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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히토, 역대 2번째 고령으로 즉위…레이와 시대 개막
나루히토(59)는 이날 오전 10시30분 일왕 거처인 도쿄 지요다구 고쿄에서 제126대 일왕 즉위식을 가졌다. 역대 두 번째로 많은 나이에 일왕에 오른 나루히토는 앞으로 부친이 확립한 ‘상징적’ 일왕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행사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비롯해 26명의 정부 각료들과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국민 대표로 참석했다. 마사코 왕비는 왕실 규범에 따라 참석하지 않았다. 여성 최초로 가타야마 사쓰키 지방창생상이 자리를 함께 해 주목을 받았다.
나루히토는 아버지 아키히토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으면서, 역대 일왕에게 전해지는 세 가지 보물(삼종 신기)인 △청동검·청동거울 △곡옥(굽은 구슬) △옥새·국새를 넘겨받았다. 오전 11시 10분부터는 나루히토 새 일왕이 즉위 후 처음으로 국민 앞에 서는 조현의식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마사코 왕비도 참석했다.
나루히토는 “헌법에 따라 일본 국가 및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서약한다.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 그리고 세계평화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앞서 부친인 아키히토가 지난 1989년 1월 9일 즉위 직후 “여러분과 함께 헌법을 지키고 평화와 복지 증진을 희망한다”며,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현행 일본 헌법에 대해 강력한 수호 의지를 내비친 것과는 다소 차이를 보였다.
아베 총리는 “일왕을 국가 및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바라보며 격동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평화롭고 희망이 넘치는 자랑스러운 일본의 밝은 미래,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문화가 태어나고 자라는 시대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나루히토는 오는 4일 일반 국민들의 축하를 받는 참하 행사에서 즉위 후 첫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전망이다. 오는 27일에는 아베 총리의 초청으로 일본을 국빈 방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난다. 즉위 후 처음으로 만나는 해외 정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나루히토에게 “미국 국민을 대표해 축하한다. 레이와 시대에 발맞춰 미국과 일본의 우호를 새롭게 하고 싶다”며 축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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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의 관심은 첫 대국민 담화다. 일제 침략 전쟁 등 과거사에 대해 어떤 견해를 드러낼 것인지, 아키히토와 ‘불편한’ 관계였던 아베 총리와는 어떤 관계를 구축해 나갈 것인지 주목된다.
나루히토에게 항상 따라 붙는 수식어는 ‘전후 세대 첫 일왕’이다. 그러나 정치성향은 알려지지 않았다. 나랏일과 관련된 모든 행위에 내각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헌법 조항 때문에 대외 발언에 제약을 받고 있어서다.
현재까지는 아버지 아키히토와 같은 시각을 갖고 있다고 알려졌다. 그는 지난 2015년 만 55세 생일 기자회견에서 “나는 전후 세대로 전쟁을 체험하진 않았다. 전쟁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는 오늘날 과거를 겸허하게 되돌아보고 전쟁을 겪은 세대부터 전쟁을 모르는 세대까지, 전쟁의 참상과 일본이 걸어온 역사를 정확하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일본은 전후 일본헌법을 기초로 쌓아올렸고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고 있다. 앞으로도 헌법을 수호하는 입장에 서서 필요한 조언을 얻으며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의 전쟁 가능한 개헌에 우회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한편 전날에는 나루히토 즉위식이 열린 곳에서 아키히토 일왕이 퇴위식을 가졌다. 아키히토는 퇴위사에서 “오늘로써 황제의 임무를 마치게 됐다. 즉위 30년간 국민에게 깊은 신뢰와 존경을 얻은 것은 참 행복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를 상징으로 받아들여준 국민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시대가 평화롭고 생산적이길 바란다. 일본과 세계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한다”고 강조했다.
아키히토의 퇴위식과 더불어 잃어버린 20년, 동일본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 옴진리교 사건 등 다사다난했던 30년 4개월의 헤이세이 시대도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