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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대학 시간강사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안, 이른바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들이 추진하고 있는 강좌 수 축소와 그에 따른 강사 해고가 대학 강의의 질(質)을 낮추고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교육부가 늘어나는 인건비를 각 대학에 일정 부분 지원해주는 대신 법 집행을 보다 엄격히 함으로써 대학들이 강사법 취지에 따를 수 있도록 유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게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가 제시하는 해법이다.
서울대 지리교육학과 교수인 박배균 민교협 상임 공동의장은 10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강사법 시행으로 인해 각 대학들이 지금보다 더 부담해야 하는 인건비 부담은 적게는 1억~2억원, 많아야 3억~5억원을 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대학들이 강사 수를 줄이겠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최근 현실화하고 있는 강사 대량 해고 사태와 관련, 그는 “대학들은 강사에 큰 비용을 쓰는 걸 꺼려왔고 기회만 있으면 정교수들의 강의시간을 늘리고 강의를 대형화하고자 했다”며 “때마침 도입되는 강사법을 핑계로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강의를 대형화하려는 움직임은 일부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이런 대학들도 교수진의 80~90%는 정교수로 채용하고 최대한 1주일에 1~2과목만 강의를 맡기려고 노력하는데 우리 대학들은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강사를 줄이는 대신 정교수에게 15학점씩 강의를 맡기려는 대학들이 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일주일에 5과목을 강의해야 한다”며 “최근에는 중고등학교 교사도 1주일에 5과목밖에 맡지 않고 있는데 내용도 다르고 수준도 높은 대학 강의를 이렇게 맡는다면 곧바로 학생들이 받는 강의의 질이 떨어지는 등 수업권 침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며 정부 지원금까지 받는 대학들도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심각한 일”이라며 “그럴려면 정부 지원을 포기하고 아예 교육특화대학으로 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사법 시행 부담으로 대학들은 강사를 해고하기 시작했고 생존권에 위협을 느낀 강사들은 교육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박 의장은 “의의로 해법은 간단하다”고 전제한 뒤 “대학들이 강사법 취지를 준수할 수 있도록 교육부가 적극 나서야 하며 필요하다면 대학 평가나 재정 지원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반값등록금 정책 등으로 인해 등록금을 인상하지 못하다보니 재정이 취약한 대학들이 꽤 많고 대형 사립대 일부를 빼곤 재단 상황도 대체로 열악하다”고 인정했다. 그런 만큼 교육부가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을 일정부분 지원하되 대학도 공공성과 공익성을 가진 만큼 일부 재정부담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내 강사 처우 개선에 대한 컨센서스를 모은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의장은 “정교수들 사이에서 강사법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한 경우가 있는데 강사 처우 개선이 길게 보면 제자를 더 키울 수 있고 학문 생태계를 활성화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정교수들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다”며 이를 대학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상황 변화에 대해 박 의장은 “강사법 시행령에 대해 각 대학들이 어떤 대응을 할지가 관건”이라며 “조만간 나올 거점 국립대들과 대형 사립대들이 정부 정책에 순응하는 쪽으로 간다면 제도는 안착되는 쪽으로 가겠지만 반대로 그런 학교들이 수용을 못한다면 싸움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박 의장도 정부 압박으로 인해 법정 인상률 만큼도 등록금을 올리지 못하게 돼 취약해질대로 취약해진 대학 재정상황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면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몇몇 대형 사립대를 제외하고는 재정도 취약하고 재단 사정도 열악한 대학들이 많다”며 “실제 국내 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금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낮은 게 사실인 만큼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해 사립대나 국립대 모두 정부 지원하도록 근거를 만들어 지원금을 늘리되 재무제표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감사하도록 하는 준(準)공영화의 길을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사학재단들도 이 법에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정부 감시를 받는 부분을 꺼려하고 있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이제 본격 논의를 시작해야할 때”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