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투표소 맞아요”…광주·옥천 최고령 유권자 한 표 행사(종합)

문승관 기자I 2022.03.09 17:12:17

[20대 대통령 선거 투표소 이모저모]1903년·1904년생 할머니 투표
카페·식당·자동차영업소·유치원 등 이색투표소, 유권자 시선 이끌어
‘갓 쓰고 도포 입고 배타고 차 타고’…소중한 한 표 행사 발걸음 이어

[이데일리 문승관 이소현 이용성 이수빈 기자]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인 9일 광주 최고령 유권자 박명순(118) 할머니와 충북 옥천군 최고령 유권자인 이용금(118) 할머니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1903년생인 박명순 할머니와 1904년 이용금 할머니는 각각 가족의 손을 잡고 투표소를 찾았다. 이날 오전 딸과 함께 청산면 팔음산 마을회관에 마련된 2투표소를 찾은 이용금 할머니는 딸과 함께 지팡이를 짚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투표를 마쳤다.

충북 옥천군 최고령 유권자인 이용금(왼쪽·118) 할머니가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인 9일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사진=연합뉴스)
광주 최고령 유권자인 박명순(118)할머니가 북구 문흥1동 제1투표소에서 아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투표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아들 내외와 투표소를 찾은 박명순 할머니는 광주 북구 문흥1동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문흥동 제1투표소에서 휠체어를 타고 투표했다. 남편이 독립유공자인 박 할머니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모든 직접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박 할머니는 “몸이 아프면 못 오겠지만 다음 선거에도 꼭 올 것”이라며 6월 지방선거 투표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기도 했다.

아파트 주차장과 운동시설, 유치원, 어린이집 등 주민 접근성을 고려한 이색 투표소도 유권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서울 광진구 능동제3투표소는 기아자동차 전시장에 마련됐다. 내부에는 차량 2대가 전시돼 있고 입구 오른쪽 공간에 신분증 확인과 투표용지를 발부하는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전시장 내부에서는 기아 관계자가 양복을 입고 카운터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기도 했다. 자동차 전시장이기도 하고 투표장이기도 한 이곳에 방문한 유권자들은 투표하고 나가는 도중에 전시된 차를 둘러보기도 했다. 이날 투표소를 찾은 유대권(52)씨는 “영업장이니 관공서보다 방문하기 편하고 느껴지는 부담이 없어서 좋다”고 말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 9일 서울 광진구 기아 대리점에 마련된 능동제3투표소(사진=이수빈 기자)
서울 광진구 구의제2동 제4투표소는 동네 카페에 마련됐다. 카페 집기 등은 안쪽에 치우고 칸막이를 설치에 내부에서는 영업을 한창 하던 카페 분위기는 나지 않았지만 동네 주민은 친숙한 곳이라 방문하기 편하다고 평가했다. 자영업을 하는 양 모(31)씨는 “평소 자주 방문하던 카페인데 오늘은 투표소가 되니 오기 편하고 좋았다”며 “출근하는 길에 투표할 수 있어 방문했다”고 말했다.

지하주차장에 마련된 투표소도 있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제5투표소는 원향고시원 지하 1층 주차장 안에 기표소가 놓여 있고 주차장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 속에 유권자들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이곳은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낯선 투표장소였지만 동네 주민에게는 꽤 친숙한 곳이다. 60대 김 모 씨는 “여기가 옛날에는 진양탕이라고 목욕탕이었는데 동네 주민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며 “매번 이곳에서 투표해왔다”고 말했다.

유권자들이 9일 전주시 금상동 금상어린이집에 마련된 우아2동 제3투표소로 들어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전주시 우아2동 제3투표소는 금산어린이집에 마련됐다. 투표소에 들어서자 천장에는 노랑, 연두 등 색색의 풍선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자녀와 함께 온 한 학부모는 투표를 마치고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보였다. 이 모(37) 씨는 “선거일이 법정공휴일이다 보니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점심 먹고 곧바로 투표하러 왔는데 아이들이 놀이터를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미추홀구 주안 4동 제3투표소는 해물탕 음식점 1층 주차장에 마련됐다. 투표소가 식당 안에 있진 않지만 처음 본 사람들은 지나가며 “여기가 투표소가 맞냐”며 선관위 관계자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투표를 마친 윤 모(44)씨는 “평소 자주 방문했던 음식점이어서 오기 편했다”며 “부모님과 마음속에 정한 후보에게 투표를 했다”고 말했다.

탁구장에 마련된 투표소도 있었다. 인천시 미추홀구 주안 8동 제4투표소는 지하 1층 탁구장에 투표소가 마련됐다. 이곳은 아파트 입주민들이 사용한 탁구장이다. 투표장을 방문한 최 모(45)씨는 “최근 이 아파트에 이사 왔고, 주민들과 함께 이용한 탁구장이 투표소로 변해 놀랐다”며 “집 앞에 투표장이 설치돼 편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관공서가 아닌 이색적인 장소가 투표소로 지정된 것은 유권자들이 조금이라도 가깝고 편리하게 투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여파로 학교나 관공서가 투표장으로 제공하기를 꺼린 점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전국에 장난감대여점을 비롯해 웨딩홀, 쇼핑센터 등 이색 투표소가 마련됐다.

9일 오전 충남 논산 양지서당 유복엽 큰 훈장과 가족들이 연산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사진=뉴스1)
대청호 연안마을인 충북 옥천군 옥천읍 오대리 마을주민들은 배를 타고 옥천읍 2투표소인 죽향초등학교를 찾아 투표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9시 선착장에 도착한 뒤 다람쥐택시를 이용해 3㎞ 남짓 떨어진 죽향초 투표소로 향했다. 충남 논산에서는 갓을 쓰고 투표에 나선 양지서당 삼부자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유복엽 큰 훈장과 가족들은 이날 오전 9시40분 논산 연산초등학교 투표소를 찾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투표소가 설치되지 않은 흑산면 영산도와 장도 등 작은 섬 유권자들도 선박을 이용해 삼삼오오 모여 큰 섬으로 이동한 후 투표에 참여했다. 흑산면 상·중태도 주민은 인근 화태도로, 장도와 영산도 주민은 본도인 진리 투표소로 이동해 한 표를 행사했다.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경북 울진 이재민들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장을 찾았다. 경북선거관리위원회가 마련한 미니버스를 타고 투표소까지 온 이재민들은 산불에 집도 재산도 모두 불에 탔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투표는 해야한다며 한 표를 행사했다.

온양1리에 사는 이재민 김 모(79)씨는 “산불로 집도 재산도 신분증도 모두 불에 탔다”며 “면사무소에서 임시 신분증을 만들어줘서 투표장에 가져왔다”고 말했다. 김 씨는 “80이 다 된 나이에 이걸(임시 신분증) 들고 투표하긴 처음”이라며 “국민이라면 투표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인 9일 오전 경북 울진군 울진읍 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산불 이재민들이 투표소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고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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