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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사우디-이란 석유 치킨게임(종합)

장순원 기자I 2016.06.06 14:58:35

사우디 유럽수출용 파격 할인…이란 견제 의도
이란도 유럽 공급 확대 지속‥국제유가 하락압력

브랜트유 유가 추이. 출처:FT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세계 최대 석유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유럽 수출용 원유가격을 전격 인하한다. 숙명의 라이벌 이란을 견제하려 칼을 뽑은 것이다. 서방의 경제제재에서 벗어난 이란도 쉽사리 물러설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이미 석유생산량을 지속적으로 늘리면서 사우디에 맞서겠다는 방침을 밝힌 터다. 두 나라의 석유 치킨게임이 격화하면 유가 하락압력으로 작용한 전망이다.

◇사우디, 유럽 수출가 파격인하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가 고객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북서부 유럽지역에 공급하는 7월 인도분 경질유 가격을 배럴당 35센트, 지중해 국가는 10센트씩 인하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조만간 하반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사우디의 가격할인은 파격적인 일이다. 조금 있으면 정비를 위해 가동을 멈췄던 정제공장들이 재가동하면서 석유 수요가 늘어나는 시기이다. 마침 나이지리아산 석유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유가가 올라 석유수출국인 사우디로서는 돈을 벌 절호의 기회란 얘기다. 올 2월에만 해도 배럴당 30달러를 밑돌았던 국제유가가 50달러까지 치솟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사우디가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원유 가격을 내린 것은 이란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실제 사우디는 이란용 원유 금수조처를 유지한 미국 수출가는 최근 배럴당 10센트 올렸다.

수니파의 맏형 사우디는 이슬람 세계의 주도권을 놓고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경쟁을 벌여온 정치적 앙숙관계다.

특히 사우디의 이번 가격할인은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지난 2일(현지시간) 6개월여 만에 정례회의를 개최했지만, 감산 합의에 실패한 직후 나왔다. 베네수엘라를 포함해 원유 가격 하락으로 경기 침체에 빠져 있는 신흥국들은 이번 정례회의에서 감산 합의를 촉구했다. 사우디도 생산을 제한하는 방안에 열린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서방 경제 제재에서 해제된 이란이 증산 정책을 고수하면서 합의는 물 건너갔다. 오펙을 이끄는 사우디로서는 자존심을 구긴 셈이 됐다.

◇“이란 시장잠식 두고 볼 수 없다”

경제적 실리도 걸려있다. 사우디는 이란과 유럽시장을 놓고 치열한 점유율 경쟁을 벌이는 관계다. 이란은 현재 하루 40만배럴 규모를 유럽에 수출한다. 이란은 최근 그리스와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내 국가들과 공급계약을 체결하면서 다음 달까지 유럽 수출량을 70만배럴로 늘릴 계획이다.

사우디는 현재 하루 80만배럴을 유럽에 수출하는데, 유럽에서 이란이 점유율을 늘리면 사우디 입지가 줄 수밖에 없다.

아민 나세르 아람코 최고경영자는 이란을 겨냥해 “라이벌과의 경쟁을 피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당장 경제 재건 자금이 필요한 이란으로서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사우디와 이란의 가격 할인 경쟁이 지속할 것으로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원유시장은 유가 상승압력이 커지고 있다. 우선 미국 고용지표가 시장의 기대를 밑돌면서 이달 금리 인상은 물 건너간 분위기라 유가와 반대로 움직이는 달러 값이 하락한 상태다. 또 캐나다의 산불이나 나이지리아의 정유시설 파괴 같은 공급 차질 요소도 많다.

그렇지만 수출물량이 많은 사우디와 이란의 가격 할인 경쟁이 지속한다면 국제유가를 짓누를 수 있다. WSJ는 사우디와 이란이 드러나지 않게 고객에서 할인가를 제시할 것으로 예상했다.

유가가 하락압력을 받으면서 영국이나 노르웨이 정유회사들이 신규투자를 유치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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