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경기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각국 증시는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오르고 있고 채권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투기등급, 신흥국 채권 등으로 돈이 몰리는 모습이다.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고개를 든 데에는 역설적으로 부진한 경기가 큰 역할을 했다. 추가 부양 기대감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마이너스 금리로 인한 채권 투자매력 감소, 원자재 가격 상승 등도 힘을 보탰다.
여전히 무기력한 경제…추가부양 기대감 고조
글로벌 경제는 여전히 먹구름이다. 15일 나온 일본의 2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분기대비 0%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지난 주말 미국 7월 소매판매는 한 달 전과 같은 수준에 머물러 예상했던 0.4%에 못 미쳤고 소비자물가 선행지표인 생산자물가는 10개월 최대폭으로 하락했다.
지난주 중국의 6월 산업생산은 전년동월대비 6% 증가해 예상을 밑돌았고 전월에 비해서도 둔화됐다. 소매판매와 고정자산 투자도 예상을 하회했다. 주 초반 나온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두 달 연속 1%대에 머물면서 디플레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이 같은 부진한 경제지표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추가로 경기부양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으로 이어지면서 위험자산 선호심리를 자극했다. 일본은 이미 정부가 대규모 재정정책을 내놨고,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BOE)도 추가 양적완화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높다.
작년 금리인상 테이프를 끊은 미국도 올해에는 인상기조를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미국 소매판매 지표가 나오자 금융시장에 반영된 연방준비제도(Fed)의 연내 금리인상 가능성은 하루 전 49%에서 42%로 떨어졌다.
덕분에 FTSE 전 세계 지수는 올 들어 5.3% 올랐고 미국 3대 지수는 지난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주말 다우존스지수와 S&P500지수는 조정양상을 보였지만 나스닥은 또 올라 최고 기록을 다시 썼다. MSCI 아시아태평양 지수는 지난주 3.1% 올라 1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이처럼 증시가 오른 데에는 기업의 실적호조도 기여했다.
공급부족 전망에 오르는 원자재…위험자산 투자심리 자극
원자재값이 최근 오름세를 보이는 것도 위험자산 회피심리를 누그러뜨리는데 한몫했다. 글로벌 경기 부진으로 수요 정체는 여전해도 공급이 빠듯해질 것이란 기대감이 원자재값을 끌어올리고 있다.
15일 아시아 거래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9월 인도분은 배럴당 44.95달러로 1%가량 올랐다. 지난 한 주간 6.4% 오르면서 4월 이후 주간 기준 최대 상승률을 기록한 데 이어 주초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브렌트유 선물은 전장 대비 16센트 오른 47.13달러로 지난 7월 말 종가에 비해 10% 이상 올랐다.
최근 산유국의 생산량 조절 움직임이 유가를 끌어올린 주요 이유다. 지난 11일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칼리드 알-팔리 에너지장관이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비회원국들이 다음 달 알제리에서 회동한다”면서 “이 회의에서 원유 시장의 안정을 위한 가능한 행동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유량 조절 논의에 가장 적극적인 베네수엘라 석유장관과 외무장관은 회담을 앞두고 산유국을 방문해 사전작업에 나설 예정이어서 결과물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니켈과 구리 등 금속도 강세다. 런던시장에서 니켈과 구리는 각각 0.6%, 0.3% 올랐다. 니켈은 필리핀의 광산 규제로 생산량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에 강세를 보였다.
◇안전자산 선진국 채권 너무 올랐다.
안전자산 대표인 선진국 국채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 역시 위험자산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배경으로 꼽힌다. 주가와 채권값은 보통 반대로 움직이지만 이번에는 같이 오르는 가운데 채권시장 내에서도 유동성이 점차 위험자산으로 옮겨가고 있다.
트레이드웹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마이너스 금리인 채권 규모는 13조4000억달러(약 1경4800조3000억원)에 달한다. 지난 한 주 동안에만 3000억달러(약 331조2500억원) 불었다. 유럽과 일본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국가에서는 국채뿐 아니라 등급이 높은 회사채까지도 마이너스 영역에 들어섰다.
특히 지난주 영란은행(BOE)이 양적완화 일환으로 국채 매입을 시작한 데다 뉴질랜드 중앙은행까지 금리를 낮추면서 글로벌 채권금리가 일제히 하락했다. 이자수입은 커녕 수수료까지 내가면서 채권투자를 해도 채권값 상승에 따른 자본이익을 누릴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수익을 조금이라도 낼 수 있는 자산으로 몰려가고 있다. 채권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위험이 높은 이머징마켓 채권, 투기등급 본드, 초장기 국채 투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글로벌 채권펀드의 신흥시장 투자 비중은 지난 2월 9.8%에서 8월 10.6%로 늘어 1년래 최대를 기록했다. 비중이 크게 뛴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 채권펀드 운용규모가 1조달러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로 인해 신흥국으로 유입되는 자금은 수백억달러에 달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선진국 채권지수는 올 들어 7월까지 0.56% 오른 반면 신흥국 국채 지수는 4.44% 상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