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자동차)지상 최강의 SUV..허머 H3

조영행 기자I 2005.10.19 14:37:21
[이데일리 조영행기자] 70년대 중반께 TV방영됐던 `사하라 특공대`라는 외화 시리즈가 있습니다. 어릴 때 일이라 주인공도 줄거리도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캐리버 경기관총을 장착하고 사막을 거침없이 누비면서 독일군을 혼내주던 군용 짚(Jeep)의 활약만 깊이 각인돼 있습니다. 로보트 태권 브이에 대한 동경과 다를 바 없는 허무맹랑한 생각이었지만, 어린 마음에 `저 차가 있으면...`하고 상상했던 게 난생 처음 가져 본 자동차에 대한 욕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자들이라면 한 번쯤 가져봤을 이런 욕망에 한 발 다가선 강력한 자동차 `허머` 이야기입니다.

1970년대 후반에 미군은 다양한 종류의 차량이 수행하는 여러 기능을 통합 수행할 수 있는 단일 모델의 군용차량을 개발하기로 했다. 그 계획이 바로 이른바 HMMWV(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 즉, 고기동 다목적 차량 개발 프로젝트였다. 1979년 미군당국은 신차개발을 위한 공개입찰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미국 국방부는 전세계의 지형을 고루 주파할 수 있는 탁월한 주행성능과 강을 통과할 수 있는 도하능력, 산악지형을 오르내릴 수 있는 험로 주파성, 어떤 지형도 이겨내는 차체 강성 그리고 정비하기가 쉬울 것을 새로운 차량 개발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프로젝트에 AM제너럴과  크라이슬러 디펜스, 텔레다인이 참여해 각축을 벌인 결과 최종적으로 AM제너럴사의 차량이 채택돼 85년부터 본격 생산을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차량이 현재 미군의 주력 차량으로 사용되고 있는 험비(Humvee)다.

험비는 60도의 경사각도 등판과 40도 각도의 비탈길 주행, 46센티미터 높이의 수직장애물 통과, 76센티미터 깊이의 참호 통과 등 전천후 주행능력을 자랑한다.

말 그대로 길이든, 길이 아니든 가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것이다. 험비는 91년 제1차 걸프전 지상전에 투입돼 큰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2차대전을 누볐던 `사하라 특공대`를 현대판으로 업그레이드 했다고 할 만하다.

AM제너럴이 92년 군용차량인 험비를 민간 판매용 버전으로 전환한 것이 지상 최강의 SUV로 일컬어지는 허머(Hummer)다. 99년 AM제너럴이 GM에 흡수된 뒤 허머는 도로주행에 맞게 차체를 줄이고, 인테리어도 고급스럽게 바꾸는 등 온·오프를 아우르는 고급 SUV로 탈바꿈을 했다. 

허머는 주행성능은 물론 디자인 자체도 성냥곽을 연상시키는 직선적인 실루엣을 강조하며 오직 `강인함`을 컨셉으로 하고 있는 남성적인 차량이다. '더 록` `인디펜던스 데이` `고질라` `007 네버다이` 등 각종 액션 영화에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고, 영화배우이자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터미네이터` 아놀드 슈왈츠 제너거가 가장 좋아하는 차로도 유명하다.

허머의 기본형인 H1은 8기통 6200cc엔진을 장착해 316마력의 힘을 발휘하며 가격은 10~12만 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힘의 상징` 허머는 불행하게도 최근 `고유가`라는 복병을 만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연일 SUV 차량의 판매 감소와 소형차 판매 급증을 보도하면서 고유가의 최대 피해자로 주로 인용하는 것이 바로 허머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스 10월 4일자는 "휘발유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대형 SUV의 좋은 날은 사라지고 있다"며 허머 같은 `괴물`의 위기를 보도했다.

실제로 올들어 지난 9월까지 미국시장에서 허머의 판매는 2만284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21% 감소해 고유가의 후폭풍에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H1, H2, H2 SUT에 이어 허머가 올해부터 시판에 들어간 H3는 이런 우려를 예견이라도 한 듯 `다운 사이징`으로 경제성을 크게 높인 것이 특징이다.

H2의 사이즈를 길이-16.9인치, 너비- 6.5인치, 높이-6인치 줄여 H3를 만들었다. 무게도 765킬로그램이나 줄였다. 차체와 무게를 줄임으로써 갤런당 12~16마일에 이르던 연비도 20 마일로 개선했다. 

가격도 지난 해 신차 발표 당시 3만5000달러 안팎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2만달러대에 진입해 SUV로는 가장 대중적인 가격대를 치고 들어갔다. 최저가 기본형의 가격이 2만9500달러. 미드 사이즈급으로 체급을 한단계 낮추면서 도요타 4러너, 짚 그랜드 체로키, 닛산 X테라, BMW X3 등을 경쟁자로 삼고 있다.

H3는 시보레 콜로라도와 GMC 캐년 픽업 트럭과 기본 구조와 5기통 엔진 등 기계적인 부품을 공유하고 있다. 
 
보텍 3500cc 5기통 엔진을 심장으로 5단 수동변속기나 4단 자동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으며 엔진 최대출력은 220 제동마력(bhp)이다. 

4륜구동 시스템과 자세 안정화 시스템을 기본사양으로 갖췄고 가죽 시트, 네비게이션, 전동식 선루프, 위성 라디오 시스템, 33인치 타이어는 선택사양이다. 

디자인은 기존의 허머에 비해 다소 얌전해졌지만, 전/후 오버행을 최대한 줄이고 최저 지상고를 높여 오프로드 성능을 보강했다는 것이 GM측의 설명이다. 꿈 같은 허머의 오프로드 성능을 3만달러 안팎의 가격에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매력적인 유혹임에 틀림없다.

H3가 오프로드 성능면에서는 `지상 최강의 SUV`라는 허머의 DNA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지만, 대중적인 미드사이즈 SUV로는 경쟁차종에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가도 있다. 오프로드 못지않게 도로주행성능이 중시되는 중형 SUV 치고는 핸들링이나 가속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듯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정지상태에서 시속 60마일(약96킬로미터)에 이르는데 걸리는 시간이 10.2초로 기존의 콜로라도 보다 1.5초나 늦어졌다. 

컨슈머가이드(www.consumerguide.com)의 주행테스트결과 H3는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가속 4점(동급 평균4.7점), 연료효율성 3점(동급 평균 4점), 스티어링 및 핸들링 4점(동급 평균 4.2점)으로 경쟁 차종 평균 점수를 밑도는 저조한 평가를 받았다. 주행테스트에 참가했던 자동차 평론가 마크 빌렉은 "H3의 가격은 합리적이지만, 동급의 다른 차량과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 가장 훌륭한 부분은 인테리어다."라고 평가했다. 

물론 허머라는 브랜드 자체가 이런 평가의 잣대로 선택이 되는 자동차는 아니다. 실제 H2의 경우 같은 사이트의 평가에서 2점대의 점수를 받았지만, 허머 H2의 힘과 성능에 의문을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H3의 경우 경제성을 키워드로 잡았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걸림돌이 될 공산도 있다. 

당초 허머는 H3를 내세워 소비자 층을 확대하고 매출을 크게 늘린다는 포부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매 패턴이 급변하고 있는 이즘의 정황을 보면, H3는 자칫 빙하기에 태어난 공룡의 처지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듯하다.



<주요 제원>
전장 - 474.2 cm
전폭 - 217.2cm
전고 - 189.2cm
공차중량 - 2117kg
승차정원 - 5명
구동방식 - 4륜구동
배기량 - 3500cc
최대출력 -220/5600 bhp/r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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