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금융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법률(제53조 제2항 제1호)에 따르면 ‘이미 법원에 제소된 사건이거나 분쟁조정을 신청한 후 소송을 제기한 경우’에 대해서는 금감원이 합의권고를 하지 않거나 조정위원회에 회부하지 않을 수 있다. 실무적으로도 이 경우 금감원은 분쟁조정절차를 종결처리 하고 있다.
물론 금감원의 조정위원회는 보험사와 금융소비자 간의 분쟁을 해결할 유일한 기구가 아니다. 보험사 역시 자신의 선택에 따라 금감원의 분쟁조정절차가 아닌 소송을 통해 금융소비자와의 분쟁을 해결할 권리가 있다. 금융소비자로서는 금감원의 분쟁조정절차를 통해 보험사와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에 비해 소송이 여러모로 불리하다는 점이다.
우선 금융소비자는 전문성 측면에서 보험사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가령 보험사가 금융소비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취지의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할 경우 이론상으로는 입증책임의 문제가 일도양단으로 분명히 나눠질 수 있다.
실무에서는 소송을 제기한 보험사나 소송을 당한 금융소비자 모두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입증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금융소비자가 충분한 자력이 있어 전문변호사 등 전문가 도움을 받는다면 모를까. 만약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한다면 혹은 소송을 통해 보험사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는 보험금에 비해 변호사 비용이 더 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때 금융소비자는 법률적으로 충분한 대응을 하지도 못하고 소송을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금융소비자가 보험사에 승소하더라도 보험사가 항소와 상고까지 따라 붙어 금융소비자를 괴롭히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맷집 좋은 금융소비자도 불리한 조건에 보험사와 합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보험사가 보험소비자를 상대로 ‘보험사기’ 고발을 남발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개중에는 보험금 편취를 위해 악의적으로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금 청구를 하는 금융소비자도 있겠으나 ‘보험사가 보험사기를 만든다’는 말이 나올 만큼 일부 보험사의 경우 선량한 금융소비자들까지 보험사기로 내몰고 있다.
이 경우 수사선상에 오른 금융소비자는 보험사로부터 받아간 보험금을 보험사에 내어놓지 않으면 인신이 구속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지레 보험사의 요구에 따라 불리한 조건에 합의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다. 특히 지난 2016년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이 제정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보험사기를 엄벌에 처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압박이 더 커졌다.
보험계약은 우연한 사고에 기초해 보험금이 지급되는 전형적인 ‘사행계약’으로 만약 소비자의 정직이 담보되지 않으면 그 자체로 도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보험계약은 ‘단체’라는 이름으로 소비자 개인에 대한 폭력을 자행하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둘 사이의 이익교량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험사기 근절도 중요하지만 소송을 통한 보험사의 횡포를 막을 근본적인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때다.
☞조태진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39기 △법무부 공익법무관 △서울지방변호사회 이사 △대한변호사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