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인뉴욕)콩가루 가족의 좌충우돌 여행기

하정민 기자I 2006.08.30 12:25:08
[뉴욕=이데일리 하정민특파원] "남들이 보지 않을 때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명 코미디언인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버리자니 남들의 눈이 무섭고 같이 살자니 감당해야 할 짐들이 너무 버거운 애물단지. 기타노에게 가족은 그런 의미였던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도 가족의 의미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살아가는 이유이자 어떤 고난도 참고 이겨내게 하는 힘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짐스럽고 귀찮으며 인생 최대의 걸림돌로 여겨지기도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괴짜 가족의 희한한 여행길을 다룬 블랙 코미디 영화가 입소문을 타고 있다. 어린이 미인대회에 출전하려는 막내 딸을 위해 콩가루 집안의 일원들이 펼치는 좌충우돌 여행기를 그린 `리틀 미스 선샤인`이다.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에 사는 후버 가족은 인생 낙오자들의 집합소다. 아빠 리처드는 인기없는 성공학 강사로 입만 열면 승리와 성공을 외치지만 정작 본인은 파산 직전에 몰려 있다. 이런 남편을 경멸하는 엄마 셰릴은 그나마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매일 저녁 식사를 KFC 통닭으로 차려낸다.

헤로인 상습 복용자이자 포르노 중독자인 할아버지는 15살짜리 손자에게 섹스가 절대 선이라고 가르친다. 니체 철학에 심취한 아들 드웨인은 세상을 증오하고 있고, 전투 조종사가 될 때까지 가족과 대화를 않겠다며 자신의 의사를 노트에 끄적여 전달한다.

젊은 애인에게 버림받고 장학금 타는데도 실패한 셰릴의 게이 오빠이자 철학자 프랭크는 자살 시도 후 이 콩가루 가족에 얹혀 산다. 7살짜리 딸 올리브는 미소녀와는 거리가 있는 외모지만 어린이 미인대회에 나가는 것에만 집착한다.

어느 날 올리브는 남부 캘리포니아 레돈도 비치에서 열리는 `리틀 미스 선샤인` 대회의 출전권을 따낸다. 비행기를 탈 돈이 없는 후버 가족은 이를 위해 낡은 고물 버스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향하면서 갖가지 사건들을 겪는다.

클러치 고장으로 차를 탈 때마다 온 가족이 밀어서 간신히 타고, 빠듯한 예산 때문에 아버지는 딸의 아이스크림을 뺏어먹으려 잔꾀를 부린다. 외삼촌 프랭크는 자기를 찬 젊은 게이 애인이 부자 남자 친구와 만나는 모습을 목격하고, 비행사가 꿈인 아들은 자신이 색맹이란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도 파국 일보 직전으로 치닫는다. 가뜩이나 서로를 못마땅해하고 미워하는 이 가족은 이로 인해 더욱 상처주는 말을 내뱉으며 증오심을 불태운다.

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약물을 복용하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시신 수습 때문에 어린이 미인대회에 참석하지 못할 지경에 몰린 후버 가족은 급기야 할아버지 시체를 차 트렁크에 넣고 해변으로 내달린다. 미인대회 장소에 도착해서도 갖은 일화를 겪으면서 후버 가족은 그간 잊고 있었던 가족애를 느끼기 시작한다.

미워도 미워할 수 없고,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가족이라는 공동 운명체. 아무리 지지고 볶고 싸워도 결국엔 가족이라는 큰 틀 안에서 조금만 상대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가족이란 끈끈한 줄기는 결코 쉽게 끊어지지 않으며 힘들고 괴로울 때 더욱 단단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가족의 또 다른 정의가 `미친 듯 도망치다 스스로 되돌아오는 요요` 같다는 생각도 든다.

북미 박스오피스의 흥행작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헐리웃 메이저 영화사가 몸값 비싼 스타들을 데리고 찍은 후 첫 주에 엄청난 숫자의 스크린을 확보해 몇 주안에 수억달러를 벌어들이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있는가 하면, 소규모 제작비에 적은 스크린에서 개봉을 한 영화가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점점 인기를 얻는 경우도 있다.

3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나의 그리스식 결혼`이나 지난해 미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펭귄 : 위대한 모험`은 후자의 대표작들이다. 스타 한 명 나오지 않고, 눈 돌아가는 화려한 액션 씬도 없지만 공감가는 내용에 박장대소할 유머와 훈훈한 결말까지 갖춘 `리틀 미스 선샤인`도 작은 영화의 매서움을 보여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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