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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인수戰]⑤가격만이 능사 아니다..더 중요한 건?

김국헌 기자I 2010.10.28 12:49:00

현대건설 인수戰서 비가격 변수 부상
채권단, 비싸게 팔기보다 잘 팔아야
현대그룹, 자금동원력 취약..현대車, 도덕성 불씨

[이데일리 김국헌 기자] 금융시장의 대체적인 시각은 현대건설 인수전의 최종 승자는 결국 현대차그룹이 될  것이라는 쪽에 쏠려있다. 재계 2위 현대차와 재계 21위 현대그룹이 맞붙었으니, 체급면에서나 역량면에서나 상식적인 판단이다.
 
현대차가 지난 9월27일 출사표를 던지자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는 다음날인 28일 주식시장에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대차가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현대그룹의 경영권이 현대차에 넘어가고, 이후 현대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축인 상선 등에 대한 지분경쟁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가정한 시장의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공적 매각 성격이 짙은 한국 인수·합병(M&A) 환경에선 의외의 변수가 판세를 뒤집기도 한다. 변수는 다름 아닌 `비가격적인 요소`다.
현대건설(000720) 매각 주체인 채권단도 이번 매각에선 가격외에 비가격적인 요소도 고려하겠다고 방점을 찍어둔 상태. 가격외에 다른 요인이 현대차 우위의 판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 `승자의 저주` 기억한다..非가격 변수 부상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팔 때 반드시 가격만으로 거래가 결정되는 건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물건가치에 대한 주관적 평가, 필요성 등에 따라 가격과 상관없이 매매가 이뤄지기도 한다.
 
현대건설 인수전은 채권단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 둘 중 누가 가져가느냐 하는 간단한 딜이다.
 
하지만 속내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인수를 희망하는 두 그룹은 원래 한 집안이었다가 갈라섰고, 둘 다 그룹의 성장을 위해 건설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건설을 잠시동안 맡아온 채권단 입장에서는 투입된 자금 회수를 극대화하는 것 못잖게, 현대건설을 앞으로 잘 관리하고 발전시키느냐도 중요한 고려 사안이다. 채권단이 감안해야 할 요인중에는 앞으로 누가 잡음없이 현대건설을 잘 경영할 수 있느냐는 부분도 포함된다는 얘기다.
 
가격에만 의존해 딜을 성사시켰다가 실패한 경험도 작용하고 있다. 채권단은 대우건설 매각 당시, 가격요인에 초점을 맞춰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새 주인으로 택했지만, 과도한 차입으로 무리하게 인수한 끝에 결국 `승자의 저주`라는 쓰라린 경험을 맛봐야 했다.
 
이런 학습효과 때문인지 정부 당국과 현대건설 채권단 일각에서는 비가격적 요소를 중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가격 등 정량적 평가 외에 소위 정성적 평가에 대해서도 (현대건설) 채권단에서 충분히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며 "채권단을 중심으로 그런 내용이 적절히 반영돼 관련한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대건설 최대주주인 한국정책금융공사의 유재한 사장은 "가격(요인의 비중)이 3분의2 정도 될 것"이라면서도 "가격 비중이 최우선이 되겠지만 자금조달 건전성, 경영비전 등도 꼼꼼하게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피인수 당사자인 현대건설 노조에서도 유사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임동진 현대건설 노조위원장은 높은 가격을 써내는 기업의 손을 들어주기 보단 비전과 자금 조달능력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인수자를 선정해달라고 요구했다.

◇ "비싸게 파는 것과 잘 파는 것"..어느 게 바람직한가?




현대가(家)에서 출발한 두 그룹이 명운을 걸고 뛰어든 현대건설 인수전이 가격보다 비가격적 요소에서 승패가 엇갈릴 수 있다는 전망도 없지 않다. 두 후보의 역량이 비슷할 때는 인수가격에 초점이 모아지지만, 반대의 경우엔 비가격적 요소가 더 큰 변수가 되기도 한다. 
 
대우건설과 하이마트 매각 사례가 단적인 예. 지난 2006년 대우건설 매각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양강 구도를 형성했던 두산그룹은 분식회계와 횡령 문제로 인수전 중반에 탈락했다.
 
지난 2007년 하이마트 인수전에선 GS그룹이 유진그룹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적고도, 고용 보장 문제로 유진그룹에게 하이마트를 내줘야 했다. 당시 매각 주체가 홍콩 바이 아웃(Buy out) 펀드였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요인이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지는 못했다.
 
비가격적 요소는 결국 현대건설을 안정적으로 인수해, 잘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을 보기 위한 평가항목이다. 자금동원능력, 시너지, 도덕성, 시장 평판, 경영 능력 등이  잣대가 될 수 있다.
 
탄탄한 자금동원 능력을 갖고 있는 현대차가 비가격적 요소에서도 우위에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현대자동차(005380)가 불리한 대목도 적지 않다고 현대그룹은 주장한다. 현대차 정몽구 회장은 지난 2006년 비자금 조성과 횡령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뒤 사면됐고, 당시 2014년까지 시가 1조원에 달하는 글로비스 주식을 출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재까지 해비치재단에 1500억원을 내놓는데 그쳤다. 

현대건설을 승계 목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지적도 현대차가 넘어야 할 숙제다.
 
합병 이후 현대엠코 지분을 현대건설에 처분하게 되면, 대주주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상당한 차익을 올리게 돼 경영권을 강화할 종자돈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는 논리다. 현대차는 최근 현대건설 인수 청사진을 발표하면서 엠코와의 합병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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