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문승관 기자] 정부가 지난 20일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전세 사기 대책을 내놨다. 상습적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나쁜 임대인’ 명단 공개를 추진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용은 기대치에 다소 미치지 못하지만 전세 사기 근절을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처음 내놨다는 데 대해선 매우 반길 만하다. 검·경도 구체적인 수사방침을 내놨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내년 1월24일까지 6개월간 전세 사기를 특별단속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세 사기와 같이 민생을 위협하는 범죄는 강력한 수사를 통해 일벌백계하겠다”며 엄정 대처를 주문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검찰도 이례적인 전세 사기 엄정 수사 방침 발표에 대해 “혹여 나쁜 생각을 품을 사람들을 위축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강력한 경고와 검·경의 수사방침 배경에는 최근 금리 인상으로 서민의 주거비 부담 증가와 부동산 가격 하락 가능성에 ‘무자본·갭투자’와 ‘깡통전세’ 사기 등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져서다. 연도별 전세 사기 단속현황을 봐도 2019년 107건·95명에서 2020년 97건·157명, 2021년 187건·243명으로 증가세다. 주택도시보증공사 집계에 따르면 지난 1~6월 발생한 전세금 반환보증 사고 건수는 1595건, 사고 금액은 3407억원에 달한다. 미반환 사고의 대부분은 보증금 3억원 이하로 나타나 서민층과 사회 초년생이 피해자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에서는 미분양 빌라를 자본 없이 사들인 후 전세보증금을 반환할 수 있는 것처럼 속여 51명에게 보증금 110억원을 가로챘다가 붙잡힌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빌라 수백 채를 갭투기로 사들여 임대한 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세 모녀 전세 사기’ 사건은 이 같은 전세 사기 범죄의 정점이었다.
지금처럼 보증금과 집값의 차이가 작아지는 임대차 환경은 전세 사기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보증금을 상습적으로 돌려주지 않는 임대인의 명단 공개도 검토한다는 내용은 어찌 됐든 현 임대차 환경에선 새로운 방안이다. 다만 법을 바꿔야 하는데 ‘거대 야당’의 벽을 넘을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보증금 상습 미 반환자 명단 공개 방안은 이미 국회에 계류 중인 ‘민간임대법 개정안’에 포함돼 있다. 지난해 ‘세 모녀 사건’ 후 발의됐지만 계속된 국회 파행 등으로 처리가 미뤄져 왔다. 관련 법안 마련과 처리에 속도를 내야 하는 현 시점에서 민생에 여야가 없다는 적극적인 입법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전세금을 둘러싼 범죄는 일반적인 사기 사건과는 매우 다르다. 피해자가 대부분 서민이고 2030 청년세대다. 전세금은 그들의 삶의 밑천이자 전 재산이다. 이를 훼손하고 가로채는 짓은 한 가정과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리고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악랄한 범죄다. 윤 대통령이 일벌백계를 언급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공권력은 국민과 서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가 검·경을 투입한다는 소식은 다시 한번 반길만하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대책으로 끝나선 안 된다. 이참에 정부와 국회는 전세 사기 대책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국민에게 강하게 보여야 한다. 더는 ‘말의 성찬’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