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의원은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노무현 ‘변호사’를 처음 만난 건 1987년이다. 6월 항쟁 후 재야운동권의 정치세력화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1991년 통합민주당 노무현 ‘대변인’ 시절에는 부대변인, 1994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 노무현 ‘소장’ 시절엔 부소장이었다”며 “30년에 걸친 ‘정치인’ 노무현의 남 다른 점을 되돌아보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첫째, 그 분은 가치 추구를 포기하지 않는 정치인이었다”며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하나의 가치는 반드시 다른 가치와의 충돌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에서 가장 드문 게 가치의 추구”라고 언급했다. 이어 “지금 허구한 날 제1야당이 벌이는 공세도 가치관의 차이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가치관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반대’만 한다”며 “정치인 노무현은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가치를 놓고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였다”고 추억했다.
김 의원은 이어 “둘째, 싸움을 피하지 않았던 정치인이었다”며 “정치인 노무현은 싸우지 않고는 공존으로 넘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싸울 때도 항상 가치 실현을 위해 싸웠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것이 ‘시대의 막내론’”이라며 “노무현이 싸울 때, 그는 질풍노도였다. 저도 그 바람 한 줄기 되고 싶어서 대구로 내려왔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김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을 “정치의 허무함을 체득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퇴임한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자들에 대해 저는 여전히 분노한다”며 “당시 그 분이 하려던 건 ‘현실정치’가 아니다. ‘정치운동’이었다. 권력을 다투는 현실정치의 한계에 지친 나머지, 정치의 공급자가 아니라 수요자들로부터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깨어있는 시민’으로 귀결했고, 정책을 기반으로 한 새 정치를 구축하려 했다. 그런데 정권은 죽음으로 몰아갔다”며 “어찌 보면 당시 정권은 보복이 아니라 화근을 미리 제거하려 한 듯하다. 새로운 시대의 출현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다”고 질타했다.
김 의원은 “첫째 이유 때문에 존경했고, 둘째 이유 때문에 따랐고, 셋째 이유 때문에 저는 노무현을 사랑한다”며 “특히 세 번째, 당대 정치의 무망함을 알고 새로운 정치의 씨앗을 뿌리려했던 그 정신을 저는 잇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 ‘새로운 노무현’이라는 슬로건도 그런 뜻으로 새긴다”며 “‘정치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사실은 ‘낡은 정치하지 마라’는 말이었다. 봉하에서 뵙고 다시 여쭈어보겠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