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분석)환율 폭등, 시장 불안..확산되는 위기의식

손동영 기자I 2000.11.20 18:49:39
97년의 외환위기 경험탓에 20일 달러/원 환율의 폭등이 예사롭지않다. 환율이 폭등하면 물가는 불안해지고 수입가격 상승으로 소비는 침체된다. 불황의 악순환을 몰고올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환율상승에 대한 우려가 높아가고있다. 특히 이날 환율폭등의 주범으로 지목된 역외세력의 달러매수세는 투기적인 것이었든, 환리스크 헤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든 금융시장에 상당한 공포감을 안겨주고있다. 외환시장 참가자들 사이에 “정부가 환율안정을 위해 외환보유고를 써야할 때가 오는 것 아니냐”는 걱정스런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20일 환율흐름에서 나타난 특징 외환당국은 이날 두차례에 걸쳐 구두개입을 단행했고 실제 공기업과 국책은행을 동원해 달러를 팔면서 환율급등세에 제동을 걸려고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예금보험공사등 공기업과 산업은행등 국책은행은 이날 오후장 환율이 1150원대로 올라서는 폭등세를 보이자 달러매도에 나섰다. 그 규모는 최대 2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있다. 그러나 환율은 이들 물량을 모두 빨아들이면서 오름세를 더 강하게 이어갔다. 환율폭등의 주도자였던 역외세력의 달러매수는 1000만달러 단위로 꾸준히 이어지며 2억달러를 넘어섰다. 결국 이날 환율은 종가기준으론 지난해 12월1일의 1157.30원 이후 1년여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장중가 기준으로는 지난 1월12일 기록한 1155원이후 최고. ◇환율 폭등한 이유 대만달러의 폭락이 심리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우리와 경쟁상대인 대만달러가 역외세력의 공격을 받으며 폭락하자 원화 환율도 영향을 받을 것이란 판단이 많았다. 구조조정 지연에 대한 우려감도 중요한 원인중 하나. 정치권의 파행으로 공적자금 조성이 지연되는 상황은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 문제와 함께 이날 한국신용정보가 LG텔레콤과 데이콤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면서 LG그룹 전체로 번질 가능성이 제기된 것도 시장의 악재중 하나였다. 미국 증시의 움직임이 예측불허라는 점도 함께 작용하고있다. 1132원대 환율에서부터 정유사등 대형 수입업체들의 결제수요가 대거 유입되면서 오름세를 형성해왔다는 점에서 이 같은 외부변수와 함께 수요우위의 시장흐름은 결정타가 됐다. ◇역외세력의 동향 심상치않다 당국은 이날 오후3시13분쯤 구두개입에서 “정부는 비거주자의 외환거래등 외환시장 동향을 예의주시하고있다“고 밝혔다. 환율급등의 주범으로 비거주자, 즉 역외세력을 꼽은 것. 역외세력의 달러매수세에 대해선 판단이 엇갈린다. 특히 지난 17일 장마감 3분여를 앞두고 강력한 달러매수로 환율을 급등시켰던 세력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있다. 외국계 펀드로 추정되는 당시 달러매수세력은 단 3분동안 1억달러이상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역외세력이 지금 달러매수에 나서는 이유로는 우선 환차익을 노린 투기적 행위일 가능성과 환리스크 헤지를 위한 방어적 행위일 가능성이 양립한다. 투기적 매수라면 원화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고 리스크헤지 차원이라면 한국경제 불신에 따른 탈(脫)한국의 의미로 확대될 수 있다. 당국이 환율안정을 위해 섣부르게 대응하다 실패할 경우 투기세력의 공격에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도 제기되는 형편이다. ◇당국의 입장은 당국은 일단 환율급등세에 제동을 걸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당장 20일 환율폭등은 금리와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환율이 오른다는 사실만으로도 IMF 위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오름세를 더 방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우리 경제의 유일한 탈출구인 수출촉진을 위해 원화절하, 즉 일정 수준의 환율상승을 용인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내놓고있다. 1130원대 환율에서 1140~1160원대 환율로 한단계 레벨업하고있다는 뜻. 대만달러 폭락도 이런 움직임을 뒷받침한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이런 분석이 맞더라도 상승속도에 대해선 모두가 우려하고있다. 일단 속도를 조절하려는 움직임은 필수적이란 것. 21일 환율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외환보유고 꺼내 쓸 상황이 올까 시중은행 한 딜러는 “지금 외환시장에 달러를 공급할 수 있는 세력은 공기업과 국책은행뿐”이라며 “역외세력이 태도를 바꾸기 전까지는 이런 정도의 달러공급만으로 환율오름세를 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우려했다. 특히 환율이 폭등하는 과정에서 당장 필요한 달러를 확보하지못한 기업들이 서둘러 달러매수에 나설 경우 수급구조는 급속히 수요우위로 고착화할 수 있다. 결국 외환보유고를 사용해야할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아직 당국의 능력을 믿고있다. 하루거래량 25억~30억달러 시장에서 10억달러만 쏟아부어도 환율오름세를 반전시키는데 충분하다는 생각. 더욱이 외환보유고를 사용해서도 환율안정에 실패하는 경우 닥쳐올 엄청난 후유증을 생각하면 당국은 21일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환율오름세를 꺾으려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은행 딜러들은 21일 환율의 범위를 1145~1165원으로 넓혀잡고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