릴때도 10루피를 받아. 그러니까 너희는 네명이니까 40루피를 내야되거든. 그런데 어짜피 오토릭샤값이 한대에 20루피씩 40루피니 나한테 줄 돈을 릭샤비로 내면 되는 거야"

황당하다. 그런 법이 어디있냐고 항의했지만 막무가내다. 씩씩거리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어 알았다고 그냥 가자고 했다. 40루피면 한국돈으로 900원 정도인데 그냥 한국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었다고 생각하자고 체념했다.

한 5분 달렸나. 도착했다고 내리란다. 이상하다. 푸쉬카르까지 14km나 된다는데, 벌써 도착했을리가 없다.

"여기가 푸쉬카르에요?"
"아니, 여기는 아즈메르 버스터미널.."
"뭐라구? 푸쉬카르 아니라구?"
"여기서 버스를 타시오"
"@.@"

▲ 아즈메르 버스터미널에서 탄 푸쉬카르행 로컬버스. 소년이 올라와 구걸을 하고 있다.
아까 내린 곳은 아즈메르의 사설 버스터미널이었던 것이고 여기는 말하자면 시외버스터미널인 것이다. 생각해보니 14km를 달리는데 오토릭샤가 20루피밖에 안 할리 없다. 차장이 속인거다.

우리는 아즈메르 버스터미널에서 사람을 가득 채운채 꼬불꼬불한 산길을 위험하게 달리는 로컬 버스를 30분 더 타고서야 푸쉬카르에 도착할 수 있었다. 7루피를 더 주고 말이다.

인도에서 첫번째 사기는 이렇게 당했다. 대단하게 당한 사기도 아니었지만 인도 여행 내내 두고 두고 생각이 났다. 나중에는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던 운전사와 차장 커플이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사기사건 덕분에 인도 여행을 좀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할 수 있었다.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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