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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코넥스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컸던 의료용 피부미용기기 개발업체 하이로닉은 코스닥 시장으로 옮긴 후 연일 주가가 올랐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코넥스 종목에 대한 투자 열기를 끌어올린 주역이다.
하이로닉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이 대표의 성공 스토리로 이어졌다. 업계 1위 영업맨 출신이라는 그의 이력은 취업 난 속에서도 영업직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는 청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무직 ‘이 대리’ 영업맨으로 진로 변경…끊임없는 영업 노하우 개발이 이끈 성공
그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3년간 이미지 영상 수입업체서 사무직으로 일했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결혼해 반지하 전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아이가 생기면서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다.
이 대표는 “어느 날 문득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면서 “서점으로 달려가 성공한 사람의 자서전을 눈에 보이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았다. 자신감은 물론이고 계획한 즉시 실행에 옮기는 실천력도 있었다. 김 대표는 인생 계획을 다시 세웠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영업맨으로 변신한 계기다.
이 대표는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불타 올랐다”면서도 “자신감이 좌절감으로 바뀌는데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3년간 컴퓨터 앞에서 타자만 두드렸던 그에게 영업직의 세계는 그야말로 총도 들지 않은 채 뛰어든 전쟁터와 같았다. 도와줄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없었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특히 영업 잘하는 선배들을 눈여겨봤다. 선배에게서 한가지 특이점을 발견했다. 선배는 사무실을 들어가 사장실이 있는 곳까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진했다.
이 대표는 “영업맨 대다수는 사무실에 들어가면 가장 문 앞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기소개하고, 사장님이 계신지 물어본다”면서 “영업맨은 귀찮은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쫓겨나는 것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아울러 “당시 보안시스템을 팔았는데 사장은 보안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일단 얼굴을 마주하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었다”며 “사장실까지 자연스럽게 진입하는 것이 노하우였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터득하면서 업계 1위 영업맨 자리에 올라섰다. 그는 물건을 살 사람이 상황 분석은 물론이고 경쟁자보다 빨리 수요대상을 찾기 위한 궁리를 끊임없이 했다.
책상 위에 놓인 수첩을 들어 올리면서 “이것 역시 성공의 비결”이라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와 계획을 항상 메모했다”고 귀띔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10년 이상 장기 계획을 세우고, 매일 읽고 되새겼다. 아이디어가 생각에만 그치지 않도록 노력한 덕분에 시가총액 3000억 원이 넘는 하이로닉을 만들 수 있었다.
◇“이젠 직접 만들어 팔겠다”…영업맨 절정기 돌연 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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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아이템을 고민하던 이 대표의 눈에 미용 의료기기가 들어 왔다. 이 대표는 “당시 선진국 특히 일본에서 피부관리가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면서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3~5년 늦다는 걸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곧 유행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과거 미용의료기기 수입원에서 영업직으로 일했던 경험도 있었기에 이 대표는 사업 성공에 대해 확신을 하고 2006년 11월 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가 하이로닉의 모태 ‘BSP메디칼’ 이다. 기존 외산제품보다 성능은 우수하고 가격은 저렴한 제품을 만들어 국산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한국인 체질에 적합한 병원용 미용의료기기를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 첫번째 개발한 제품은 피부 리프팅 기기 ‘더블로(doublo)’다. 더블로를 출시한 뒤로 기능을 꾸준히 개선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대표는 “제품 개발에 성공한 후에는 영업으로 승부를 걸었다”면서 “잘하던 분야였고 직접 만든 제품이다 보니 더욱 확신이 있었기에 다른 판매제품보다 수월하게 영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더블로를 시작으로 하이로닉 제품이 피부과 의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하이로닉은 외산 100%였던 국내 피부미용 시장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이 대표는 “외국의 유행 흐름을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나라에 들여와 한국인 입맛에 맞게 바꿔 팔 제품이 눈에 들어온다”면서 “사업 아이템 선정에 애를 먹고 있다면 선진국 트렌드를 살펴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 사업 초기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실적 악화…어려움 속 ‘댐식 경영법’ 배워
사업 초기엔 매크로 변수보다 기업 내부 재무상황에 집중하면서 벌어들이는 돈을 신제품 개발에 모두 쏟아 부었다. 국내 피부미용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하이로닉도 빠르게 성장했지만, 대외환경 악화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탓에 하이로닉의 위기가 찾아왔다. 이 대표는 지금도 힘들 때면 2008년 사업 초기 찾아온 리먼 브러더스 사태를 회상한다.
그는 “한 달에 5000만원씩 3개월 동안 손실이 나는데 할 수 있는 게 베란다에서 깜깜한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 피우는 일밖에 없었다”면서 “무엇보다 사업이 커져 딸린 식구가 많다는 것 때문에 중압감이 컸다”고 토로했다.
다행히 악화했던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매출이 다시 늘었고, 시장 요구에 맞는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면서 실적도 정상화됐다.
이 대표는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이지만 덕분에 사업하는데 큰 철칙이 생겼다”면서 “최소 6개월 이상 매출이 전혀 나오지 않아도 회사를 운영해 나갈 수 있는 자금을 항상 쌓아둬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덕분에 현재 하이로닉은 400억원 가량의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계획과 도전은 계속된다…“2020년 매출 1조 기업 만들 것”
이 대표는 회사 비전을 묻는 말에 “2020년 매출 1조원의 회사를 만드는 것이 중기 계획”이라면서 “지난해 전년 대비 70% 성장하는 등 지금까지 진행사항을 봤을 때는 실현 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의료용 미용기기 시장을 공략한 하이로닉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현재 하이로닉은 약 6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지난해 말 기준 매출액의 46%에 달하는 105억 원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이 대표는 “특히 중동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 공략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면서 “중동지역은 예상과 달리 피부미용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진출과 관련해선 “중국식약청(CFDA)에 신청을 해 놓은 상태”라면서 “허가절차가 까다로워 이른 시일 내에 결과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현재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홍콩시장을 전초기지로 삼으면 충분히 중국시장으로의 성공적 진출도 가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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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생으로 1998년 서일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미용의료기기 회사에서 3년간 근무했다. 이후 영업직으로 전환 해 업계 1위 영업맨 자리까지 오른 이후 2006년 11월 BSP메디칼을 설립했다. 2007년 회사명을 하이로닉으로 변경했고, 2011년 무역의 날 지식경제부장관상 및 2014년 성남시 중소기업인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