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한근태 칼럼니스트] 친구에게 아주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꽤 친했던 친구였지만 업종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다르다 보니 연락이 뜸했다. 보고 싶은 마음에 전화했는데 친구의 목소리는 차분하기 그지 없다.
매일 보는 사람의 전화를 받듯이 받는다. 반가움도 묻어나지 않고 아무 감정이 없는 그야말로 담담함 그 자체다. “무슨 일로 전화했니?”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나로 하여금 마치 무슨 청탁전화라도 걸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그저 오랜만에 옛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던 것인데 그의 그런 반응을 접하자 정나미가 떨어졌다. 대충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었는데 다시 그에게 전화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별 인연이 아니었던 사람에게 볼일이 있어 전화를 하게 되었다. 하도 오랜만에 하는 전화라 조심스러웠다. 혹시 나를 기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기억은 하더라도 사무적으로 나오면 어떻게 하나... 하지만 상대방이 반색을 하며 반가와 하자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어떻게 지내느냐, 간간이 소식을 듣기는 했다, 식사라도 하자... 용건을 얘기하자 그 정도는 자신이 해결할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얘기하며 친절하게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에 감동을 받았다. 친밀감이 느껴졌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게 만들고 또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돈이 많아서, 좋은 차를 갖게 되어서, 귀인을 만나게 되어서... 물론 그런 일도 하나의 요인이 되긴 하지만 그 보다는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행복과 불행이 비롯된다. 그와 같은 행불행은 큰 사안의 문제가 아니라 아주 미묘하고 작은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업무로 보내는 이메일도 따뜻한 말과 함께 첨부로 보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거두절미하고 아무 코멘트 없이 보내는 사람이 있다. 책상 위에 서류를 올려놓으면서도 포스트 잇으로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내용을 적어놓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누가 무슨 일 때문에 이 서류를 여기다 올려놨는지 모르게 하는 사람도 있다. 할 수 없이 사무실에서 큰 소리로 “누가 여기다 서류를 올려놨어요? 내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라고 확인을 해야만 비로소 얘기를 해 주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갖고 있어도 그것이 태도가 나쁘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사실 좋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나쁜 태도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좋은 생각을 좋은 태도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 생각은 태도라는 매개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야 한다,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이런 생각은 태도를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또 자신이 보인 태도대로 대가를 받게 되는 것이 사람의 삶이다. 업무로 하는 전화 한 통에서도, 늘 주고받는 e메일 한 통에서, 백화점 문을 열고 닫고 전철을 타고 내리는 그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에서 우리는 세상과 상대방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태도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