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행위 자체는 인정됐지만 과징금의 기초가 되는 매입액이나 정상가격 등을 잘못 산정하면서다. 조사와 심의, 소송을 거쳐 확정한 제재를 처음부터 다시 계산해야 하는 만큼 과징금 산정의 정확성과 제재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법 행위는 인정됐지만, 과징금은 다시 계산해야
8일 관계부처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공정위가 올해 1~7월까지 법원의 과징금 취소 판결 등에 따라 기업에 환급한 과징금은 총 107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최종 환급이 확정된 금액은 161억원이고 나머지 909억원은 판결 취지에 따라 과징금을 다시 계산하는 재산정 대상 금액이다.
재산정 대상액인 909억원은 ‘현대제철 철스크랩 구매가격 담합’ 사건 한 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공정위는 2021년 현대제철을 비롯한 7개 제강사가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철스크랩 구매 기준가격의 변동폭과 시기를 담합했다며 현대제철에 909억 5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현대제철은 곧장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담합 행위 자체는 인정했지만 과징금 산정에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과징금 전액을 취소했다.
문제가 된 것은 과징금 산정의 기초가 된 매입액 자료다. 법원은 공정위가 일부 매출액 항목이 중첩된, 정정 전 자료를 토대로 과징금을 산정하면서 중복 금액은 물론 담합과 무관한 금액까지 기준 금액에 포함했다고 판단했다. 현대제철이 오류를 바로잡은 정정 자료를 다시 제출했지만, 공정위가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과징금을 산정한 셈이다.
결국 담합행위라는 공정위의 핵심 판단은 살아남았지만 900억원대 과징금은 다시 계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공정위는 현재 법원 판결을 토대로 현대제철에 대한 과징금 재산정 절차를 밟고 있다.
SPC그룹 부당지원 사건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 공정위는 2020년 SPC 계열사들이 SPC삼립을 부당하게 지원했다며 계열사들에 총 64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공정위가 문제 삼은 일부 밀가루 거래의 부당지원 행위는 인정하면서도 과징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밀가루의 ‘정상가격’을 잘못 계산했다며 647억원의 과징금을 전액 취소했다. 정상가격은 특수관계가 없는 독립된 사업자끼리 정상적으로 거래했다면 형성됐을 것으로 보는 가격으로, 부당지원 여부와 지원 규모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대법원도 2024년 6월 이 같은 판단을 확정하면서, 공정위가 과징금 재산정 절차에 들어갔지만 2년이 넘도록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밀가루의 정상가격과 지원금액 등 산정의 기초를 사실상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과징금 재산정 및 재부과 과정이 길어지고 있다”며 “연내에는 작업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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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징금 재산정이 반복되는 배경에는 공정위 과징금 특유의 복잡한 산정 구조가 있다. 어떤 거래를 위법행위와 관련된 매출·매입으로 볼 것인지, 정상적인 시장가격을 얼마로 볼 것인지에 따라 최종 과징금이 크게 달라진다. 특히 현대제철 사건처럼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자료 자체가 잘못 적용되면 위법행위를 입증하고도 과징금 산정의 전문성에 대한 신뢰가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제는 공정위가 스스로 법 집행에 대한 평가를 해봐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며 “무리하게 제재한 결과 법원에서 다시 뒤집히면 조사와 심의, 소송을 거쳐 다시 처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행정력 또한 낭비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도 법 집행의 정교성을 높이기 위해 경제분석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경제분석 조직은 개별 사건의 경제분석 지원뿐 아니라 경쟁제한 효과 분석, 경제분석 기법 개발 등을 담당하고 있다. 공정위는 조직 개편을 통해 경제분석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버금가는 수준의 경제분석 역량을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