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이 새천년 첫해를 마감하는 12월에 당한 뼈아픈 일격으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신보다 재계순위가 한단계 뒤지는 SK에 추월될 위기에 빠진 아픔도 적지 않지만 그룹자체의 미래상이 격심하게 흔들리게 됐다는 점에서 당혹감이 더 크다.
LG는 당초 IMT-2000사업단인 LG글로콤과 전자, 텔레콤, 데이콤 등을 중심 축으로 해 무선통신 전문그룹으로 발전한다는 비젼을 갖고 있었다. 특히 텔레콤이 운영하는 PCS사업은 열세를 면치못하고 있는 만큼 IMT사업권 획득을 통해 현재 무선사업자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IMT사업자 탈락은 이같은 비전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있다. LG 관계자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크게 당황했다. LG 구조조정본부는 발표직후부터 연속 회의를 가지면서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지만 냉정을 잃은 상태에서 쉽사리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고 자위할 수도 있다. 그동안 IMT사업과 관련, 자금조달 능력을 의심받았는데 사업자 탈락으로 오히려 이같은 부담을 "타의"에 의해 벗게 돼 불행중 다행이 아니냐는 것이다.
또 비동기 장비기술을 SK, 한통에 팔 수 있게 된 점도 그나마 긍정적으로 볼 만하다. LG가 됐다면 나머지 비동기 사업자는 "경쟁사업자의 제품을 살수 없다"며 LG전자의 비동기장비를 구매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른바 "배타권"이 작용한다는 것인데 사업자 탈락으로 배타권에서 벗어나게 됐다.
하지만 이들 두가지 "불행중 다행"도 동기식 사업마저 포기한다고 가정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동기식 사업을 한다면 자금 부담을 그대로 유지하는 꼴이 되고 비동기 장비를 판매하는데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동기식 사업자라지만 크게 보면 SK나 한통과는 무선통신사업에 있어 똑같은 경쟁자일 뿐이다. 따라서 "배타권"이 발동돼 LG 장비를 팔기가 어려워진다.
LG가 동기식에 다시 도전한다는 것도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LG는 비동기 기술이 가장 우수하다고 자랑했는데 이번 심사과정에서는 오히려 기술부문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동안의 상황논리로 볼때 비동기 기술을 포기하고 다시 동기식 사업에 도전하는 것은 이중의 "논리 충돌"이 되는 셈이어서 향후 사업개시때 비동기사업자들의 집중 공격을 받을 것이 뻔하다.
이같은 처지를 종합해 보면 LG는 IMT-2000과 관련, 도전기회가 있는 동기식까지 완전하게 포기하는 것이 탈락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IMT사업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그룹의 미래인 무선통신 전문그룹으로 도약하는 길을 중단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때문에 LG의 "진짜고민"이 시작된다. LG의 한 관계자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을 맞았다"며 "지금으로선 동기식 사업을 포기하는 것을 비롯한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대안은 무선통신사업을 포기하면서 대신 컨텐츠사업 위주로 방향을 선회하는 것이 될 전망이다. 데이콤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각종 컨텐츠사업을 더욱 확대, 성장시키는 것으로 IMT사업 탈락의 아픔을 달래는 것이다. 이렇게 하자면 크게 두가지 걸림돌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
첫째는 노사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이콤에 대한 확실한 구조조정이다. 노사갈등의 해결은 물론이고, 시외전화사업 등 비수익사업을 전부 정리해야 한다. 대신 경쟁력있는 컨텐츠사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내실화하고 수익을 극대화해나가는 일이다. 여기에 오는 19일 위성방송사업자로 선정된다면 컨텐츠사업 강화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또 LG텔레콤에 대한 처리방향도 정해야 한다. LG텔레콤은 현재 이통통신 사업자중 가장 열위에 있고 열등한 지위를 단숨에 만회할 방법도 부재한 상태다. 내후년 IMT-2000사업이 시작되면 LG텔레콤의 지위는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다. LG텔레콤을 어떻게 끌고 갈지가 향후 초미의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무선통신사업, 컨텐츠사업이 아닌 새로운 승부사업을 찾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IMT사업권에 버금가면서 LG가 강점을 갖고 있는 새로운 사업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LG내부에서는 이번 탈락을 내실을 다지는 기회로 삼자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시장상황이 극히 불투명한 만큼 미래 성장성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룹의 안정성을 제고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동안 내부 역량을 키우는데 주력하다가 새로운 승부사업의 기회가 생길 경우 다시 도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LG가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