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코로나" 도넘은 '차별·혐오'…일상 무너진 이주민들

이용성 기자I 2021.08.29 20:00:00

[코로나가 부른 外人 혐오]②
"피부색 때문에"…이주민 향한 혐오·차별
"코로나19 이후 더 심해져"…"정부도 문제"
"역지사지"로 바라보고 인식 전환해야"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피부색만으로 한국에서 우린 죄인입니다. 숨어지내는 것이 일상이에요.”

한국에 살고 있지만, 투명 인간처럼 지내는 이들이 있다. 혐오와 차별이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오는 사회에서 ‘투명인간’들이 발 붙일 공간은 없다. 특히 코로나19 이후로 이들의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졌다. “나도 사람이다”라는 외침은 피부색에 가려진다. 외국 이주민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지난 23일 인천시 모처에서 방글라데시계 한국인 여성 김모(26·오른쪽)씨와 남편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부부는 인터뷰에 응하는 대신 얼굴 사진촬영과 신상 비공개를 요구했다.(사진=이용성 기자)
◇지나가는 다문화 가정 2세에…“야 코로나” 욕설·폭행

방글라데시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 가정 2세인 김모(26·여)씨는 작년 10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김씨를 향해 50대 중반의 중년 남성 2명이 대뜸 “야, 코로나!”라고 욕설을 한 것. 김씨가 항의를 하자 이들은 오히려 당당했다. 이들은 김씨의 까무잡잡한 피부를 보고 “불법체류자 아니냐. 한국인 상대로 돈 뜯어 먹는 놈들 아니냐”고 욕설을 토해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네이티브 한국어’를 구사하는 김씨를 밀치기도 했다.

이들의 욕설은 경찰이 올 때까지 계속됐다. 경찰이 오기까지 10분은 지옥 같았다. 상황은 정리됐지만, 경찰은 가해자들을 조사하기 전에 불법체류자인지 김씨의 신원부터 확인했다. 형법상 모욕죄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경찰은 “남성들이 욕설한 부분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김씨에게 설명했다.

김씨가 변호사를 선임하자 경찰의 태도가 달라졌다. 따로 전화해 절차를 설명해주기도 했다. 모욕 혐의로 기소된 중년 남성들은 이달 법원에서 벌금 100만원 약식명령을 받았다. “피부색 때문에 ‘이방인’인 줄 알고, 약하고 힘이 없어서 일을 크게 벌릴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봐요.” 김씨는 그날의 ‘악몽’을 이렇게 정리했다.

서울시, 경기도 등 지자체가 외국인 노동자에 코로나19 전수검사 행정명령을 내렸던 지난 3월 19일 오전 서울 구로구 구로역 광장에 마련된 임시 선별검사소에 외국인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사진=이상원 기자)
◇“단지 피부색 때문에”…혐오·차별에 이주민들 일상 파괴

‘외국인 200만 시대’라지만 피부색이나 생김새가 다른 ‘비(非) 백인’ 이주민, 다문화 가정에게 혐오와 차별은 일상이다. 2008년부터 정식 절차를 밟고 한국에 발을 들인 방글라데시인인 A씨(29)씨의 삶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A씨는 한 시내 도로에서 접촉사고를 당했다. 처음에 굽실대던 한국인 남성은 A씨의 피부색과 생김새를 확인하자 돌변했다. 그에게서 “어디서 왔어 XXX야”, “남의 땅에 와서 편안하게 살지?”라는 욕부터 날아왔다. 출동한 경찰에게도 이 남성은 “한국인한테 감히 그래도 되느냐”라고 큰소리쳤다.

외국인들은 코로나19 이후 만연한 혐오와 차별로 일상이 파괴됐다고 했다. 피부색이 다른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다. 김씨의 경우 그날 그 사건 이후 중년 남성만 보면 피해 다닌다. 죄 지은 적이 없지만 사건 발생 장소 인근 편의점을 한동안 가지 못했다. 버스 정류장에 사람이 많으면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려 우회로로 집까지 걸어갔다. A씨도 사람 많은 곳을 일부러 꺼린다. 누군가가 무시하거나 시비를 걸면 눈 한 번 질끈 감고 넘어간다.

김씨는 “한국인이 외국에 가면 어땠을지, 한 번쯤 고민을 해봤으면 한다”며 “피부색이 어떻든, 생김새가 어떻든, 같은 공동체에 사는 이웃주민으로 우리를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아시아권 출신 외국인을 어두운 피부색, 곱슬머리, 어두운 표정과 함께 불법체류자로 묘사한 법무부의 홍보물.(사진-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코로나 이후 ‘外人 혐오’ 극심…“정부도 문제”

코로나19 이후 외국인들은 확실히 차별과 혐오가 심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외국인들이 다수 근무하는 충남 천안에 있는 한 회사는 코로나19 이후 한 달 가량 외국인 노동자의 외출을 금지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파키스탄인 B씨는 기숙사와 회사만 이동할 수 있었다. 한국인 직원에게는 물론 적용되지 않은 조치다.

코로나19의 진원지로 알려진 중국인들 상당수도 차별에 떤다. 중국인 C씨는 “중국인이라고 마트에서 쫓겨난 적이 있고 아는 이는 식당에 아예 들어가지 못한 적도 있다”며 “공공장소에서 중국어를 말하기가 두렵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이후 외국인 차별·혐오가 더 크게 불거진 데에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18개 정부부처가 제작한 홍보물에서 인종·이주민과 관련, 150건가량 문제 표현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아시아권 외국인들은 어두운 피부색과 곱슬머리, 어두운 표정 등 부정적인 모습으로 묘사한 경우가 많다”며 “코로나19 이후 혐오 감정이 범죄로까지 번지고 있는데 이런 표현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3월 서울시·경기도 등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코로나19 전수 검사를 의무로 받도록 행정명령을 내려 인종차별이 아니냐는 뭇매를 맞았다. 차별 논란이 거세지자 방역당국은 코로나19 검사 의무를 철회하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바 있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한국 사회에선 구분이 바로 차별로 이어지는 경우가 두드러진다”며 “사회적 인식이 따라주지 않으니 혐오도 마치 그래도 되는 것처럼 자리 잡은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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