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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약부터 태양광까지"…신약 연구 실탄 마련 위해 신사업 나서는 제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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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범 기자I 2026.03.30 08:11:02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맞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풍경이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단순히 한 해의 신약 개발 성과를 공유하고 배당금을 결정하던 의례적인 자리를 넘어 주요 기업들이 정관 변경을 통해 파격적인 사업 목적을 대거 추가하며 생존을 위한 체질 개선을 공식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펫 헬스케어로 눈 돌린 제약사들…“개발 기간 짧고 시장성 커”

27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올해 주총의 가장 뜨거운 화두로 본업인 의약품 제조의 경계를 허무는 전방위적인 사업 영역 확장 이른바 빅블러(Big Blur) 현상이 꼽힌다. 특히 이러한 움직임은 신약 개발 하나에 수조 원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상황에서 불확실한 미래에만 기대지 않고 안정적인 자금줄을 확보해 신약 연구개발(R&D)의 동력을 유지하겠다는 실무적 판단이 깔려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반려동물 헬스케어 시장을 향한 제약사들의 거침없는 구애다. 제약사들이 이토록 반려동물에 집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사람이 먹는 인체용 신약 개발에는 보통 10년 이상의 기간과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된다. 하지만 동물용 의약품은 개발 기간과 임상 비용이 인체용 대비 크게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가 아닌 농림축산검역본부가 허가 절차를 담당하며 임상 규모와 절차도 인체용보다 간소해 상대적으로 빠른 사업화가 가능하다는 점이 신약 개발 자금 확보를 위한 캐시카우(현금창출원)로서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시장성 또한 압도적이다. 지난해 실시된 국가승인통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일반 가구의 29.2%가 현재 반려동물을 직접 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동물 1마리당 월평균 양육비용은 12만1400원에 달한다. 특히 병원비(예방접종, 검진 등)가 월평균 지출액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제약사들이 전문 의약품뿐만 아니라 진단 및 관리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헬스케어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제약사들은 인체용 의약품 개발에서 확보한 항염증, 항균 제형 기술을 이러한 다빈도 질환 치료제에 접목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더해 반려동물의 생애 전 주기를 관리하는 고도화된 헬스케어 서비스도 각광을 받고 있다.



태양광·열병합 발전까지…“R&D 재원 확보 위한 비용 절감”

에너지와 효율화 역시 이번 주총의 핵심 키워드로 꼽힌다. JW생명과학(234080)은 열병합 발전 및 에너지 판매업을 신규 사업으로 추가했다. 수액제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재활용해 발전 설비를 운영하고 남는 전기를 외부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비용 절감과 부가 수익 창출을 동시에 노리겠다는 전략이다. 제약 공장이 이제는 제조 시설을 넘어 하나의 에너지 생산 거점 역할까지 모색하고 있는 셈이다.

이색적인 서비스업 진출도 눈길을 끈다. 동아에스티(170900)는 세차장 운영업을 사업 목적에 포함시켰는데 이는 장애인 일자리 창출 모델인 행복세차소 운영 등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 차원으로 해석된다. 수익 창출과 사회 공헌을 결합한 ESG 경영의 사례로 평가받는다.

JW중외제약(001060)은 투자 및 경영 자문과 컨설팅업을 추가해 유망 바이오 벤처에 대한 전략적 투자 기능을 강화했다. 신약 개발의 리스크를 분산하고 외부 혁신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정관에 반영해 자본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이러한 제약사들의 사업 확장은 과거의 성공 사례에서 용기를 얻은 측면도 있다. 2022년 유한양행(000100)은 주총에서 e커머스 및 정보통신 관련 사업을 추가할 당시만 해도 전통 제약사가 온라인 쇼핑 사업에 진출한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유한양행은 자사 온라인몰을 통해 건강기능식품과 생활용품, 덴탈 케어 제품 판매를 확대하며 종합 헬스케어 플랫폼 기업으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플랫폼 사업에서 발생한 현금 흐름은 신약 R&D 투자 재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이후 의료용구 제조 및 판매업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병·의원 채널과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보령(003850) 역시 2023년 주총에서 우주 관련 사업을 목적에 추가하며 제약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미국 우주 기업 엑시옴 스페이스에 투자하며 우주 환경에서의 의약품 연구와 임상 실험 가능성을 모색하는 등 우주 헬스케어 분야를 새로운 성장 축으로 육성하고 있다.

광동제약(009290)은 과거 제약업 외에 생수 판매업인 삼다수 유통권을 확보하며 한때 정체성 논란이 일기도 했지다. 하지만 현재는 삼다수와 비타500 등 음료 사업에서 발생하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기반으로 항암제 등 고위험·고수익 신약 개발 투자에 나서고 있다.

대원제약(003220) 또한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장대원을 론칭하며 사업 영역을 다각화했다. 이는 호흡기 질환 중심의 전문의약품 사업을 넘어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의 접점을 확대하고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구축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약업계에서는 제약기업들의 이 같은 광범위한 사업 목적 추가가 국내 제약 산업이 처한 구조적 압박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의 제네릭 약가 차등제 등 약가 규제 강화와 금융당국의 바이오 기업 상장 가이드라인 개정 등으로 산업 환경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약가 매출에만 의존해서는 신약 개발이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제약사들이 다양한 수익원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결국 막대한 자금과 긴 시간이 필요한 신약 개발 경쟁 속에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하려는 제약사들의 생존 전략이 사업 영역의 경계를 빠르게 허물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전통적인 산업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에 누가 더 유연하게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이를 신약 개발 투자로 성공적으로 연결하느냐가 기업들의 향후 성패를 가를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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