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논란에 빛바랜 한국 양궁 금메달

김민정 기자I 2021.08.24 10:16:02

형에게도 피해 사실 숨긴 동생
"명백한 살인미수" 청원도
상습폭행에 오줌누기까지.."피해학생 더 있어"
경북교육청, 전면 재조사 착수

[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양궁이) 이렇게 축제 분위기인데 분위기 흐려서야 되겠냐. 그냥 묻고 넘어가자”

양궁 국가대표팀은 2020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만 4개를 획득하면서 전 세계에 ‘코리아’ 위엄을 알렸다. 그런데 최근 양궁부에서 선배가 후배를 향해 활을 쏜 사건과 관련해 경북 양궁협회나 지도자 측에서 이를 묵인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학폭 논란의 파장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4일 경북 예천의 한 중학교 양궁부에서 선배 A군이 한 학년 후배인 B군에게 화살을 쏜 사건이 발생했다. A군은 3∼4m 거리에서 다소 느슨하게 활시위를 당겼고 화살은 B군 훈련복을 뚫어 등을 스친 뒤 땅에 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은 해당 중학교의 조사 결과 학교폭력으로 결론 났으며, 경북교육청이 오는 27일 학교폭력심의위원회를 열어 A군의 처벌 수위를 결정할 계획이다.

그런데 해당 사건이 알려지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 큰 공분을 샀고 청와대 국민청원과 대한양궁협회 게시판은 성난 여론으로 들끓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 “학교 폭력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 靑 청원

가장 먼저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중학교 양궁부 선배가 후배를 활로 쏜 사건, 학교폭력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당장의 이 사건은 살인미수로 끝났지만, 실제로는 피해 학생의 죽음으로 끝난 학교 폭력 사건도 셀 수 없이 많다”고 했다.

이어 그는 “학교폭력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다. 중학교 3학년의 나이이면 활이 사람을 쏘았을 때 죽일 수 있는 무기라는 것을 충분히 알 나이다”라며 “그럼에도 얼마든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죽일 수 있는 그 행위를 거리낌 없이 행했다. 학교폭력을 손쉽게 행해도 좋을 비행이라고 생각한다는 증거다”라고 강조했다.

청원인은 또 “후배를 활로 쏜 학생은 그야말로 살인미수를 저지른 것”이라며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 학교 측은 살인미수죄를 은닉하는 죄를 저질렀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그는 “수십 년을 고통받는 피해자는 생각지 않고 그저 가해자의 미래만 고려하여 처벌 수위를 감경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라며 “미성년자들을 성인과 동일한 기준으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법적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제도적 장치는 지나치게 미온적이다”라고 전했다.

아울러 청원인은 “철두철미한 진상 조사와 관련자 처벌이 이뤄지기를 청원한다”며 “이번 사건에 대한 대처가 대한민국에서 학교폭력의 뿌리를 뽑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고 촉구했다. 이 청원은 24일 10시 기준 1만 5000명이 동의했다.

(사진=대한양궁협회 홈페이지 캡쳐)
◇ “믿고 싶지 않다”는 피해자 친형...父 “아이가 잠도 못 자”

지난 20일 양궁협회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최근 일어난 중학교 양궁부 학교폭력 사건 피해자의 친형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게시글에 따르면 사건 발생 후 B군은 상처에 대해 묻는 형에게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피해 사실을 숨겼다. 1, 2주가 지난 뒤에야 그는 B군이 자신에게 활을 겨눴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전했다.

친형은 “정말 황당하고 믿기지 않았다”며 “부모님이 처음엔 (가해자가) 사과하면 합의를 해볼 상황이었지만 상대편 부모님들이 적반하장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해당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동생이) 학교폭력을 당했다. B군이 초등학교 4, 5학년쯤부터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가해자 학생이 절대 다시는 활을 잡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논란이 커지자 B군의 아버지 역시 지난 2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아들의 상태에 대해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물고 상황은 많이 좋아졌다”면서도 “잠을 자다가도 소리 지르면서 깨고 상담 치료를 하려고 좀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자신의 아들 외에도 6~7명의 피해 학생이 더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해 학생이) 심심하면 톡 쳐보기도 하고 주먹으로 때리는 건 그냥 다반사“라며 “귀싸대기를 때린다거나 발로 차고 날아 차고 대회 나가서 숙소 같이 쓰는 방에서 씻고 있는 친구한테 오줌을 쏘고 입에도 담지 못할 행동(성적인 행위)들을 했다더라“고 전했다.

특히 B군의 아버지는 ‘여태까지 이게 공론화가 안 되고 지내왔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경북 양궁협회) 회장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축제 분위기인데 분위기 흐려서야 되겠냐’고 그냥 묻고 넘어가자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몇 년 전 피해를 봐서 양궁을 그만뒀던 학생도, 학교에서는 성적 부진으로 그만둔 줄 알더라. 학교엔 보고가 안 돼 있더라”면서 “부모들까지 찾아와서 ‘재발 방지해 달라’고 했는데, 코치라는 사람이 ‘자기는 그렇게 못 한다’고 얘기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양궁협회에서도 아무런 저것(조치)도 없다”고 말했다.

끝으로 B군의 아버지는 “이런 코치님들 밑에서 양궁을 배우고 있는 꿈나무들이 있다는 게 정말 안타깝다. 이런 일이 절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학교폭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사진=대한양궁협회 홈페이지 캡쳐)
◇ “협회 차원에서 가장 엄중한 대응 할 것”

결국 대한양궁협회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협회 차원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엄중한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양궁협회는 지난 23일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최근 예천지역 중학교에서 양궁계에서 있어서 안 될 사건이 발생했다”며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피해학생의 치료와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협회는 피해 학생 부보님에게 연락을 취하고 신체적, 정신적 회복을 위한 협회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협회는 “이번 사건과 같은 학교 운동부 내 폭력 사건 가해자 및 책임자에 대하여서는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에 따라 소속 시-도 (협회) 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징계를 결정하지만, 대한양궁협회는 징계권한 유무를 떠나 협회 차원의 엄중한 대응을 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이날 1·2차 징계권한 단체인 경북양궁협회 및 경북체육회에 공문을 발송해 사건 조사와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조속한 개최를 요청했다.

그러면서 협회는 “향후 해당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소홀한 부분이 없도록 책임과 의무를 다할 예정”이라며 “유사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안전 및 인권교육 강화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 “양궁 피해자 더 있다”…교육청 전면 재조사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경북교육청도 전면 재조사에 착수했다.

24일 경북교육청에 따르면 이번 사건으로 양궁부 선수 5명에 대한 전수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피해를 주장하는 학생이 나왔다.

추가로 확인된 피해 학생 C군은 현재 2학년으로 1년 전 양궁부에 있을 당시 A군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는 운동을 그만둔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사실을 확인한 학교 측과 교욱당국은 전 학년으로 학교폭력 실태 조사를 확대하고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최초 사건에 대한 교육 당국의 조사 결과도 나왔다.

당시 자리를 비운 코치에 대해서도 근무시간에 자리를 비운 점과 안전관리 소홀 등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 중학교는 해당 코치에 대해 직무 정지 명령을 내리고 교육부의 학교 운동부 관리지침에 따라 양궁훈련 안전수칙 등을 준수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경북교육청 관계자는 “해당 학교 관련 사건으로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고 피해자 측의 새로운 피해사실이 잇따르고 있다. 진상을 파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면서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진위여부를 가린 뒤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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