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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사장의 性이야기](20)장난감이지만 장난 아닌 사업, 섹스토이

채상우 기자I 2016.04.15 10:23:47

美 라스베가스 ''국제 란제리 쇼'' 르포

[최정윤·곽유라 프레져랩 공동대표] “전 딜도(삽입형 섹스토이)가 ‘그냥 마법처럼 존재한다’고 느꼈지 실제로 누가 만든다고는 생각 못 했어요.”(윌 포테)

“아니, 그게 버섯처럼 숲 속에서 자라는 것도 아니잖아요.” (코난 오브라이언)

두 달 전 한국을 찾아 화제를 모았던 미국의 인기 코미디언 코난이 자신의 이름을 딴 토크쇼에 출연한 작가 겸 배우 윌 포테와 함께 나눈 대화다. 포테는 자신이 출연 중인 시트콤 촬영장 근처의 성인용품 공장을 견학했던 경험을 나누며 섹스토이 제조가 ‘진짜 비즈니스’라며 놀라워했다. 딜도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틀에 라텍스를 붓고, 누군가는 그걸 식히고, 다른 한 무리의 여성들은 거기에 핏줄을 그려 넣고 있더라’면서 말이다.

우리가 일상 속 사용하는 모든 물건처럼 섹스토이 역시 제품을 디자인하고 제작해 판매하는 이들이 있는 ‘진짜 비즈니스’다. 아니, 전 세계적으로 거래 규모가 17조 원이 넘는 거대 산업이다. 그렇지만 막상 ‘성인용품’ 하면 한 번에 떠오르는 대표적인 브랜드가 없기에 그 제조와 유통 과정은 상상하기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그런 물건’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을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시선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섹스토이의 브랜드화와 대중화를 고민한다. 그리고 지난 주말,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 뜨는 브랜드와 신제품을 접하고 견문을 넓히기에 성인물품 박람회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사흘간 열리는 ‘국제 란제리 쇼’에선 평소 눈여겨봤던 섹스토이 제조업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성인용품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나이키’나 ‘코카콜라’에 견줄만한 압도적인 인지도를 가진 섹스토이 브랜드는 아직 없다. 그렇지만 수십 년에 걸쳐 섹스에 대한 인식 개선과 문화의 발전, 그리고 끊임없는 기기의 진화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덕분에 섹스토이 산업은 이제 당당한 생활용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트로잔 같은 유명 콘돔 브랜드들도 점점 섹스토이 제품군을 넓혀가고 있으며, 미국 전역의 드러그 스토어 체인에 납품하고 있다.

30도 안팎의 날씨, 모든 것이 번쩍이는 라스베이거스 시내 리오 호텔에서 열린 박람회는 활력이 넘쳤다. 이전에도 만났던 샌프란시스코의 섹스토이 스타트업 ‘크레이브(Crave)’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의기양양하게 전시하고 있었다. 이메일로만 소통했던 딜도 속옷 ‘스페어파츠(SpareParts)’ 관계자들은 이제야 자기들의 제품을 직접 보여줄 수 있어서 정말 신난다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미국 라스베가스 ‘국제 란제리쇼’에 참가한 곽유라 플레져랩 대표. 사진=플레져랩
물론 전시된 물건들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화려한 모델과 포토샵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제품도 많다. 그럴싸한 모양새와는 달리 정작 내장된 모터가 엉뚱한 쪽에 달린 바람에 사용자의 몸에 닿는 부분엔 아무 감흥이 없는 제품도 있고, 건전지를 교체하는 방식이 불편한 기기도 있고, 조작 버튼이 잘 안 눌러지는 토이도 있다. 결국 사용자에 대한 배려를 디테일에서 살리지 못하는 브랜드는 서서히 도태될 수밖에 없단 생각이 들었다.

역시 눈길을 끄는 제품은 역시 실용성과 창의성, 유머감각을 고루 녹여낸 제품, 나아가서는 맞춤 의상처럼 개개인의 개성과 체형, 필요에 맞출 수 있는 섹스토이였다. 각기 다른 속도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진동 패턴 역시 사용자의 리듬에 맞춰 조정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짧은 일정이지만 우리와 비슷한 철학을 가진 해외 업체들과 만나 유대를 맺으며 자신감도 더 생겼다. 섹스토이 산업은 미국에서도 오랫동안 음지에서 제대로 된 비즈니스 취급을 못 받았지만, 확신을 갖고 길을 일궈낸 이들 때문에 현재 많은 사람이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듯 세계의 어떤 나라에선 에로틱한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치고 그 결과물을 화려한 조명 밑에서 전시하는 한 편, 다른 한쪽에선 ‘외설적 기기’인 섹스토이를 터부시하거나 법으로 금하고 압수하기까지 한다. 결국 이 세상의 ‘기쁨 지도’를 넓히려면 섹스토이를 일상에 양념을 더하는 ‘즐거운 보조기’로 여기는 이들이 많아져야 할 터. 이를 위해 우리는 국내 성인용품 대중화에 더욱 집중할 생각이다. 설령 ‘그런 일’을 하는 괴짜 취급을 받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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