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⑧김윤모 하나증권 기업본부장(하)

정명수 기자I 2001.04.27 14:47:05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하나증권 기업금융본부 김윤모 이사입니다.
(인터뷰 중편에서 이어짐)
-구체적으로 어려운 점은 뭡니까. ▲은행에서는 상사가 부하직원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수직적인 top-down decision making이 확실한 곳이 바로 은행이거든요. 요즘들어서 분위기가 많이 완화됐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보수적이에요. 하지만 증권사에서는 그래서는 안되겠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위계질서를 엄격히 내세우는 구조가 오히려 하우스의 발전을 해치는 거죠. 처음 출범시 은행, 그룹 등 다양한 곳에서 사람들을 끌어왔기 때문에 서로 다른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을 한 덩어리로 뭉치게 하는 작업에 1년이 걸린 겁니다. 그 후 “이제 전진하자. 이 인원이면 어디가서 무엇인들 못하겠느냐”는 결심이 섰죠. -요즘도 출근을 일찍 하십니까. ▲네. 8시 이전에 출근합니다. 이사 승진 후 저는 임원 방이 필요없다고 말했어요. 고객과 직접 대면하고 회의를 주재해야하는데 방이 왜 따로 필요하냐고 말했죠. <“내가 일한만큼 대우받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시장에 필요없다는 의미”> -임원승진 후에도 성과급체계를 그대로 유지, 상당한 연봉을 받으신다고 들었습니다. 비결을 좀 알려주시죠.(웃음) ▲임원 중 성과급을 받는 사람들은 다른 하우스에서도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내가 일한만큼 대우받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시장에 필요없다는 의미일거다. 내가 필요하다면 거기에 걸맞는 대우를 해줘야한다” 는 거죠. 제 친구들 중에는 주식브로커로 성공해 엄청난 돈을 번 친구도 있습니다. 제가 그 친구들보다 질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직급보다는 비즈니스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럼 월급을 더 많이 받는 부하직원도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올해는 제가 조금 더 많이 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작년까지만 해도 팀장이나 다른 직원들 중 저와 비슷한 연봉을 받는 친구들이 꽤 있었습니다. 저는 제 봉급을 부하직원의 디스커션을 통해 결정합니다. 팀장들이 직접 “우리 보스는 일을 이러저러하게 했으니 이만큼 받으면 된다”고 평가하는 거죠. 사실 위에서는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릅니다.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팀장이고 그들이 제게 돈을 줄 만하다고 생각해야 그 돈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들이 평가하기에 제가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면 저 말고 다른 사람이 하나은행 기업금융본부의 헤드로 와야 회사가 발전하겠죠. -옛날에 은행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을 고객으로 맞이하고 나서는 어떤 감정이 들던가요. ▲그 부분이 솔직히 말씀드려서 제 직업의 “애환” 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아직까지 브로커에 대한 인식이 매니저보다 화려하지 못한 일로 평가되고 있으니까요. 매니저와의 관계에서도 항상 자기주장을 낮추고 공손하게 대해야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앞으로는 동반자적 위치에 서는 식으로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브로커들이 많은 실력을 쌓아야겠죠. 저 개인적으로는 그런 문화를 많이 바꾸려고 노력하는데 상대방 쪽에서 호응해주지 않을 때는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 부분이 제일 힘들어요. -지난 한해 수익은 어느정도를 냈습니까. ▲30명이 영업이익 규모로 125억정도 흑자를 냈습니다. 원래는 170억 가량됐는데 코스닥 등록기업 시장조성 때문에 규모가 좀 줄어들었죠. <”실무경험을 가진 CEO들이 자꾸자꾸 등장하면 펀드매니저 대우가 파격적으로 달라지리라 믿습니다”> -이건 좀 조심스런 질문인데… 딜러와 브로커의 페이가 너무 차이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딜러들이 브로커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과도한 수수료에 반감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요. ▲미국에서는 스페셜리스트에게는 확실한 대우를 보장해줍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렇지않아요. 채권운용 펀드매니저가 운용을 잘해서 큰 수익을 내도 “너 혼자만 잘해서 그런 건 아니지 않느냐 시장이 좋아서 그렇지” 식의 분위기가 대부분이죠. 그건 한국의 금융기관 CEO나 CFO들이 능력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는 미국식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 크다고 봅니다. 실무경험을 가진 CEO들이 자꾸자꾸 등장하면 펀드매니저 대우가 파격적으로 달라지리라 믿습니다. -하나증권으로 옮긴 후 기억에 남는 딜은 무엇인가요. ▲회사채로 보면 두 가지 정도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이름을 밝히기는 좀 그렇고…하여간 모 그룹사의 BBB 등급 채권이 특히 기억에 남는군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소외당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그룹사가 증권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쪽에서도 맡을 엄두를 못 냈어요. 저희 리서치에서 분석을 해보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돼서 밀어붙였습니다. 딜이 성공한 다음에는 고맙다고 난리도 아니더군요. 지금 잘 나가는 회사들 중에서도 한때 채권발행이 어려웠던 곳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 쪽을 맡았을 경우 저희는 이런 식으로 접근했습니다. 큰 기관을 직접 찾아가서 “이 채권을 왜 안 사냐. 이건 정말 저평가됐다” 고 주장했습니다. Argue 아닌 argue를 한 거죠. 그래서 큰 수익을 안겨준 곳이 몇 개 있습니다. 기업금융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큰 보람이었어요.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시대흐름에 순응하는 자세가 필요> -힘들거나 어려웠던 적은 없습니까. ▲제가 노력한만큼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나 할까요. 또 하나는 금융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대부분 보수적이다보니 새로운 지식이나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좀 유연하지 못한 것 같아요. 배타적인 사고방식이 많이 존재하는 편입니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시대흐름에 순응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원래 영업하는 분들은 좀 공격적인데요. ▲저는 조화를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한 면만 뛰어나서는 안되고 다방면에 걸쳐 균형감각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기자도 취재를 위해 매일 정보를 요구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정보를 주기도 해야 다음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세상만사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식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쪽 계통의 사람이 너무 강성을 띠면 곤란하죠. 이번에 놓쳤더라도 다음 번에 좀 더 좋은 가격을 노리려면 적당히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합니다. -한의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는데…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우선 저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혈색을 세심하게 관찰합니다. 혈색만 유심히 관찰해도 신체의 어느 부분이 안 좋은지 정도는 알 수 있어요. 제가 체계적으로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지식을 쌓으려고 노력한 결과라고나 할까요. 병명이나 약재에 관한 호기심도 많습니다. 저는 “사람은 건강하게 오래살아야 한다” 고 생각해요. 미국 매니저들은 fitness club 등을 이용하면서 자신의 건강관리에 대단한 노력을 쏟습니다. 지금도 건강한 데 뭐하러 그렇게 시간을 들여서 운동하냐고 물어보면 그들의 대답은 이겁니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데일리 몸 컨디션을 최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가진 능력의 베스트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럼 건강관리를 어떤 식으로 하시나요. ▲목욕하는 것을 무척 즐기고 음식을 가려먹습니다. 기름진 음식은 거의 입에 대지 않습니다. 비만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서양에는 채식주의자가 많지만 바로 녹차입니다. 녹차를 끊임없이 마시죠. 담배도 끊었습니다. 금연을 결정한 이유는 브로커를 하다보니 말을 많이해서 목 상태가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성대결절도 앓았습니다. 목이 나빠져서 처음 병원에 갔더니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인턴이 그러더군요. 혹시 직업이 가수시냐고. 그래서 가수라고 했습니다.(웃음) -다방면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의사말고 다른 직업을 희망한 적은 없습니까. ▲쇼 프로그램 PD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음악을 무척 좋아해요. 듣는 것, 노래하는 것 모두다(웃음). 쇼 PD는 우선 즐거움을 주는 직업이잖습니까. 화려하고 재미있고 다이나믹한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누군가 “어차피 인생은 쇼다” 하던데요(웃음) <인재에 대한 교육, 투자가 시급하다> -한국 브로커리지 하우스가 앞으로 갖춰야 할 점은 무어라고 생각하시나요. ▲외국증권사에 비하면 지극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적어도 기업금융 부분에서는 세계적인 증권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이를 위한 교육 및 투자가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직원을 외국에 보내서 선진금융기법을 익히게 하는 일을 비롯해서요. 인재를 키우지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지금 비슷한 일을 계획중인데 이데일리에서도 한 분 정도 참가하시면 좋겠어요. 이 모두가 한국금융시장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겁니다. -그러한 계획들이 윗선에서 제지 당하지는 않을까요. ▲그건 간단합니다. 이제 금융기관도 많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해당기업에 돈을 더 많이 벌어다주면 제가 원하는 바를 요구할 수 있는 거죠.(웃음) 그리고 회사도 그것을 수용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바램은 무엇입니까. ▲저는 파트너라는 말을 무척 좋아하고 국내 최초의 파트너증권사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장, 앤더슨, 아서 D 리틀, PWC 같은 곳 말입니다. 각자가 파트너가 돼서 회사 일에 책임을 지는 유한회사 말입니다. 우리나라 조직에서는 인사가 어떻고 급여가 어떻고 간섭하고 질시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잖습니까.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아요.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누가 봐도 ‘아, 저 하우스는 실력좋고 깨끗하고 담백한 곳이구나. 뛰어난 애널리스트, 브로커, 딜러들을 고루 갖췄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끔 할 겁니다. 이제 한국 자본시장도 자생적인 경쟁력을 갖출 시기인 것 같아요. 사실 금융계 선배들 중에서도 이런 노력을 하신 분들이 몇 분 계세요. -결혼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선을 봤습니다. 그 때 집사람은 병원 약사로 근무 중이었는데 만나기전에 먼저 전화를 했죠. 그랬더니 다짜고짜 “저번 주에 전화하신 분이죠?” 하는 겁니다. 무슨 소립니까. 난 저번 주의 그 남자가 아닌데. 그 말을 듣고 나니 오기가 막 발동하더라구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덤볐죠. 허허 동양적 성격이라 제 생활을 잘 이해해서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공부를 더하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습니까. ▲그 생각은 많이 해왔습니다. 이사 승진 때 제가 임원승진 대신 공부를 좀 더 시켜달라고 부탁드린 적도 있습니다. 이론적인 것보다 선진국 자본시장에서 어떤 상품이 판매되고 그런 시스템은 어떻게 구축돼 있느냐는 식의 실질적인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공부한 것들을 한국금융시장에 정착시키는 작업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죠. 언젠가는 갈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아울러 저희 팀장급은 무조건 순환해서 공부를 계속 시킬 생각입니다. (김윤모 이사 약력) -59년 부산 출생 -부산대동고 졸업 -79년 고려대 정경대 통계학과 입학 -83년 조흥은행 입사 -86~91년 한미은행(신탁부, 외환업무부) -91년 하나은행(한국투자금융 전환설립 사무국, 신탁증권부, 영업부, 종기부, 장기경영팀) -99년 하나은행 지점장 -99년 9월~ 하나증권 기업금융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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