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5년 단위의 중기재정운용계획을 수정하면서 균형재정 달성 시점을 애초의 2012년이 아닌 2013~2014년으로 늦춰 잡았다.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재정수지도 올해 GDP 대비 -5.0%에서 2013년 균형수준인 -0.5% 달성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실질 경제성장률을 5%로 잡고 있는 것이나, 세수 증가율을 이 보다 훨씬 높은 9% 후반대로 보고 있는 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인 `747`(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7대 강국)에 맞추기 위해 2012년 경제 성장률을 7%로 무리하게 잡았던 `전과`를 갖고 있다. 정부의 특성상 정책적 의지를 어느정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습관적인 무리한 목표 설정은 오히려 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경제주체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송호신 조세연구원 세수재정추계팀장은 "국가채무를 너무 선언적으로 하지 말고 중기계획이 믿을 만하게 나와야 시장에서 호응할 것"이라며 "시장의 신뢰를 줄만한 중기계획이 나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5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정부의 이같은 중기전략을 둘러싼 재정건전성 문제가 핵심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 중기재정전략 변수 지나친 `낙관`
정부가 최근 수정 발표한 중기재정운용계획(2009~2013년)에 따르면 오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실질 경제성장률을 5%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뚜렷한 근거가 없는 낙관적 전망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잠재성장률이 3%대로 감소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데다, 더블딥 우려가 제기되는 등 세계경제 전망이 녹록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세수 증가율에 대한 낙관 역시 지나치다. 재정수지를 좌우하는 총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세수입 전망을 보면, 정부는 2011년의 세수가 전년대비 8% 늘고, 2012년에는 9.7%, 2013년엔 9.8%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2011~13년 사이 실질 경제성장률인 5% 보다 세수 증가율을 훨씬 높게 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위기 이전인 지난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8년간 국세수입증가율이 7.7%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는 턱 없이 높은 수준이다. 무리한 감세로 세입 기반이 크게 훼손돼 내년 국세수입 증가율은 2.8%로 경상성장률(6.6%)을 크게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정부의 중기전망은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종합부동산세 개편, 법인세 및 소득세 세율 인하 등 작년 이후 세제개편에 의한 세수감세 규모가 2012년까지 9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송 조세연 팀장은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선 대부분 직후 연도만 챙기고 그 이후는 긍정적인 전망을 습관적으로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청와대의 경제적인 목표, 기대치에 맞추다 보면 미래가 장미빛으로 나오게 마련이며, 결국 재정이 정치적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 1인당 국가채무 3년간 216만원 `급증`
이명박 정부 들어 3년 동안 1인당 국가채무가 216만원이 늘어났다는 야당의 분석도 눈에 띈다.
민주당은 최근 정부의 2010년 예산안에 대해 너무 빠른 국가채무 증가속도와 이명박 정부 임기 내 재정위기 우려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2010년 예산안에 따르면 2010년 국가채무는 407조1000억원으로 2007년말대비 108조2000억원(35%)이나 늘어난다. 1인당 국가채무는 2007년말 617만원에서 2009년 751만원으로 늘어났고, 내년에는 833만원까지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내년 국가채무가 407조1000억원으로 GDP의 36.9%를 차지하는 사상최대 규모"라며 "국가채무 300조원을 돌파한 지 2년 만에 400조원을 초과하는 등 너무 빠르게 국가채무가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또 이명박 정부의 국가채무 연평균 증가액이 36조1000억원으로, 참여정부 연평균 증가액 33조1000억원보다 많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재정건전성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평균인 75.7%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이것 역시 기축통화국인 주요 선진국들과 단순 비교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여당에서조차 "경제위기 상황이니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는 자세는 안된다"며 "대통령도 재정건전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될 만한 것이다.
◇ 순국가채무 질 나빠져.."장기불황 경계"
내년 순증하는 국가채무의 상당 부분이 국민 세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적자성 채무라는 문제도 있다.
국가채무는 대응자산의 보유 여부에 따라 `적자성 채무`와 `금융성 채무`로 나뉜다. 금융성 채무는 외국환평형기금이나 주택기금 등 자산 매각과 융자금 회수를 통해 자체 상환이 가능하지만, 적자성 채무는 조세 등 실질적인 국민부담으로 갚아야 한다. 일반회계 적자보전, 공적자금 국채전환, 국고채무 부담행위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적자성 채무는 지난해 131조8000억원에서 올해 168조3000억원으로 무려 36조원 가량 증가했다. 내년에는 29조6000억원이 증가한 197조9000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반면 금융성 채무 증가 규모는 12조4000억원 가량에 불과하다. 내년 순증 채무 41조1000억원 중 72%가 국민이 실질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적자성 채무인 것이다.
이로 인해 국가채무에 따른 이자도 지난해 8조4000억원에서 올해 10조2000억원을 거쳐 내년에 14조1000억원으로 급증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적자성채무 중 금융성채무 등을 제외한 순국가채무는 연평균 21조4000억원이 늘어나 참여정부 연평균 증가액(6조3000억원)의 3.4배에 달했다. 국가채무의 증가 속도 만큼이나 채무의 질 역시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셈이다.
오강현 한국은행 조사역은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한 대규모 국채 발행이 금리 상승을 초래해 경기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며 "만성화된 재정적자가 불안감을 고조시켜 소비보다 저축을 늘리고 이로 인해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