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증권사인 노무라가 빚 잔치에 나선 리먼브러더스의 아시아 법인을 손에 넣었다. 유럽 법인과도 단독 협상을 벌이고 있어 인수 확정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오랫동안 해외시장에서 사세확장 기회를 노려온 노무라는 생각치도 못 한 싼 값에 꿈을 이뤄, IB시장의 주전으로 급부상했다. 비록 그 꿈의 무대가 반토막 난 상태이긴 하지만 말이다.
◇ 노무라, 리먼 亞·유럽법인 `꿀꺽~`
노무라홀딩스는 지난 22일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관리를 맡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와 아시아 법인을 2억2500만달러에 인수키로 합의했다. 현재 매각협상이 진행중인 유럽법인 또한 노무라가 인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925년 증권부가 노무라증권으로 독립했으며, 2001년 지주회사법에 따라 지주사인 노무라홀딩스로 바뀌었다. 이와 별도로 새 노무라증권이 설립돼 기존 노무라증권의 증권 및 부대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 `일본을 넘어 세계로`
노무라증권은 일본 최대 증권사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은 물론 아시아에서조차 그 영향력이 크지 않다. 일본의 제조업을 비롯한 주요 산업이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지만, 금융사들은 유독 글로벌 열등생을 면치 못 한 게 사실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노무라의 시장점유율은 0.4%로 55위에 그쳤으며,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에서의 이쿼티 캐피탈 마켓 사업(ECM) 규모는 1300만달러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 4위 증권사이자 유럽 M&A와 ECM시장에서 10위안에 드는 리먼의 사업부를 인수함에 따라 차원이 다른 IB로 거듭나게 됐다는 평가다. 게다가 아시아 법인 인수 가격은 노무라가 사업확장을 위해 확보한 자금 60억달러의 채 5%도 안 된다.
오노 아즈마 크레디트스위스 연구원은 "노무라가 최소 비용으로 그토록 바라던 세계 IB시장에 뛰어들게 됐다"며 "자기 힘으로 하려면 3년 이상 걸렸을 일을 몇 달 만에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더군다나 IB시장의 터줏대감들이 줄줄이 위기를 맞아 정리된 상태. 시장 파이 자체가 줄었다는 우려는 있지만, 경쟁자들의 숫자와 위력이 크게 약화됐다는 점에서 본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하기에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 `통합` 숙제 어떻게 풀까?
그러나 리스크 없는 딜은 없다. 노무라가 세계시장에서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리먼과의 통합`이라는 쉽지 않은 과제를 현명하게 처리해야 한다.
FT는 IT 시스템 통합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메가은행으로 재탄생한지 3년이 넘은 미쓰비시UFJ 그룹이 아직도 미쓰비시와 UFJ간 시스템 통합을 완성하지 못 한 것을 예로 들어, 일본 기업들은 시스템 통합이 늦기로 악명높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리먼과 노무라의 기업 문화, 더 나아가 국가 간 문화 차이. 남성호르몬을 무차별 방출하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미국 뱅커들과 샐러리맨에 가까운 섬세하고 침착한 일본 뱅커들의 차이는 갈등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리먼브러더스 역시 일본을 아시아법인 본부로 정하고 3000명 직원 중 절반을 일본인으로 채우면서 똑 같은 문제를 경험한 바 있다. 특히 연봉제임에도 사실상 직원간 연봉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이 갈등 요인.
홍콩의 한 헤드헌터는 "뱅커들에게 매우 어려운 시장 환경"이라며 "고용 승계를 보장받은 리먼 직원들이 즉각적으로 노무라를 떠나진 않겠지만, 일본식 문화와 시스템을 강요받을 경우 금방 사퇴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먼의 `돈줄`인 갑부 고객들 다수가 이미 `탈 리먼`을 결행했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오노 연구원은 "노무라가 이미 리먼을 떠난 프라임 고객들이 다시 잡아올 수 있을 것인지가 확실하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