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태현 기자]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이 14일 실시된 중의원 총선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과 유신당을 포함한 야권 진영에 압승을 거뒀다. 최근 경제 성장 둔화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 지지율이 40%대로 크게 떨어졌지만, 민주당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자민당 쪽으로 표가 몰렸다. 어부리지(漁夫之利)였던 셈이다.
아베노믹스(아베 정부의 경기부양책)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비판이 이번 조기 총선을 이끌어냈지만, 민주당은 아베노믹스를 대신할 만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도 못한 채 참패를 맛보고 말았다. 민주당은 애초 계획한 100석도 확보하지 못한데다 자민당 과반수 견제도 달성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최근 경기 회복세 둔화를 거론하며 아베노믹스 부작용을 쟁점화하는데 주력했다. 지난 4월 소비세율 인상(5→8%) 후폭풍 탓에 고꾸라진 국내총생산을 부각했다.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아베노믹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60%를 넘어서는 등 전략이 주효하는 듯 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엔저 대책으로 내놓은 유류비 지원과 소비세율 추가 인상(8→10%) 연기 등은 앞서 자민당이 내놓은 자구책을 그대로 베낀 대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폭설 탓도 있지만, 이번 총선 투표율이 전후 최저 수준에 머문데는 이같은 국민들의 실망감이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별다른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불만을 표시했다는 얘기다.
나카노 코이치(中野晃一) 소피아대 정치학 교수는 “아베 총리가 이번 총선을 예상보다 발 빠르게 준비한 탓에 야권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면서 “뚜껑을 열기 전부터 이번 총선의 결과는 이미 예정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자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3분의 2 이상을 차지, 독주체제를 형성하면서 앞으로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해석 변경을 위한 후속 입법 절차 등 우경화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자민당은 그동안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집단자위권을 위한 헌법 해석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후속 입법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번 총선 압승으로 집단자위권 행사를 추진할 명분을 얻게 됐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 문제에 있어서도 강경한 입장을 나타낼 전망이다.
일본 자민당은 지난달 발표한 선거 공약집을 통해 “허위에 기반을 둔 근거없는 비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박하고 일본의 명예와 국익을 회복하기 위해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정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