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 간다지역의 건물들. 대부업체 지점들 간판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 |
[도쿄 = 이데일리 조진형기자] 일본 도쿄 시내의 간다(神田) 지역. 에도(江戶) 시대에 상인의 거리였던 이곳은 현재 직장인들로 북적인다. 도쿄 거리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상업 간판이 별로 없지만 간다 지역은 예외다. 직장인들을 겨냥한 '다케후지(武富士)', '프로미스', '아코무', '아에루' 등 대형 대부업체의 간판들이 빼곡하다.
간다 지역 뿐만 아니다. 신주쿠나 시부야 등 인파가 있는 곳이라면 대부업체 지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부업 광고가 담긴 화장지나 볼펜을 나눠주는 호객꾼들도 길거리에서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이데일리는 현지 취재를 통해 일본 대부업계의 현주소와 시사점을 진단한다.[편집자주]
거리를 도배하고 있는 수많은 대부업체 지점들은 도쿄의 금싸라기 땅값을 무색케한다. 대부업체 지점은 전국적으로 2만개를 훌쩍 넘는다. 일본 대부업체 1위인 다케후지만해도 지점 2000개 이상을 운영하고 있다.
◇ 은행보다도 앞선 대부업체들
그만큼 소비자금융업체를 이용하는 서민들이 많다는 얘기다. 일본 생산활동 인구 6500만명 중 2000만명이 소비자금융업체를 이용한다.
이렇게 일본만큼 소비자 금융시장이 발달된 나라도 드물다. 일본이 장기 불황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틈을 타, 대부업시장은 급팽창했다. 사실 은행보다 더 발달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업체 상위 10개사 가운데 과반수 이상이 상장회사일 정도로 일본의 대부업체는 덩치가 크다.
한국소비자금융협의회 주최로 일본 소비자금융 시장을 견학온 한국 대부업계 관계자들은 그 규모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얼마나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많길래, 도대체 수지를 어떻게 맞추길래 등등 궁금증은 끊이지 않았다.
▲ 일본 대부업체의 무인대출심사기. 30분이면 즉석에서 심사를 끝내고 대출해준다. | |
◇ 무인대출심사기로 30분만에 급전 대출
일본 대부업체 15위권인 아에루의 한 지점에 들어서자 궁금증은 조금씩 풀렸다. 지점은 5평 남짓한 조그만 공간으로 직원도 없었다. 무인대출심사기와 자동입출금기기(ATM)가 전부다.
무인대출심사기에 앉아 간단한 기계조작만으로 대부업체와 면대면 심사없이 30분이면 신용도에 따라 최대 500만엔까지 빌릴 수 있다.
대부업체는 본부에서 화상을 보면서 즉석에서 고객 심사를 진행한다. 신용도에 따라 대출 여부와 금액을 결정하고, 무인대출심사기를 통해 카드를 발급한다.
고객은 카드를 받아 무인대출심사기 옆에 놓인 ATM에서 대출한 금액을 리볼빙 방식(상환과 대출을 반복하는 대출)으로 빼 쓰면 된다.
국내 최대 대부업체인 러시앤캐시의 최윤 회장은 "일본은 이미 10여년 전에 무인대출심사기를 도입했고, 전체 지점 가운데 무인점포가 절반을 넘는다"면서 "한국도 서둘러 이같은 효율적인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컴플라이언스는 기본..업계 신뢰 회복 '구슬땀'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고 편리하게 돈을 빌릴 수 있는 대부업체에 대한 수요는 끊이지 않고 있다. 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는 연간 2% 수준에 불과한데 반해 대부업체의 금리는 최대 29.2%에 달한다.
담보가 없거나 신용도가 낮아 시중은행을 이용하기 어려운 월급쟁이나 서민들이 대부업체의 주고객이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같이 불법 사채업자들도 판치고 있어 물을 흐리고 있다. 현재 등록된 정식 대부업체는 1만4000여개. 이들은 신속성과 자동화로 무장한 것은 물론, 고객 신뢰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다.
'불법 악덕사채업자'라는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광고비를 아끼지 않는 한편 고객 컴플라이언스 강화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아에루의 이소시치 모리시타 부장은 "일본에서는 대부업체도 고객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서 "불법 채권 추심같은 일은 엄두도 내지 않고 있고, 조그마한 불편도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업계 전체의 노력도 돋보인다. 지난 67년에 설립된 일본소비자금융협회(JCFA)는 사회공헌 활동, 금전관리에 대한 상담사업, 불법사채업자 견제 등을 추진하고 있다.
마사히로 하시모토 JCFA 동경지부 사무총장은 "다중채무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5년전부터 매년 50억엔씩 투자하고 있다"면서 "아울러 '돈의 소중함'을 일찍 깨우칠 수 있도록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금전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부업계에 대한 불신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다. 최근 일본 소비자금융시장은 출자법의 상한 금리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있어 중대한 전환기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