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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병재 문화레저에디터] 11월 늦가을, 서울 서초동 우면산(牛眠山)에 위치한 예술의전당. 산자락을 타고 온 바람이 제법 차다. 소가 졸고 있는 형세를 하고 있다고 해 명명한 우면산 전체를 확 깨우는 것 같다. 그 바람 탓인가. 예술의전당이 종종걸음이다. 바쁘다. 내년에 개관 25주년(2월 15일)을 맞아서다. 국가에서 받은 예산도 올해보다 30억이 증가한 82억원이다. 한국이 배출한 월드스타 신영옥, 장한나, 조수미를 차례로 무대에 올리고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도 초청했다. 토월극장도 재개관해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도 올린다. 세계적인 설치 예술가 죠르주 루스가 기념비적인 조형물을 예술의전당 내에 설치하고 그의 작품 세계가 담긴 사진 등을 전시한다. 우면산과 더불어 깊은 잠을 자고 있던 예술의전당이 일순에 깨어나는 듯하다.
그 진원지는 지난 4월 사장에 임명된 모철민 사장(54)이다. 전당 운영에 적지 않은 변화도 감지된다. “대관사업을 접고 자체 기획 공연과 전시를 가질 것이다. 콘텐츠 확보가 관건이다. 공공성을 띤 극장을 운영하겠다.”
모 사장은 예술의전당이 국내의 다른 대중적인 극장과는 달리 고급 문화를 접할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공공의 공간임을 천명했다. 극장을 빌려줘 실리를 챙기기보단 국가가 운영하는 극장이라는 명분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이 따른다. 콘텐츠 부재다. 극장을 채울 프로그램이 걱정이다.
-예술의전당이 내년에 개관 25주년을 맞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놨다. 프로그램들의 구성과 의미는.
▲예술의전당의 상징인 오페라하우스는 1993년 문을 열었지만 음악당과 서예박물관은 1988년 개관했다. 예술의전당의 역사를 여기서부터 잡았다. 개관기념 프로그램의 지향점은 내년 가을부터 시작하는 시즌제를 위한 일종의 시연 단계이다. 극장만 빌려주는 대관 기획보다 예술의전당 자체 제작프로그램이 주축을 이룬다. 2006년 이전까지만 해도 방송발전기금에서 예술사업비를 받아 자체 프로듀싱을 했지만 이것이 끊어졌다. 그래서 적자를 피하기 위해 대관 중심 극장으로 갔다. 이 탓에 공공극장이 대관장사를 한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시즌제를 표방한 이상 앞으로는 예술의전당 자체 기획 공연과 전시를 관객들에게 보일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양질의 프로그램을 확보해야 한다. 내년 개관 기념공연들은 이런 방향성에 대한 예술의전당 나름의 답안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바비칸 센터나 미국의 링컨, 카네기 센터 등 해외 유수의 복합문화예술센터와 비교했을 때 예술의전당이 가지는 장점은 무엇이고 보완되어야 할 점은 무엇인가.
▲복합문화예술센터는 시설, 콘텐츠, 서비스 3개 요소로 평가받는다. 예술의전당 내 시설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특히 음악당내 콘서트홀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부터 찬사를 받는다. 다만 아직 연륜이 짧다보니 자체 프로그램이 미흡하다.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링컨센터는 뉴욕필과 뉴욕메트로오페라단이 1년 내내 무대에 오른다. 파리국립오페라극장을 비롯해 유럽 극장들은 전속단체의 자체 공연만으로도 시즌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은 상주단체인 국립발레단과 오페라단이 오페라하우스를 40여일 정도 쓰면 채울 공연이 없다. 사실 그래서 시즌제가 걱정되긴 한다. 하지만 유니버설 발레단을 비롯해 수준 높은 민간단체들이 있다. 그 단체들과 협력해 작품을 올리며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청소년 관객들에게 할인혜택 등을 주는 싹틔우미 회원이 최근 1만5000명을 돌파했다. 긍정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회원이 강남3구 청소년들에게 집중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사장으로 부임 후 청소년 할인 프로그램인 싹틔우미 회원 가입 연령대를 8세에서 24세로 확대했다. 기존에는 19세까지만 가입할 수 있었다. 그러자 3500명에서 최근 1만 8000명까지 늘어났다. 분석해보니 강남3구에 거주하는 회원이 21%였다. 통상 예술의전당 공연 관람관객은 강남의 40대, 50대, 30대 여성관객 순이다. 그런 면에서 싹틔우미는 고무적이다. 예술의전당이 특정지역 주민을 위한 공간이란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어서다.
-지난 7월 예술의전당 시즌제와 더불어 좌석지정제를 통해 티켓 값을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한 기획사들의 반발이 있었다.
▲돈을 내고 대관하는 기획사 입장에서 극장이 각 등급별 좌석수를 지정한다는 게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 유수의 어떤 극장도 좌석 등급이 들쭉 날쭉하지 않는다. 그리고 예술의전당은 다른 극장보다 대관료가 절반가량이다. 공공극장이기 때문이다. 대관료 혜택을 받는 만큼 기획사들도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부 시정할 게 있겠지만 큰 줄기는 그대로 갈 예정이다.
-문화부 예술국장 및 문화부 차관을 지내는 등 정통 문화부 관료 출신이다. 연말이면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한다. 다음 정권에 바라는 문화정책이 있다면.
▲ 프랑스의 예를 들자면 문화정책에 있어서만큼은 이제 좌우 정권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합의를 이뤘다. 즉 앙드레 말로의 문화민주주의다. 우리도 그럴 것이다. 다만 차기정부에서는 문화다양성을 비롯해, 특히 다문화사회에서의 문화역할을 강조해야 한다. 한국이 앞으로 다문화사회가 될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다행히 정부가 광주광역시에 1조에 가까운 예산으로 아시아문화의 전당을 건립하고 있다. 완공이 되면 아시아의 문화예술인을 불러 창작활동을 북돋워주고 말 그대로 아시아문화의 전당으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게 지원을 해야 한다. 아시아문화의 교두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그곳의 운영과 재원 조달에 정부가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모철민 사장은…
1958년생으로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중이던 1981년 행정고등고시(25회)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원장, 문화부 예술국장, 문화콘텐츠산업실장, 문화부 제1차관 등을 역임하며 문화행정 전문가로서 경력을 쌓았다. 2007년 한불 문화교류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학훈장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문화부 차관 퇴임 후 동아대학교 석좌교수로 임명돼 후학을 가르치던 중 지난 4월 임기 3년의 예술의전당 사장에 임명됐다.
정리 김용운 기자 luc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