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숙현 기자] 오는 10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한국은행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올 들어 5달 연속 소비자 물가는 4%를 넘어선 데다 근원물가(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물가)마저 23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불편한 숫자들만 즐비하다.
한은은 “이미 예상했던 것”이라고 하지만 지난 4~5월 연속 금리 동결을 한 뒤끝이라 영 개운치 않다.
대외적으로는 유럽 재정문제와 미국 경기 회복 둔화 조짐, 일본 대지진 여파 등 대외 불확실성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대내적으로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가계부채에 저축은행 문제, 부진한 주택시장 등 금리 동결에 힘을 실어줄 변수들도 여전하다. 이달 금통위의 `설전`이 다시 한번 예고되는 지점이다.
◇ 근원물가 23개월만에 최고…수요압력 고조
1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대비 4.1% 올랐다. 5개월 연속 4%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소비자물가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수요 압력과 기대 인플레이션을 반영하는 근원물가가 3.5%나 오르면서 23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월대비 0.5% 오른 근원물가는 7개월 연속 상승 중이다.
한은은 올해 근원물가를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3.1%, 3.6% 상승하면서 연 3.3%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울러 4분기 중 소비자물가와 근원물가의 역전현상이 일어날 것이라 게 한은의 전망이다.
한은 한 관계자는 “지난 4월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예상했던 추세로 가고 있다”고 말하고, 6월 물가 전망에 대해서는 “유가 움직임에 따라 6월 물가가 (4%대 이하로 내려갈 지 여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 두 달 쉬어간 금리, 이달엔 인상(?)
물가를 올리는 요인은 공급·수요·기대인플레이션 등이다. 유가 등 원자재나 농산물 등이 공급측면에서 물가를 올리는 원인이라면, 이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수요 압력이나 기대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받는다.
금리 인상은 수요 측면의 물가 압력과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보다 직접적인 효과가 있다. 근원물가의 꾸준한 상승이 금통위 내 `매파`들에 명분이 될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이른바 `징검다리 인상의 룰`이 깨진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금리가 동결될 수 있다는 단서는 곳곳에서 목격된다.
추가 구제금융을 앞두고 있는 그리스 문제 등 유럽 재정위기, 일본 대지진 여파, 북아프리카·중동 정정불안 등 대외 불확실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경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31일 발표된 (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경제지표들을 보면, 제조업 경기는 둔화됐고 주택시장은 더블딥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5월 금통위가 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 언급했던 부분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통계청이 발표한 국내 `4월 광공업생산`도 일시적인 이유라고는 하지만 주춤한 모습을 보여, 국내 경기 회복세도 둔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 금통위 “설전” 이달에도 재현될 듯
결국 오는 10일 열리는 금통위는 다시 한 번 설전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어제 공개한 지난 4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일부 금통위원들은 물가 상승세를 잡기 위해 정책금리를 선제적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동결파`들은 세계 경제 둔화 가능성과 국내 건설경기 침체 등을 우려하며 정상화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선 안 된다고 맞섰다.
금리 인상을 주장한 한 금통위원은 "통화정책 운용의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며 "경제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경기신호가 약화되거나 경기국면이 바뀌는 상황에서 물가상승을 제어하지 못 한 채 금리인상을 멈춰야 하는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다른 위원은 "세계 경제 둔화 가능성이 커지고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는 등 대외여건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더욱 심화됐다"며 "(국내) 건설업계 침체도 저축은행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최근 가계빚이 800조원을 돌파한 가운데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우리나라 은행 산업의 불안요소로 가계부채를 지적했다. 거시불균형을 막기 위해서라도 금리 인상을 해야 한다는의견과, 금리 인상은 가계부담을 가중시켜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킨다는 반박도 다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