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앞다퉈 투자에 나섰던 해외 부동산이 폭락하면서 이로 인한 문제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이들 중 상당수가 ‘업계 관행’이라는 명목 하에 손실을 제때 장부에 기록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부실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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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한 자산에 손실이 나더라도 취득가액으로 장부 상에 기록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자본시장법 상 해외 대체투자 자산 평가시 △취득가격 △거래가격(시장가격) △채권평가사·회계법인 등이 평가해 제공한 가격 등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기 때문이다.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약 6년 전 후순위 대출채권을 매입한 미국 소재 A 오피스가 대표적이다. 이 오피스는 1년 넘게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가 지속되며 최종 손실이 유력하지만 손익 평가는 미뤄지고 있다. 오피스 투자를 끌어온 B 운용사는 운용 보고서에 장부가 보고를 유지했고, 기관투자자들은 이를 그대로 채택했다. 국내 공정가치평가 규정상 취득가격 채택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해 손실 반영 및 충당금 적립을 최대한 미룬 셈이다. 이밖에 기한이익상실(EOD)이 났음에도 손실 현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해외 부동산 가치가 폭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제대로 장부에 반영하지 않으면 부실 자산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측면에서 추후 더 큰 문제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작년 상반기 기준 주요 공제회 전체 자산 대비 해외 부동산 등 대체자산 비중은 절반이 넘는 71%에 이른다.
국민연금과 사학연금 등은 대체투자자산 공정가치평가 지침을 통해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주로 사용하는 방법을 우선 적용’이라는 원칙을 두고 시장성이 있는 경우 시장가격, 시장성이 없는 경우 거래가격, 기타 순으로 평가 우선순위를 못박아뒀다. 이 경우 손실 자산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따라서 금융당국이나 각 공제회를 담당하는 부처 등에서 대체 투자자산에 대한 가치 평가를 할 때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정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위험관리 측면에서 공정가치평가를 제대로 할 필요는 있다”면서 “내부적으로 공정가치평가 시스템을 갖추고 평가하는 것이 어려운 기술은 아닌만큼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출 필요성은 충분히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