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기자] 자본시장통합법(약칭 `자통법`)이 시행된지 벌써 20일이 지나고 있다. 일대 지각 변동을 가져올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증권업계는 여전히 조용하기만 하다. 법 시행 이후 시장에서는 어떤 문제점이 드러나고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 초기 점검 차원에서 이데일리는 총 4회에 이르는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편집자]
"우리 국민들이 준비가 부족하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자통법만 봐도 이런 준비 부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통법이 시행된지 2주일 정도를 넘긴 지난주, 그 때까지 나타난 문제점을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통법의 출발이 순조롭지 않다면 그 책임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 당국자의 얘기만 보더라도 확실히 `법과 현실이 꼭 들어맞지 않아 삐걱대는 구석이 있긴 있나보다` 싶다.
"아직 어떤 부분에서 준비가 부족한지조차도 다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업무가 하나씩 진행돼봐야 차츰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는 한 증권사 영업지원팀 실무자의 얘기가 이 간극을 보여준다.
◇ `법과 현실은 다르더라`
자통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 1년반 이상의 여유가 있었지만, 실제 법을 시행하고나니 준비 부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법 시행 직전부터 논란이 됐던 펀드투자권유준칙 해석을 둘러싼 잡음은 2주일이 다 돼서야 어느정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한 모습이다.
금융당국이나 금융투자협회가 미리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은데다 표준투자권유준칙 역시 법 시행 바로 직전에 마련된 탓에 준칙상 절차를 실제 창구에서 적용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초래됐던 것.
판매사가 펀드 위험등급을 자율적으로 분류하게 되면서 같은 펀드라도 판매사별로 다른 등급이 적용되던 문제는 `운용사쪽 등급으로 일치하도록 하라`는 권고가 나온 뒤에야 정리됐다.
CMA 가입 과정에서 투자자 성향 파악이 필요한지도 초기 혼선을 야기했고, 펀드 위험등급과 실제 펀드 투자설명서상 등급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는 준칙 별지 개정으로 마무리됐다.
또 온라인을 통해 펀드에 가입할 때도 은행과 증권사 등 일선 창구에서 동일한 투자권유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원칙도 법 시행 1주일까지만 해도 분명치 않았었다.
아울러 상당수 증권사들이 집합투자업(종전 자산운용업) 인가를 준비하고 있지만, 감독당국이 경쟁수위를 조절해 선별적으로 인가하겠다는 방침으로 선회하면서 해당 증권사들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업계도 강건너 불보듯`
감독당국이나 협회 차원의 문제 뿐만이 아니다. 법과 시행령, 시행규칙 등에 명시된 내용들을 실제 시스템에 반영해야할 증권사들의 준비도 천차만별이었다.
자통법 시행전에 자체 시스템 안정화작업을 마친 증권사들은 몇몇 대형사 뿐이었다. 다수 증권사들은 장 마감 후에 고객 이체나 CD 입출금 등을 중단하면서 시스템 안정화 여부를 테스트했다.
또 온라인상에서 투자자 정보확인이나 투자성향을 파악하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이용고객들이 직접 오프라인 객장을 찾아야하는 불편을 초래했다.
이 때문에 NH투자증권 등은 온라인상 펀드 매매서비스를 일시적으로 제한했고 동양종금증권 등은 ELS 상품에 대한 온라인상 청약을 한동안 중단하기도 했다.
업계 전체적으로는 증권, 부동산, 파생상품으로 구분된 판매사 자격시험도 자통법 시행 이전에 준비하지 못했다. 부랴부랴 다음달 시행을 치르기로 하고 기존 자격증을 인정해주는 임시방편으로 막았다.
증권사들만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자통법 시행으로 인한 가장 큰 변화로 기대했던 은행 지급결제서비스 참여도 결과적으로는 미리 준비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도 증권사들간 이해관계 차이였다.