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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피해액 20조…'키코'를 기억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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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래 기자I 2017.09.17 14:23:11
[이데일리 강경래 기자]“벌써 세월이 9년이나 흘렀습니다. 하지만 ‘키코(KIKO)사태’로 피해 입은 중견·중소기업(이하 중기)들의 아픔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7일 금융권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중기를 지원하는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의 조붕구 회장(코막중공업 대표)은 “키코로 피해 입은 중기들은 여전히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심지어 도산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며 “이낙연 총리의 재검토 요청으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키코사태에 대한 재수사가 조속히 이뤄져 중기들의 추가적인 도산을 막고 공장도 다시 가동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국내 중기들이 직간접적으로 입은 피해만 2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키코사태가 최근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이 재수사를 통해 키코사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며 “다른 나라는 키코 판매 은행을 사기죄로 처벌했는데 우리나라만 은행에 무혐의 처분을 통해 면죄부를 줬다”고 밝혔다. 여기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법무 당국이 키코사태에 대해 재검토해 주길 바란다”라고 답하면서 키코사태 재조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외환파생상품 일종인 키코는 ‘녹인’(Knock-In) ‘녹아웃’(Knock-Out)의 약자로 환율 상단과 하단(밴드)을 미리 설정, 환율의 급격한 변동으로 인한 위험을 피하기 위한 환헤지 통화옵션이다. 환율이 밴드 내에서 움직일 경우 기업은 약정환율로 달러를 바꿀 수 있어 이득을 본다. 하지만 환율변동 폭이 커질 경우 반대로 손실을 입는다.

키코는 원·달러 환율의 급격한 하락으로 인한 수출 기업들의 손해를 줄일 수 있는 금융상품으로 한때 큰 주목을 받았다. 국내금융권 역시 수출 중기를 중심으로 2007년 이후 키코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글로벌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전례 없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달러 환율이 2008년 한때 1600원까지 치솟았고, 키코에 가입한 중기들은 환헤지는 커녕 눈덩이처럼 불어난 피해를 입었다.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에 따르면 키코 피해 중기는 1000여개에 달하고 이 중 폐업과 부도, 법정관리, 워크아웃 등 부실화된 기업은 300여개로 추산된다.

㈜일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때 연매출 3000억원에 달했던 석유화학플랜트분야 중견기업 일성은 2007년 키코에 가입한 후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키코 가입 후 2년여 동안 무려 1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은 것. 그 여파로 대외신인도가 크게 하락하고 해외 거래처들로부터 수주하는 작업에도 차질을 빚었다. 결국 회사는 실적 악화로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창업주인 장세일 회장은 투자자들로부터 사기혐의로 피소된 후 4년 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국내 전자부품업계 최초로 연매출 1조원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했던 중견기업 디에스(DS) 역시 비슷한 사례다. 이 회사 역시 키코 가입으로 1500억원 가량 손실을 본 후 회사는 문을 닫은 상황이다. 이 회사 창업주 이승규 회장 역시 장 회장과 같은 혐의로 현재 구속 수감 중이다. 한때 ‘벤처신화’로 불리며 시가총액이 1조원에 달했던 엠텍비젼 역시 1000억원 가량 키코 손실로 실적 악화를 겪은 후 2014년 코스닥에서 퇴출되는 수모를 겪었다.

키코 피해 중기들은 한때 ‘키코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만들어 금융권을 상대로 불공정한 금융상품을 판매한데 따른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중기들은 대법원이 2013년 9월 “은행이 키코상품을 판매한 것은 불공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하며 최종 패소했다. 공대위 수석부회장을 맡았던 조 회장은 대법원 패소 판결로 공대위가 해체된 후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를 만들어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이렇듯 키코사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멀쩡한 회사들이 금융상품 하나 잘못 가입해 하루아침에 망가지고, 건실한 기업인들이 구속되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억됐다. 늦었지만, 과거 정권에서 금융권의 불합리한 상품으로 인해 큰 아픔을 겪은 중기들에게 있어 새 정부의 ‘키코 재조사’ 발표는 ‘오랜 가뭄 끝에 단비’와도 같은 소식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 회장은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던 산업 역군들이 금융상품 하나 잘못 가입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환투기꾼’이라는 오명을 써야만 했다”며 “이번에 키코사태에 대한 재조사가 철저히 이뤄져 키코 피해 기업들이 명예를 회복하고 사회정의도 되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붕구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장 (제공=조붕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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