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인공지능(AI) 등장으로 판은 완전히 흔들렸다. AI 모델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읽고 써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그래픽저장장치(GPU) 성능을 메모리가 따라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AI 기기 경쟁력 자체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게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이다. HBM은 GPU와 하나의 세트처럼 여겨질 정도로 위상이 올라갔다. 게다가 D램 적층, 첨단 패키징, 발열 제어 등 기술 진입장벽까지 높아졌다. 그 과정에서 메모리 3사 과점 지위는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됐다.
반도체업계 한 고위인사는 “메모리 기업은 이제 더이상 메모리만 만드는 곳이 아니다”며 “AI 시스템 설계를 함께 하는 회사로 역할이 커졌다”고 했다. 한국산 메모리를 ‘을(乙)’로 여기던 굴지의 빅테크 최고경영자(CEO)들이 갑자기 직접 방한하기 시작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메모리 수요를 ‘아비규환’에 빗댔을 정도다.
삼성·SK, 1400조원 메모리 잭팟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동포 오찬 간담회에서 “이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장 없이는 전 세계 산업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 됐다”고 말한 것은 확 달라진 ‘K메모리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인류가 새로운 불을 발견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처럼 AI 없이 살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대한민국에 정말 진정한 새로운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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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협력의 골자는 브로드컴이 설계한 칩들을 삼성 메모리, 파운드리, 패키징을 통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을 브로드컴에 공급하고, 브로드컴 설계 통신용 반도체 솔루션 등을 2나노 이하 최선단 파운드리 공정을 통해 위탁 생산하는 식이다. 이들을 모두 아우르는 ‘턴키 솔루션’을 가진 곳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최근 빅테크들을 중심으로 맞춤형 자체 AI 가속기(ASIC) 도입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데, 그에 발맞춰 설계부터 생산까지 도맡는 통합 솔루션의 중요성은 더 주목 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원스톱 턴키 솔루션을 통해 빅테크와 협업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또 다른 빅테크들과도 대규모 AI 칩 협업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회장이 이날 오전 샌프란시스코 오픈AI 본사를 찾아 샘 올트먼 CEO와 회동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엔비디아 등과 총 7500억달러 규모의 협업을 했다. SK그룹은 이번에 엔비디아와 5000억달러 규모 의향서(LOI)을 맺었는데, 그 중심에는 메모리가 있다.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는 메모리 장기 공급을 통해 ‘윈윈’을 모색하는 동시에 대규모언어모델(LLM) 학습부터 에이전틱 AI, 피지컬 AI로 확장하는 인프라 수요에 맞춰 HBM 등을 함께 개발하고 최적화해 나가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외에 마이크로소프트(MS)와 메모리 장기 공급을 추진하기로 했다.
최태원 회장은 “기업들이 요구하는 AI 칩과 컴퓨팅 파워의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커지고 있다”며 “현재 발표한 투자 규모는 앞으로의 수요를 고려하면 충분히 현실적인 숫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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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계약의 구체적인 법적 성격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브리핑을 통해 “단순히 숫자만 적어놓고 서명한 수준은 아니다”며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우리 기업들에 주문을 넣어 우리 기업들이 장기 공급 수주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 발표와는 다른 새로운 공급 계약을 맺었다는 의미로 읽힌다. 메모리 경쟁력이 한국을 AI 공급망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은 세계적인 수준의 네트워크와 데이터센터, 반도체 기술 리더십, 방대한 산업 기반 등 글로벌 AI 강국으로 도약할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업계 고위관계자는 “글로벌 메모리 3사가 과점 지위를 통해 5년 안팎 장기 계약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는 구조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과거 ‘월드컵 주기’로 불릴 정도로 4년 안팎마다 뚜렷하게 나타났던 메모리 호황·불황 사이클이 옅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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