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위기 대학 총여학생회는 부활할 수 있을까?

박서윤 기자I 2021.08.08 22:00:38

대학 총여학생회 소멸 수순
총여 폐지 후 대안기구 지지부진
성평등 대안기구 ''자치권'' 필요

경희대 총여학생회가 결국 폐지 수순을 밟는다. 지난달 16일과 22일, 경희대학교 총학생회 주최 아래 두차례 진행된 ’총여학생회 존폐 및 재편‘ 간담회에서 총여학생 폐지를 결정했다.

수년째 지속된 집행부 공석 상태로 인해 앞으로도 실질적인 활동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경희대 총여학생회는 2017년을 마지막으로 4년째 집행부를 구성하지 못했다.

경희대 마저 문을 닫으면 서울권 대학중 총여학생회가 남아 있는 곳은 한양대, 총신대, 감리신학대, 한신대 4 곳뿐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모두 집행부를 구성하지 못해 이름만 남아 있는 상태다.

(사진=연합뉴스)


폐지 결정을 내린 경희대에서도 총여학생회의 존재가치가 아예 부정당한 것은 아니다.

경희대 총학생회측은 간담회에서 "총여학생회 해산에는 동의하지만, 이것이 학내에서 성폭력의 위험이 사라지거나 완전한 성평등이 이뤄졌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며 "총여학생회가 해산된 이후 대학사회에서의 차별과 혐오, 폭력에 맞설 대안 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총여학생회를 향한 억압

“총여학생회는 대학 내 여학생의 존재가 가시화되면서 설립됐고, 설립 이후 대학 내 반성폭력 운동에 앞장서 왔습니다. 총여학생회의 존재는 곧 대학 사회 내 성평등 및 반성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의 증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김종은 포항공대 제33대 총여학생회장 김종은씨는 총여학생회의 존재 의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포항공대는 총여학생회가 명맥을 유지하는 마지막 대학 중 하나이다.

회장단을 포함해 단 5명이 운영하는 포항공대 총여학생회 역시 몇 차례에 이은 궐위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학내 성평등 문화 확대를 위한 사업들이 번번히 제동이 걸리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일례로 지난 6월 디저털 성범죄 방지를 위해 반성폭력 활동가 하예나 디지털 성범죄 아웃 대표를 초청했지만 일부 학생들의 반발로 강연을 취소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 대표의 학내 강연 일정이 공개되자 포항공대 재학생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남성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잇따라 강연 저지와 총여학생회 폐지를 요구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일었다.

김 여학생회장은 "하예나님의 강연은 교내 토론 게시판과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서 일부 학생들이 반대한 탓에 비상대책위원회를 거쳐 결국 연기 결정이 내려졌다"라고 전했다.

총여 폐지 후 시작도 못하는 대안기구

“총여학생회 폐지 이후 학내에 있던 여성주의 자치기구나 동이리가 위협을 받고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총여 폐지 과정이 ‘민주주의’로 포장되면서 학내에 페미니즘을 위협하고 위축시켰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대안기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어렵고, 총학생회 등의 학생자치기구에서도 굳이 성평등을 의제로 하는 자치기구를 만들지 않고 있습니다.”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의 윤김진서 대표는 최근 수년간 이어진 총여 폐지 이후의 학내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2018년 폐지된 성균관대학교 총여학생회는 일부 구성원들이 성성어디가 (성균관대학교 성평등 어디 가는가)등의 조직을 만들며 총여학생회 재건 및 대안 조직 창립을 위해 노력했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일부 학생들의 방해 등으로 결국 무산됐다.

유일하게 남은 여성자치단체인 성균관대 문과대학 여학생위원회마저 지난해를 끝으로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연세대도 2018년 개편논의 끝에 폐지로 결론나 사라진 상태다.

중앙대학교 총여학생회는 2015년도 총학생회 소속기구인 성평등위원회(성평위)로 전환했다.

그러나 2019년, 성평위의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조직 위원회’인 FOC에 대한 학내 반발이 일자 총학생회는 "학생회비를 사용하는 기구가 여성주의를 강요하는 모습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FOC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당시 성평위는 총학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했으나 총학의 승인이 있어야 사업이 가능한 산하기구였던 탓에 결국 손을 들었다.

성평등 대안기구 '충분한 자치권 필요'

작년 경희대를 졸업한 박지연 씨(가명·26)는 “학교 다닐 당시 총여학생회가 활동 중이었던 기억이 없다. 사실 페미니즘 자체를 '악마화'하려는 움직임 때문에 아무도 나서지 않았던 것도 이해가 된다”라며 “그럼에도 총여학생회 존재 그 자체에 분명히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윤김 대표는 총학생회가 입후보자가 없다는 이유로 쉽게 폐지를 거론하지 않는 반면 총여학생회는 너무 쉽게 폐지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단 총여 뿐 아니라 대학의 여성주의 기구, 혹은 학내 여성주의 운동을 향한 오래된 반감 때문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윤김 대표는 "총학 역시 적극적으로 학내의 성평등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페미니스트를 향한 도 넘은 비난에 대응해야 한다"며 "학내 성평등을 위해서는 충분한 자치권을 갖고 필요한 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자치기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스냅타임 박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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