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국제부] `펜은 조이스틱 만큼 강하다?`
컴퓨터 게임 때문에 사람들이 점점 책을 멀리 하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컴퓨터 게임 덕분에 오히려 재미를 보는 서적도 있다. 날로 복잡해지는 컴퓨터 게임을 잘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임 매뉴얼이 바로 그런 책이다.
물론 게임 매뉴얼을 제대로 된 책으로 여기는 사람도 별로 없고, 게임 매뉴얼을 잘 써서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한다. 하지만 미국에선 이미 게임 매뉴얼로 남부럽지 않은 베스트 셀러를 내놓는 전문 작가들이 자리를 잡고 있을 정도다.
게임 매뉴얼 전문작가인 데이비드 호즈슨은 프리마게임스와 출판 계약을 맺고 1년에 8종의 게임 매뉴얼을 쓰고 있다. 그는 그동안 55종의 게임 매뉴얼을 써서 모두 1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특히 인기 게임인 그랜드 쎄프트 오토(Grand Theft Auto:San Andreas)의 게임 매뉴얼은 2004년 출간후 지금까지 무려 74만8000부나 팔려 밀리언 셀러에 육박하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인 NPD그룹에 따르면 게임 매뉴얼은 지난 2004년 9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그 규모가 6700만 달러로 줄었지만 이는 전통적으로 차세대 게임기의 등장에 따른 과도기적 현상으로 여겨진다. 뉴욕타임스(NYT)는 출판업계가 차세대 게임기의 보급이 확산되면 앞으로 게임 매뉴얼의 판매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미국의 게임 매뉴얼 출판업을 양분하고 있는 회사는 유명 출판사인 랜덤 하우스 소속의 프리마게임스와 리어슨의 자회사인 브래디게임스다. 시장은 성장하고 있지만 이들에게도 경쟁상대가 있다.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무료 가이드와 온라인 사이트들이다. 일례로 PC 매거진의 발행인인 집 데이비스가 이달에 게임 방법을 알려주는 무료 게임 웹사이트를 개설해 운영에 나설 계획이기도 하다.
브래디게임스의 마케팅 이사인 스티브 에스칼란테는 "웹에는 무료로 제공되는 콘텐트가 많으며 이들과 수년 동안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게임 매뉴얼 출판사들은 이에 대응해 아예 게임제작업체로부터 도움을 받는 대가로 인세의 일부를 지불하는 방식의 제휴관계를 맺고 보다 깊이 있는 매뉴얼을 출간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게임 매뉴얼이 별도의 출판시장을 형성하게 된 것은 최근의 컴퓨터 게임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정교해져 게임을 하는 데도 별도의 전략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최근의 게임이 복잡해졌는지는 게임 매뉴얼의 두께만 봐도 알 수 있다.
프리마 게임스의 데브라 켐커 사장은 콘솔 게임을 위한 매뉴얼이 2002년에는 평균 128페이지 분량이었지만 현재는 176페이지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호즈슨이 쓴 `대부(Godfather)` 게임의 매뉴얼은 소설 2권 분량에 달하는 17만5000단어에 이른다. 심지어 게임작가들도 게임이 너무 복잡해져서 게임 설계자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게임을 정복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게임 매뉴얼이 전략 가이드가 아니라 `고득점`을 올리는 편법만 가르쳐 줘 게임의 묘미를 해친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하지만 복잡한 게임을 즐기면서도 정작 그 복잡함을 이겨낼 참을성이 부족한 이들이 늘어나면서 게임 매뉴얼이라는 신종 출판업은 성장을 거듭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