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나랏빚이 가파르게 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능력으로 감내하기 힘든 상황에 처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들이다. 위기 극복의 일등공신으로 평가받아온 과감한 재정 투입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덧 후유증을 걱정하는 단계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문제는 재정 악화의 속도다. 국가채무는 300조원을 돌파한지 2년만인 내년에 400조원을 넘어서고 2013년에는 50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불과 5년새 무려 200조원의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셈이다. `경제위기 우등생`이라는 칭송을 가능케 한 나랏돈 투입의 달콤함이 위기 극복 이후 쓴맛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정부는 이러한 재정건정성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 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평균 비율인 75.7%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어 우려할 단계가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의구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기축통화를 갖고 있는 선진국과 단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 뿐만 아니라 가장 늙고 활력없는 나라로 전락하는 `저출산·고령화`의 문제와 통일에 대비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너무 근시안적인 견해라는 평가다. 또 이명박 정부가 트레이드 마크중 하나인 감세 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4대강 살리기와 친서민 정책을 밀고 나가고 있어 재정 부담이 완화되기도 쉽지 않은 구조다.
민간연구소 한 관계자는 "재정지출을 천문학적 규모로 늘리면서 세금을 깎아주니 나라살림에 큰 구멍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버는 것을 늘리든 쓰는 것을 줄이든 어느 한쪽이라도 단속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걱정스러운 측면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 국가재정 균열 기미..`적색 경보등`
국가 재정이 중요한 이유는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입증됐듯이 환율, 유가, 금융위기 등 외부충격을 흡수할 마지막 보루라는데 있다. 특히 우리처럼 자원이 없는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는 더욱 절실할 수 밖에 없다. 글로벌 위기가 닥칠 때 마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환란`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하는 현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따라서 위기 상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자본주의의 속성상 재정건전성의 악화는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 만한 중차대한 위험요소임에 틀림없다.
객관적인 데이타로 보면 우리의 재정부담 능력이 아직 양호한 편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올해 국가채무는 GDP 대비 35.6%로 OECD 평균인 70%대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국가채무 비율이 괜찮다고 하더라도 국가채무의 가파른 증가 속도는 나라 곳간에 적색 경보등을 켜고 있다.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만 해도 그동안 국가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해온 덕택에 당면과제인 `경제난극복`을 위한 과감한 적자예산을 편성하는 등 씀씀이를 대폭 늘리는 게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운신의 폭이 갈수록 좁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수지 흑자분을 제외한 관리대상수지는 GDP 대비 5% 수준인 51조원 적자가 예상된다. 관리대상수지는 실질적인 나라살림의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다. 정부의 세출구조조정의 노력으로 관리대상수지 적자 규모가 내년부터 줄어들긴 하지만 내년 32조원, 2011년 27조5000억원, 2012년 16조1000억원, 2013년 6조2000억원을 합치면 4년간 무려 81조8000억원에 달한다.
그 결과 국가채무는 올해 366조원에서 내년 407조1000억원으로 증가하고, 2013년에는 493조4000억원을 기록, 50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한번 가속도가 붙은 국가채무를 억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일단 늘리면 되돌리기 힘든 보건복지 예산 비율은 내년부터 4년동안 매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2013년에는 그 규모가 100조원에 근접하는 96조9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조치이나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도` 등 재정건전성을 도외시한 정치적 포퓰리즘에 기반한 정책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 선진국 평균의 절반(?)..근시안적 잣대 벗어나야
정부가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누구보다 골머리를 싸고 고민하고 있다. 내년 나라살림을 5년래 최소 비율인 2.5% 늘어난 291조8000억원으로 짰다는 것에서 고민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위기 이후 한시적인 지원책을 원칙적으로 종료함으로서 재정의 출구전략에도 시동을 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재정건전성 논리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이 적지 않다.
우선 정부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OECD 평균의 절반에 그치고 있어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되뇌이고 있으나 단순 비교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의 통화는 찍어내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통용되는 기축통화지만 우리 통화는 그렇지 않다. 특히 위기 상황에선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가 선진국에 비해 국가 재정을 훨씬 더 건전하게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부가 향후 5년간 재정건전성 관리의 양대축으로 제시한 ▲국가채무의 GDP 대비 40%내 관리 ▲2013~2014년 균형재정 달성도 2011년 이후 5% 성장이라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장기간 소비 위축을 의미하는 글로벌 불균형 완화가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의 잠재성장률이 위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적 의지야 반영될 수 있지만 실제 달성은 녹록치 않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지 않는 한 세수는 현재의 목표에 미달하고 재정 투입 규모는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송호신 조세연구원 세수재정추계팀장은 "외평채로 환율을 안정시키고 재정 확대로 수요 확장시키는 등 재정이 방패막이를 하면서 해외충격을 거의 다 막아주고 있다"며 "이런 비용으로 국가채무가 늘어난 거라 체계적이고 계획성 있는 현실적인 관리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지적했다.
◇ 곳곳에 도사린 불확실성..고령화, 통일비용, 정부보증채무
우리의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또다른 요인들도 곳곳에 숨어있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급속한 저출산·고령화 진행, 4대연금의 재정악화, 통일비용 등 재정에 강한 충격을 줄만한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을 먹여살려야 하는 우리의 생산가능인구는 올해 7명에서 2050년 1.4명으로 급감하는 등 초고령사회로 인한 사회적 비용부담이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남북한이 독일식의 급진적 통일을 이룰 경우 무려 남한 GDP의 12% 수준의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경기회복이라는 대명제 아래 앞뒤 가리지 않고 늘어난 정부보증채무와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 예산도 숨겨진 뇌관으로 비유된다. 이들 요인은 국가채무 대상에서 제외돼 있지만 부실화될 경우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정부가 4대강 사업 관련 예산 15조3000억원중 절반이 넘는 8조원을 수자원공사에 떠넘긴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국가직접채무와 보증채무에 4대 공적연금 책임준비금, 통화안정증권 잔액, 공기업 부채 등을 더한 광의의 국가채무는 2007년 1285억원에서 2008년 1439조원으로 11.1%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며 "OECD 국가들과 동등한 채무 비교를 위해 광의의 국가채무 규모를 추가로 산정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